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어넌 음모론] ①”이런 용어 쓰면 조심하세요”

연방 의사당 난입 주도하며 ‘미국 사회 공공의 적’ 부각

“트럼프가 대각성 이끌 구세주”…한인 신봉자들도 많아

딥스테이트, 폭풍 등 용어 사용…마스크 착용도 거부해

지난 6일 연방의회 의사당 난입테러 과정에서 경찰의 총에 맞아 사망한 샌디에이고 거주 34세 여성 애쉴리 바빗은 전날 워싱턴 DC로 향하기 전 트위터에 이러한 메시지를 남겼다.

“아무것도 우리를 막을 수 없다…그들은 계속 시도하고 있지만 폭풍은 24시간 안에 DC에 강림할 것이다….어둠이 빛으로!”(“Nothing will stop us….they can try and try and try but the storm is here and it is descending upon DC in less than 24 hours….dark to light!”)

사망한 애쉴리 바빗/Twitter

상징적인 표현 같이 들리지만 사실은 트럼프 지지자들의 음모론인 ‘큐어넌(QAnon)’을 아는 사람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말이다. ‘폭풍'(Storm)은 구세주적인 정치인이 타락한 세력(딥스테이트)으로부터 세상을 구원하는 것을 말하는데 성경으로 치면 ‘예수 그리스도 재림’과 비슷한 개념이다. 문제는 이들이 믿는 예수 그리스도가 다름아닌 도널드 트럼프라는데 있다.

◇ 큐어넌 음모론의 태동

이 음모론은 지난 2017년 10월 자신을 미국 정보당국의 최고위직 출신이라고 주장하는 ‘Q Clearance Patriot’이라는 이용자가 극우주의자들의 게시판인 포챈(4chan)에 올린 게시물에서 비롯됐다. Q Clearance라는 말은 미국 정보당국의 1급 기밀에 접근할 수 있는 자격을 말하며 여기에 익명을 뜻하는 Anonymous가 더해져 QAnon이라는 명칭이 등장했다.

태동한지 3년여에 불과한 음모론이지만 그 동안 미국사회에서 떠돌던 온갖 음모 이론을 잡탕식으로 짜집기한 뒤 “이 세상, 특히 미국은 온통 음모에 휩싸여있다”는 세계관을 주입하면서 신봉자를 늘려나갔다.

비밀결사체인 ‘일루미나티’를 들먹이며 빌 게이츠가 코로나19 백신을 통해 사람들을 지배한다고 한다거나, 영국왕실 등이 사실은 일루미나티 핵심세력인 파충류 외계인 ‘렙틸리언’이라고 주장하는 등 정상적인 사고로는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도 주장하고 있다. 또한 개신교(프로테스탄트) 쪽 음모론까지 흡수하면서 교황을 비롯한 천주교 전체와 예수회를 ‘세계 정복을 꿈꾸는 사악한 집단’으로 공격하기도 한다.

특히 미국과 유럽등에서 등장한 백인우월주의, 네오나치, 반 페미니즘 등 극우 대안우파(Alt-Right)와 같은 맥락이어서 ‘안티파’를 최대의 적으로 삼고 있다. 이번 의회 난입 사건을 안티파에게 뒤집어 씌운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 2018년 11월30일 플로리다 브로워드카운티 경찰서를 방문한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SWAT 경찰관 2명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런데 왼쪽 경찰관 오른쪽 가슴에 큐어넌 상징인 Q 배지가 걸려있어 펜스 부통령은 이 사진을 트윗했다가 곧바로 삭제했다. https://twitter.com/jaredlholt/status/1068628419871735808 originally published on the Twitter feed of the White House Author White House employee; cropped by Beyond My Ken (talk) 18:46, 1 December 2018 (UTC)

 

◇ 음모론과 트럼프가 만났다

‘짬뽕’ 음모론으로 별다른 색깔을 지니지 못할 뻔한 큐어넌에게 독특한 정체성을 부여한 인물이 바로 도널드 트럼프이다. 큐어넌 음모론자들은 일루미나티, 프리메이슨 등으로 이어져온 ‘세계를 움직이는 비밀 조직’과 비슷한 개념인 ‘딥스테이트(deep state)’를 핵심 용어로 들고 나왔다.

딥스테이트는 선출직 대통령이나 의원들 뒤에 숨어서 실질적으로 국가를 움직이는 막강한 ‘그림자 정부’를 말하며 큐어넌 음모론자들에게는 2016년 트럼프 대선출마를 막고 기득권을 유지하려고 하는 기존의 정관계 핵심인사들이 딥스테이트로 지목됐다.

또한 딥스테이트에는 민주당 아동 성착취자들인 클린턴 전 대통령 부부가 포함돼 있으며 마피아 조직도 딥스테이트를 돕는 세력으로 종종 묘사된다. 민주당 아동 성착취자들에 대한 음모론과 관련해서는 ‘피자게이트’도 등장하는데 워싱턴 DC의 한 피자가게 지하에 아동성애자들을 위한 학대장소가 있고 힐러리 클린턴과 민주당 관계자들이 아이들을 성적으로 학대하고 있다는 황당한 주장이다.

이 영향으로 지난 2019년 큐어넌 추종자인 24세 청년 앤서니 코멜로가 대낮에 뉴욕 최대 마피아 패밀리 가운데 하나인 감비노파의 부두목 프랭크 갈리를 총기를 난사해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트럼프 지지자인 코멜로는 범행동기를 묻는 검사의 질문에 “트럼프 대통령을 돕고 싶었다”고 말했으며 그로 인해 그동안 수면 밑에 숨어있던 큐어넌의 정체가 미국 전체에 공개됐다.

큐어넌 음모론은 발전을 거듭해 결국 2016년 대선 출마 당시 기존 정치권의 반대에 직면했던 트럼프를 이러한 딥스테이트의 음모에서 세계와 미국을 구해줄 구세주로 포장하기 시작했고, 트럼프 본인도 이러한 음모론을 즐겼다는 사실이 점점 드러나고 있다.

이들이 결정적으로 세력을 확장하게 된 계기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전염병 대유행의 비상상황으로 불안해하는 미국인들을 파고들어 각종 음모론을 퍼뜨리고 있다. 무엇보다 코로나19이 실제가 아닌 가상 상황이며 딥스테이트가 사람들을 통제하기 위해 조작한 것이기 때문에 마스크 착용도 필요없으며 백신도 맞을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주변에 유독 마스크 착용을 거부하는 사람이 있다면 큐어넌 신봉자인지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 복음주의 기독교도 위험하다

황당한 음모론의 총집합인 큐어넌의 이론 구조는 뜻밖에도 성경, 특히 요한계시록과 닮아 있다. 세계를 멸망시킬 공적인 ‘적 그리스도’와 같은 대상이 있고, 이러한 적과 치르게 될 대환란의 전쟁인 아마겟돈이 있으며, 결국 이를 구원할 메시아가 등장한다.

그래서 큐어넌 음모론은 복음주의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다는 것이 ‘가디언’지의 보도이다. 큐어넌 이론을 마치 성경공부 처럼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한인 중에서도 이에 심취해 음모론을 사실처럼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미주 한인 가운데 큐어넌 음모론을 마치 실제 뉴스와 현실인 것처럼 유튜브나 유사 매체를 통해 발표하며 유튜버, 심지어 언론인 행세를 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큐어넌의 메시아는 바로 도널드 트럼프이고 트럼프는 집권 초기에는 ‘하수를 배출하라(drain the swamp)’는 기존 정치 용어를 쓰다가 집권 후반기에는 아예 큐어넌 음모론자들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딥스테이트가 백신 개발을 방해한다”고 주장해 이들을 양지로 끌어올렸다.

메시아인 트럼프가 대각성(great awakening)을 거쳐 폭풍(storm)을 불러 워싱턴DC와 미국사회 전반에 만연한 딥스테이트를 휩쓸어 버리면 미국은 ‘새 하늘과 새 땅’, 즉 신세계로 탈바꿈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그래서 이들은 트럼프가 이번 대선에서 패배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이같은 ‘인지 부조화’를 해결하기 위해 끊임없이 선거 부정과 투표기기 조작 등을 주장했고, 이같은 주장을 그대로 법정에서 되풀이한 시드니 파월과 루디 줄리아니는 중요한 대선 관련 소송을 웃음거리로 만들어 버렸다. (2편에 계속)

이상연 대표기자

큐어넌의 상징인 성조기 무늬의 Q. /CN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