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호의 역사칼럼] 32. 플로리다가 미국 땅이 된 사연

예로부터 나라끼리 전쟁을 해서 승패가 결정되면 영토를 할양했다. 싸움에서 진 나라가 자기의 일부 영토를 잘라 내어 이긴 나라에 넘겨 주는 것을 할양이라고 한다. 마치 재산을 걸어 놓고 힘겨루기를 해 이기면 그것을 따먹기로 하는 형국이다. 특히 변방에 있거나 식민지로 되어 있던 땅이 할양의 대상이 되었다.

1894년에 일어난 일본과 청나라 사이에 일어난 청일전쟁에서 청나라가 일본에 패하자 대만을 뚝 떼어 일본에 넘겨 준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싸우기는 남의 땅인 한반도에서 싸워 놓고 저희끼리 대만 땅을 주고받았다. 미국의 플로리다 땅이 전쟁 때문에 이 나라 저 나라 사이에서 옮겨 다닌 땅이라고 한다. 결국에는 마지막으로 전쟁에서 이긴 미국이 스페인으로부터 획득한 ‘전리품’이 되어 지금의 미국 영토가 되었다.

원래 플로리다는 콜럼버스를 따라 신대륙을 탐험하러 다니던 스페인 사람 폰세 데 레온(Ponce de Leon)이 발견하였다. 그때의 관습대로 탐험가를 지원한 스페인의 땅이 되었다. 비록 플로리다에는 이미 원주민이 살고 있었으니 발견했다고 해서 무조건 스페인 땅이라고 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기는 하지만 말이다. 힘이 없는 원주민들은 본인들의 땅이라고 제대로 주장도 못 해 보고 역사 속으로 묻히고 말았다. 폰세 데 레온이 ‘꽃피는 부활절’에서 따와서 지은 이름이 바로 Florida이다.

그가 부활절 날 플로리다에 처음 상륙했기에 그렇게 이름 지었다는 설도 있다. 그 후 플로리다는 스페인과 프랑스가 서로 먼저 차지하려고 눈독 들이는 땅이 되었다. 스페인 군대가 프랑스 군인 수백 명을 몰살하는 사건도 있었다. 플로리다가 스페인의 식민지로 확정된 이후에도 활발한 식민지 개발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가 1760년대에 끝마친 7년 전쟁에서 위세를 떨친 영국이 플로리다를 스페인으로부터 넘겨받았다. 그러다가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고 나서는 스페인이 플로리다를 도로 찾아갔다. 스페인이 미국의 독립전쟁에서 프랑스와 함께 도와 미국을 도와주면서 플로리다를 돌려받아 다시 손에 넣은 것이다.

그런데 토머스 제퍼슨 대통령 시절에 루이지애나 구입을 통해 미국의 영토를 두 배로 늘린 미국은 플로리다를 손에 넣으려는 생각에 골몰하기 시작했다. 이때 때마침 조지아 주의 흑인 노예들이 플로리다로 도망하는 일이 자주 일어났다. 미국은 노예 제도를 공식적으로 실시하는 나라이지만, 스페인은 인도적인 차원에서 노예 제도를 공식적으로 폐기했기 때문에 플로리다로 탈출하면 노예들은 자유의 몸이 되었다. 노예를 자꾸 잃게 된 미국은 아무래도 플로리다를 단단히 손 좀 봐야겠다고 별렀다.

그 후 플로리다로 도망친 노예들이 미국 땅을 침범하기도 하고 이를 쫓느라고 미국 군대가 플로리다를 침범하기도 하였다. 플로리다에 살던 인디언들이 도망친 노예와 합세하여 미국 땅을 침범하곤 하는 것이다. 이 인디언들도 대부분 미국에서 플로리다로 쫓겨온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자기들의 옛땅을 되찾고자 한 것이다. 이것을 본 미국은 스페인에 이를 막아 줄 것을 요청했으나 스페인은 이 요청을 거절했다. 이에 기다렸다는 듯이 1818년 3월 미국 군대는 플로리다로 밀고 들어갔다. 병력이 열세이던 스페인 군대는 초전에 미국 군대에 항복하고 말았다.

앤드루 잭슨이 이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으며, 이 일로 인기를 끌게 된 그는 나중에 7대 대통령이 되기까지 승승장구하게 된다. 그렇다고 해도 전쟁 후에 미국은 플로리다를 점령하는 것은 피했다. 다른 나라의 이목이 두려웠을까? 1821년에 조약을 체결하여 플로리다를 스페인으로부터 사들이는 형식을 취했다. 단돈 5백만 달러에 말이다. 그러나 실제로 미국이 스페인에 5백 만 달러를 건네주지는 않았다는 설이 있다. 스페인이 미국에 주어야 하는 전쟁 배상금도 5백만 달러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쨌든 힘에 밀린 스페인은 플로리다를 포기하게 되고, 플로리다는 미국의 영토가 되어 현재에 이르렀다. 부당하게 취득한 땅이라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허리케인이 해마다 플로리다를 휩쓸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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