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호의 역사칼럼] 6. 아메리카대륙 쟁탈전

예전에 한국에서는 ‘땅따먹기’라는 아이들 놀이가 있었다. 커다란 사각형이나 원을 그려 놓고 그 안에서 사금파리 혹은 병뚜껑을 손가락으로 튕겨서 하는 놀이이다. 사금파리 혹은 병뚜껑을 ‘목자’라고 한다. 놀이하는 사람 각자에게 기본적으로 주어진 ‘집’을 한 귀퉁이에 그려 놓고 시작하며, 규칙에 정해진 대로 ‘목자’를 세 번 튕겨서 죽지 않고 자기 ‘집’으로 돌아오면 그 삼각형만큼이 자기 땅이 되는 놀이이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항로를 발견한 이후에 유럽의 거의 모든 나라가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에서 식민지 쟁탈전을 한 것을 보면, ‘땅따먹기’ 놀이와 흡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유럽 열강들은 미지(?)의 땅에 이미 원주민이 있다고 하더라도, 아무런 사람들이 살고 있지 않은 것으로 여기고 자기네 나라 사람들을 데리고 와서 나무 심듯이 자리 잡게 했다. 이렇게 ‘사람을 나무 심듯이 한다’고 해서 그런 땅을 한자어로 ‘식민지(植民地)’라고 부른다. 특히 아메리카 대륙은 탐험가가 지나간 땅은 거의 무조건 그 탐험가를 보낸 나라의 식민지가 되었다.

스페인이 보낸 탐험가 콜럼버스가 남아메리카 쪽을 우선 탐험했고, 그 후에도 스페인 탐험가들은 그쪽을 탐험했으므로 남아메리카 대부분 땅이 스페인의 식민지가 된 것은 당연하다 하겠다. 그러나 브라질 쪽은 포르투갈 식민지가 되었는데, 그 이유는 1497년 교황이 주선한 조약에서 포르투갈이 끈질기게 보채는 바람에 브라질 쪽을 포르투갈에게 떼어준 결과이다. 그 후 스페인은 계속 북쪽으로 진출하여 플로리다, 멕시코, 캘리포니아, 텍사스 일대를 통과해 콜로라도에 이르렀다.

이에 뒤질세라 프랑스, 영국, 네덜란드, 러시아 등의 나라들도 뒤늦게 땅따먹기 경쟁에 달려들었다. 이 나라들은 주로 북 아메리카 지역을 탐험하기 시작했다. 프랑스는 지금의 캐나다 퀘벡 지역으로 상륙해 미국 중부지역을 통과하여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루이지애나 지역까지의 땅을 따먹었다.

영국은 주로 지금의 버지니아 부근 해안 쪽에서부터 남쪽 조지아에 이르는 땅에 발을 붙이기 시작한 동시에 프랑스가 차지한 지역의 북쪽인 캐나다 땅을 먹는 데에 만족해야 했다. 네덜란드는 지금의 뉴욕지방에 둥지를 틀기는 했으나, 북아메리카 대륙에서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자 남아메리카로 내려가서 카리브 해의 서인도제도 일부와 브라질 바로 북쪽에 있는 지금의 수리남 지역 일대에 발을 뻗었다.

아메리카 땅따먹기 경쟁에 러시아도 나중에 끼어들었는데, 이 나라는 다른 나라와 달리 해상으로 아메리카에 진출한 것이 아니라, 육지로 진출하다시피 했다. 러시아는 우선 아시아의 시베리아 벌판을 빠른 속도로 먹었다. 러시아가 한창 시베리아를 삼킬 때는 한 해에 한반도 면적이 넘는 땅을 먹기도 했었다고 한다. 러시아가 시베리아를 다 먹은 후에는 시베리아에 연결된 아메리카 지역에도 진출했는데, 지금의 알래스카와 그에 연결된 남쪽 해안으로 내려와 캘리포니아의 일부 지역에까지 이르렀다.

이렇게 땅따먹기를 계속하다 보니까, 아메리카 대륙에는 더는 식민지를 만들 땅이 없어지자, 이제는 저희끼리 전쟁을 해서 땅을 빼앗거나, 협박하여 갈취하거나, 서로 적당히 흥정하여 돈을 받고 건네주기도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영국이 전쟁을 통해 지금의 뉴욕 지역을 네델란드에게서 건네받고, 프랑스의 식민지 일부를 빼앗아 판도를 조금 넓혔다.

이런 땅따먹기를 선배들에게서 잘 배워 이어받은 것이 나중에 독립한 미국이다. 루이지애나 지역, 플로리다, 미국 남서부 멕시코 지역, 알래스카, 하와이 등을 매입하거나, 빼앗거나 하면서 덩치를 불려 현재의 거대 미국이 형성되었다. 이렇게 형성된 나라가 결과적으로는 지금 잘 사는 나라가 된 것은 무척 다행이라 하겠다. 지금 미국 땅에 살고 있는 우리는 그 축복을 누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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