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 220만명 사망 vs. 집단면역 

이상연의 짧은 생각 제160호

코로나19의 확산을 예측하는 모델을 놓고 영국과 미국 등 서구 국가에서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요즘 가장 ‘핫’한 모델은 ‘임페리얼(Imperial)’ 모델입니다. 영국 임페리얼 칼리지의 닐 퍼거슨 교수팀이 만든 보고서에서 비롯된 말입니다. 이 보고서는 정부가 ‘국가봉쇄’ 를 하지 않을 경우 영국은 최대 50만명, 미국은 220만명이 사망할 것이라는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3월초까지 느긋한 입장이었던 영국 보리스 존슨 총리가 갑자기 마음을 바꿔 봉쇄를 결정한 것도 바로 이 임페리얼 모델 때문입니다. 서서히 늘던 확진자가 초고속으로 급증하는 것을 보고 “이 모델이 맞다”라고 생각한 까닭입니다. 본인까지 확진 판정을 받았으니 아마 지금은 이 모델을 철석같이 믿고 있을 것입니다.

임페리얼 모델은 미국의 정책결정에도 심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CDC가 내부적으로 만든 보고서에도 “최악의 경우 200만명이 사망한다”고 적혀 있습니다. 미국 정부 인사 가운데는 대통령의 코로나19 태스크포스 코디네이터인 데보라 벅스 박사가 이 모델의 신봉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모델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등장했습니다. 옥스퍼드 대학교의 수네트라 굽타 교수인데 그녀는 “코로나19이 새롭게 세를 확산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영국인의 절반 정도는 감염됐으면서도 증상이 없어 모르고 있다”는 이론을 들고 나왔습니다.

굽타 교수는 집단 면역(Herd immunity)을 주창하는 학자인데 집단면역은 한 바이러스의 감염자가 60% 정도가 되면 집단적으로 바이러스에 대한 항체(antibody)가 형성돼 인류가 면역력을 갖는다는 이론입니다. 그녀는 “이미 영국인들은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력을 갖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며 추가적인 조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 옥스퍼드 모델을 실제로 국가 보건정책에 적용한 나라도 있습니다. 스웨덴은 집단 면역으로 코로나 바이러스를 이겨야 한다며 국가봉쇄나 자택대피 등의 정책에는 아예 눈을 돌리지 않습니다. 물론 사회적 거리두기 등을 통해 전파를 늦춰 의료시스템의 부담을 덜겠다는 생각은 같지만 예전처럼 학교도 열고, 술집에서 교제도 하는 등 평상시와 다름없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옥스퍼드 모델은 아직 검증되지 않았고 이미 인구의 절반이 감염된 상태라는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반론이 많습니다. 만약 스웨덴의 실험이 실패한다면 그저 실패에 끝나지 않고 수많은 인명이 희생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다고 임페리얼 모델이 확실한 것도 아닙니다. 이미 퍼거슨 교수는 예상 사망자의 숫자를 크게 낮춰 잡아 신뢰성을 떨어뜨렸습니다. 물론 본인은 각국의 봉쇄정책 시행 정도를 반영한 것이라고 변명했지만 말입니다. 그래도 이 모델은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제하는 근거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도 있습니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한국이나 중국처럼 한차례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을 저지한 국가도 또 다시 피해를 당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 전에 효과가 확실한 백신이 나타나면 최상의 시나리오겠지만 감염병 전문가들은 올 가을부터 2차 확산이 있을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백신이 예상보다 빨리 출시되거나, 집단면역의 실험이 성공하지 않으면 올해 내내 코로나와의 싸움이 이어질 것 같습니다.

대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