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닭과 꿀벌의 삶이 주는 교훈

 

김형철 연세대 철학과 교수

 

새벽이 되면 닭들이 운다.

그런데 그날은 아직 새벽이 되기 전인데 닭들이 운다. 그것도 비명을 질러가며 울고 있다. 화들짝 놀란 주인이 닭장으로 가보니 무려 600 마리의 닭이 죽어 있었다. 닭장 저쪽 구석에서 닭들의 천적인 수리부엉이 한 마리가 닭 한 마리를 낚아채 여유롭게 먹고 있었다.

수리부엉이 한 마리가 무려 600마리를 죽인 것이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수리부엉이가 죽인 것이 아니라, 닭들이 서로 먼저 살겠다고 출구 쪽으로 달려가다 압사한 것이다. 수리부엉이는 한 마리만 죽이고, 나머지 닭들은 동료 닭들이 죽인 것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희생을 최소화 할 수 있는 길은 없었을까?

꿀벌은 꿀을 절대 혼자 먹지 않는다. 밖에 나갔다가 꿀을 발견하면 벌집에 돌아와 동료들 앞에서 춤부터 춘다. 그런데 이춤은 사실 소통의 수단이다. 그 벌은 동료 벌들에게 꿀이 얼마나 멀리 있는 지, 얼마나 많이 있는 지,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 지를 날갯짓으로 알리는 것이다.

그러면 그것을 본 다른 꿀벌들이 어떤 방향으로 몇 마리를 파견해야 할 지를 결정한다. 그렇게 꿀벌들은 협력해 같이 꿀을 모아간다. 함께 저장하고, 함께 꿀을 먹는다.

그런데, 이 꿀벌의 집에 천적인 말벌이 침입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말벌 한 마리는 대개 꿀벌보다 5~6배 크다. 일단, 꿀벌들이 말벌 주위를 뺑 둘러가며 에워싼다. 그리고 열심히 날갯짓을 한다. 온도를 높이기 위해서다.

말벌이 고온에 약하다는 사실을 꿀벌들은 안다. 그래서 45도까지 온도가 상승하면 말벌은 죽고 만다. 이 과정에서 꿀벌 중 몇 마리는 말벌의 공격을 이기지 못하고 죽기도 한다. 그러나 자신이 죽는 한이 있더라도 포위망을 풀지는 않는다.

말벌이 죽고 나면 다시 꿀벌들은 날갯짓을 열심히 해 온도를 낮춘다. 48도가 되면 자신들도 죽는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닭들과 확연히 다른 DNA를 꿀벌들은 가진 것 같다. 닭들은 천적인 수리 부엉이의 공격에서 자신이 살아 남기 위해 발버둥치다가 동료 닭도 죽이고 자기도 죽는다. 그야말로 ‘너 죽고 나 죽자’ 식으로 공멸한다.

그러나 꿀벌들은 자기 한 몸 희생을 각오한 결과 천적인 말벌을 죽이는 데 성공한다. 그렇게 ‘나 죽고 우리 살자’ 식으로 생존해 간다.

닭들은 모든 것을 제로섬 게임으로 사고한다. 그래서 ‘닭대가리’ 라고 하지 않는가! 꿀벌들은 자신의 행동을 ‘win win’ 하는 관점에서 조율한다. 닭들은 개죽음 당하지만 벌들에게는 명분있는 희생이 있을 뿐이다.

인간이 지구를 지배하게 된 것은 상호 협력할 줄 아는 논 제로섬 게임의 사고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구상에서 가장 먼 거리를 달릴 수 있는 동물이 바로 인간이다.

한 번 사냥감을 정하면 가장 빠르게는 아니지만 끝까지 추적해 잡는다. 그것도 혼자가 아니라 같이 협동해서 잡는다. 인간의 언어도 사냥터에서 사냥하기 위한 소통의 목적으로 나온 것이라고 한다.

그럼 닭 대가리가 되는 것이 나은가? 아니면, 용 꼬리가 나은가? 리더가 되려면 닭 대가리가 되는 것보다 용 꼬리가 되는 게 낫다. 왜냐하면 우수한 집단에 가서 가장 낮은 자세로 조직을 운영하는 서번트 리더십이 최고이기 때문이다.

강한 조직과 약한 조직의 차이는 개개인 한 명, 한 명이 자기 희생적 자세로 일하느냐에 달려 있다.

꿀벌은 절대 꿀을 혼자 먹지 않기 때문에, 그리고 자기의 몸을 던지기 때문에 천적을 이길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