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어디까지 먹어봤니?…’이색라면’ 열전

스님도 먹는다는 ‘야채라면’…군부대에서 히트 친 ‘간짬뽕’

시대를 앞서간 ‘마라불닭볶음면’…용기로 대박 난 ‘왕뚜껑’

“어머, 이건 뭐지?”

새해를 맞아 다이어트를 시작한 박모씨(30·여)는 최근 대형마트를 찾았다가 신기한 라면을 집어 들었다. 채소로만 만든 오뚜기 ‘채황라면’이다. 전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라면이었다.

긴가민가한 마음으로 채황라면을 끓였다가 눈이 번쩍 뜨였다. 박씨는 “모르고 먹으면 채소라면인 줄 모를 것 같다”며 “몇 봉지 더 사놓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한국인만큼 라면을 사랑하는 민족도 드물다. 우리나라 최초의 라면인 ‘삼양라면’이 보릿고개 시절인 1963년에 만들어졌으니 라면의 역사는 한국 현대사와 함께 흘렀다.

50년이 훌쩍 넘는 세월만큼 수백여종의 라면이 등장했다가 사라졌다. 신라면·안성탕면·육개장사발면·짜파게티처럼 장수하는 라면도 있지만 시대를 앞섰다가 사라지거나 좁은 틈새시장을 노려 승승장구한 라면도 있다.

농심·오뚜기·삼양·팔도 4개 라면회사가 야심 차게 선보인 ‘이색라면’을 살펴봤다.


◇스님도 먹는다는 ‘야채라면’…일본에도 없는 ‘감자면’

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오직 채소만 섭취하는’비건(Vegan)’ 인구가 50만명을 돌파하면서 ‘그린푸드 시장’이 커지고 있다. 롯데마트몰은 지난달 30일부터 ‘비건 상품 기획전’을 열고 동물성 성분을 배제한 비건 전용 상품 판매를 시작했다.

시대를 먼저 읽은 걸까. 농심은 7년 전 채식주의자를 겨냥한 ‘야채라면’을 선보이며 ‘비건 라면’의 포문을 열었다. 기름과 육류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양파·마늘·생강·청경채·토마토 등 7가지 야채로만 만든 데다 ‘할랄'(halal) 인증까지 받은 덕에 ‘스님도 먹는 라면’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다.

얼큰한 맛보다 야채 특유의 신선하고 담백한 맛을 선호하는 마니아층 사이에선 알게 모르게 꾸준히 인기다. 열량도 350㎉(칼로리)로 일반 라면보다 30%가량 낮기 때문에 다이어트를 목적으로 야채라면을 찾는 소비자도 은근히 많다.

농심 ‘감자면’도 아는 사람은 꾸준히 즐기는 ‘재야의 라면’으로 꼽힌다. 감자면은 진짜 생감자를 넣고 두드린 반죽에서 면발을 뽑아냈다. 양파와 소고기로 맛을 낸 국물도 샤브샤브처럼 개운하다.

특히 감자면은 ‘일본 관광객이 한국에서 꼭 사가는 라면’으로 유명하다. ‘라면 천국’으로 불리는 일본에도 없는 ‘감자 면발’ 때문이다. 급기야는 일본 인기 만화인 ‘메시바나 형사 타치바나’에서 농심 감자면이 등장하기도 했다.

농심 관계자는 “감자면은 라면계에서 ‘재야의 고수’로 꼽힌다”면서 “일본 관광객이 서울역 롯데마트나 영종도 이마트에서 사재기할 정도로 작지만 두터운 마니층이 형성된 라면”이라고 귀띔했다.


◇비건 겨냥한 ‘채황’…맛으로 대박 친 ‘쇠고기미역국라면’

오뚜기에서 진라면, 진짬뽕 등 ‘진(眞)’ 계열 라면만 잘나가는 게 아니다.

오뚜기가 지난해 11월 출시한 ‘채황’은 ‘채소라면의 황제’라는 이름답게 버섯·무·양파·마늘·양배추·청경채·당근·파 등 10가지 채소로 만들었다. 비건 라면 계열 중에서 가장 다채로운 채소가 들어갔다.

면발도 감자전분을 사용해 뽑았기 때문에 부드럽고 쫄깃하다. 또 표고버섯과 된장으로 국물 맛을 우려내 육류 없이도 깊은 감칠맛을 느낄 수 있다는 평이다.

건강과 맛을 모두 잡았다는 입소문을 타면서 채황은 롯데마트몰에서 진행 중인 ‘비건 상품 기획전’의 대표 상품에 이름을 올렸다.

한국인의 입맛을 제대로 공략해 ‘대박’을 친 라면도 있다. 오뚜기 ‘쇠고기미역국라면’은 라면으로 미역국 맛을 구현한 최초의 제품이다. 미역국과 짝꿍인 ‘밥맛’을 살리기 위해 국내산 쌀가루도 10% 첨가했다.

라면스프도 색다르다. 쇠고기미역국라면 스프에는 양지·우사골·돈사골 등 육수가루와 참기름, 소고기, 미역이 들어갔다. 건더기도 건미역, 참기름에 볶은 미역, 쇠고기 건더기 등 미역국 조리법과 동일하다.

미역국 맛을 고스란히 살린 덕에 쇠고기미역국라면은 출시 직후 500만개가 팔려나갔다. 출시 2개월 차에는 1000만 고지를 돌파하며 오뚜기의 인기 상품에 등극했다.


◇시대를 앞서간 ‘마라불닭볶음면’…군인이 사랑한 ‘간짬뽕’

농심 야채라면이 트렌드를 내다본 혜안으로 마니아층을 모았다면, 시대를 앞서갔다가 외면을 받은 ‘비운의 라면’도 있다.

국내 라면업계의 ‘원조’ 삼양식품이 지난 2017년 7월 출시한 ‘마라불닭볶음면’이 대표적이다. 마라불닭볶음면은 원래 중국인이 좋아하는 ‘마라’를 불닭볶음면에 접목한 중국 수출 전용 라면으로 기획됐다 하지만 일부 국내 소비자의 요청으로 같은 해 10월 내수용으로 출시됐다.

문제는 시기였다. 지난해 ‘마라탕’이 전국적인 인기를 끌면서 지금은 마라 관련 라면이 시중에 다수 출시됐지만, 2017년은 한국에 마라 열풍이 불기 2년 전이었다. 결국 마라불닭볶음면은 극소수의 소비자에게만 사랑을 받다가 다시 중국 수출 전용으로 전환됐다.

시중보다 ‘군부대’에서 더 큰 인기를 얻은 라면도 있다. 삼양식품이 지난 2007년 ‘국물 없는 짬뽕’을 콘셉트로 출시한 ‘간짬뽕’은 출시 이후 군부대에서 대박을 터뜨리면서 단숨에 군대 매점(PX) 인기 상품 대열을 꿰찼다.

2015년 대학생 라이프 매거진 ‘대학내일’이 복학생 4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에서 간짬뽕은 ‘가장 기억에 남는 군대 매점 음식’ 3위, 라면 부문 1위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삼양식품은 간짬뽕 출시 10주년을 맞아 2017년 한정판 패키지 ‘군대간짬뽕’을 선보인 바 있다.


◇”참신한 마케팅도 실력”…왕뚜껑, ‘흑화 뽀로로’로 다시 전성기

팔도는 맛도 맛이지만 남다른 라면 용기로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은 기업이다. 1990년 국내 최초로 대접 모양의 뚜껑을 얹어 출시한 ‘왕뚜껑’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대표적인 스테디셀러다.

팔도의 ‘용기 마케팅’은 최근에도 세간의 이목을 받았다. 팔도는 지난해 12월 출시한 ‘더왕뚜껑컵 순한맛’ 용기에 ‘초통령’ 뽀로로 캐릭터를 끼워 넣어 입소문을 탔다.

특히 ‘격렬하게 쉬고 싶다’, ‘쉬엄쉬엄’ 등 2030세대의 갈증을 자극하는 문구가 공감을 사면서 눈길을 끌었다. 모자와 안경을 벗어 던지고 긴 머리를 찰랑이며 삐딱하게 누운 뽀로로의 모습도 관심을 불렀다.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뽀로로 흑화 버전’, ‘뽀로로가 머머리(대머리)가 아니었어?’라는 게시글이 오르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팔도 관계자는 “참신한 마케팅도 성공 요인 중 하나”라며 “왕뚜껑 출시 30주년을 맞아 2005년 ‘왕뚜껑 소녀’로 유명했던 황보라씨를 모델로 선정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