한일 경제전쟁 ‘전면전’…한국 “일본도 백색국가 제외”

일본, 화이트리스트 ‘가’ 지역서 ‘다’ 지역 이동…별도 절차로 관리

규제로 159개 품목 영향…기업에 세제금융 지원, 관세조사 유예

한국 정부가 일본의 화이트리스트(수출 우방국가) 제외에 대해 맞불카드를 꺼냈다. 일본이 우리를 수출 우방국가에서 제외하자, 우리도 일본을 똑같이 우리의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기로 하면서 사실상 ‘전면전’을 선언했다.

앞서 1차 반도체소재 수출규제 당시 감정적 대응을 자제하던 것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이번 조치는 문재인 대통령이 일본의 2차 조치에 대해 강력한 경고성 메시지를 밝혔듯이 일본과 경제전쟁도 불사하겠다는 정부의 의지로 풀이된다.

정부는 또 일본 조치에 대한 대응과 함께 피해기업 지원과 대체제 확보방안을 추진하고 소재·부품의 경쟁력을 키워 국산화하는 방안도 마련하기로 했다. 대외적으로는 일본을 견제하고 내부적으로 내실을 다지는 ‘투트랙’ 전략이 숨어 있는 셈이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관계부처 합동브리핑을 열고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제외 조치와 관련해 “우리나라도 일본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해 수출 관리를 강화하는 절차를 밟아나가겠다”고 말했다.

홍 부총리는 “국민의 안전과 관련한 사항은 관광, 식품, 폐기물 등의 분야부터 안전조치를 강화해 나갈 계획”이라며 “일본 조치의 부당성에 대한 국제사회의 공감대를 만들어내려는 국제공조 노력도 속도를 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우리나라도 일본을 포함한 29개 국가를 화이트리스트(가 지역) 국가로 관리하고 있는데 이번에 ‘다’ 지역을 신설, 일본을 편입시키고 따로 관리하겠다는 것이다.

홍 부총리는 “일본의 수출 규제 강화 조치는 세계무역기구(WTO) 규범에 전면 위배되는 조치인 만큼 WTO 제소 준비에 더욱 박차를 가해 나가겠다”며 “외교적 해결을 위한 노력은 계속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여러 통로를 통해 일본 정부에 이번 조치가 철회되도록 강력히 요구하고 양자협의 재개를 촉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응책과 함께 피해기업에 대한 지원도 이뤄진다.

정부는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제외 조치로 영향을 받을 수 있는 품목을 총 159개로 분석했다.

홍 부총리는 “이번 백색국가 배제 조치롤 인해 관련되는 전략 물자의 수는 1194개”라며 “이미 민감 품목에 해당돼 건별 허가가 적용되고 있는 품목, 국내 미사용·일본 내 미생산 등으로 관련이 적은 품목, 소량 사용 또는 대체 수입 등으로 배제 영향이 크지 않은 특정 품목을 제외하면 총 159개”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들 품목도 상당부분 영향이 제한적일 것으로 보이나 대일의존도가 높은 일부 품목들의 경우 공급차질 등의 영향이 있을 것으로 우려된다”며 “정부는 159개 전 품목을 관리 품목으로 지정, 대응하되 특히 대일의존도, 파급효과, 국내외 대체가능성 등을 기준으로 보다 세분화해 맞춤형으로 밀착 대응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로 인한 기업 피해를 최소화를 위해서는 세제·금융 및 연구개발(R&D) 지원을 확대하기로 했다.

홍 부총리는 “소재·부품을 안정적으로 조달할 수 있도록 수출규제 관련 품목 반입 시 24시간 상시통관지원체제를 가동해 신속하게 통관될 수 있도록 하겠다”며 “서류제출 및 검사선별도 최소화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직접적 영향을 받는 159개 관리 품목은 보세구역 내 저장기간을 연장하고 수입신고 지연에 대한 가산세도 면제하겠다”며 “해외 대체 공급처를 발굴할 수 있도록 조사 비용 중 자부담을 50% 경감하는 등 (기업의) 현지 활동도 지원하겠다”고 덧붙였다.

이외에도 홍 부총리는 추가경정(추경) 예산에 반영될 약 2732억원의 일본 대응 예산을 통해 소재·부품·장비 분야의 설비투자 자금 지원 등을 실시하고 내년 예산부터 관련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예산도 획기적으로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일본의 수출 통제에 따라 대체국에서 원자재를 수입할 경우 관세를 최대 40%포인트(p) 경감해주는 할당관세를 적용하는 등 세제 지원도 실시하기로 했다. 수출 규제로 인해 영향을 받는 기업에 대해서는 관세조사, 외환검사, 원산지 검증 등도 유예한다.

제품 개발 R&D에 대한 화학물질 인허가 기간 한시적 단축과 특별연장근로 예외적 허용도 기업 지원책 중 하나로 마련됐다. 또 정부는 국가별 규제가 아닌 업체별 허가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일본의 CP기업제도를 활용한 소재·부품 공급처 확보에도 나설 방침이다.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일본 내 1200~1300개 기업이 CP기업에 해당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며 “우리 기업이 해당 기업과 거래 관계가 있을 경우 특별 허가제를 이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홍 부총리는 이날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제외 조치에 대해 정당한 근거 없이 취해진 무역보복 조치라며 즉각 철회할 것으로 촉구했다.

그는 “지난 4일 3개 품목 수출 규제 시행에 이어 이번 백색국가 배제에까지 이르는 일련의 조치는 그간 양국이 어렵게 쌓아온 협력과 신뢰관계를 근본적으로 훼손시키는 행위”라고 비판하며 “일본 정부는 수출규제 조치 배경으로 양국 신뢰관계 손상, 우리 수출관리 미비, 안보상의 이유 등 명료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 채 그때그때 말을 바꾸며 아전인수 격 주장을 되풀이해왔다”고 강조했다.

홍 부총리는 “우리 정부는 직접적 대응을 자제하고 양국간 대화를 촉구하는 등 대화화 협의를 통한 외교적 해결에 최대한 성의를 갖고 임해왔다”며 “일본 정부는 공식 협의를 끝내 거부하고 대화와 협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우리 정부의 노력을 외면한 채 일방적·차별적 무역보복 조치를 재차 강행했다”고 지적했다.

아베규탄 시민행동 회원들이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화이트국가에서 한국을 배제한 일본 정부를 규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