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미국 시민권자인데 한국 선거법 위반으로 처벌?

4.10 총선 재외선거 앞두고 애틀랜타 한인 신문서 논란 발생

자국민의 해외 범죄 처벌 가능…타국 국적있으면 입국금지도

범죄 여부 조사는 현지법 존중해야…문제있으면 소송도 가능

오는 4월10일 완료되는 한국 제22대 국회의원 선거를 위한 재외선거가 오는 27일부터 4월 1일까지 6일간 실시된다.

현 정권에 대한 심판 여부를 둘러싸고 열기가 뜨거워지는 총선을 앞두고 미국 애틀랜타에서는 재외선거법의 미국 현지법 위반 여부를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져 관심을 모으고 있다.

사건의 발단은 지역 한인신문 한곳이 최근 게재한 ‘이번 총선의 국민의힘 비례대표 후보로 해외동포세계지도자협의회 김명찬 이사장을 적극 지지한다’는 내용의 광고. 광고를 낸 사람은 애틀랜타에 거주하는 이 협의회의 김기수 북미주 총회장이다. 김 총회장은 기자에게 “김명찬 이사장이 재외동포의 권익을 대변해줄 적임자라고 생각해 선한 의도에서 광고를 게재했다”고 설명했다.

이 광고가 게재되자 애틀랜타를 포함한 미주 동남부 지역의 재외선거 관리를 위해 중앙 선관위에서 파견된 애틀랜타총영사관 선거영사가 신문사에 광고 게재 경위를 문의했다. 해당 영사는 “특정 정당이나 후보자를 지지 또는 추천하거나 반대하는 내용이 포함되거나 정당의 명칭 또는 후보자의 성명을 나타내는 광고는 현행 공직선거법 상 재외선거 관련 조항에 명백히 위배된다”고 말했다. 실제 중앙 선관위에 따르면 재외선거 규정 위반 사례의 대부분이 이같은 불법 신문광고이다.

신문사 측은 칼럼 등을 통해 “재외선거관이 강압적인 자세로 일관했고 광고를 수주한 직원에게 취조하듯 했다”면서 “선거법을 위반하면 시민권자라도 한국 입국을 금지한다는 등 협박으로 해석할 수 있는 발언까지 했다”고 주장했다.

◇ 자국민의 해외 범죄 처벌 규정 둘 수 있어

그렇다면 한국 정부가 미국에서 발생한 한국 재외선거법 위반에 대해 조사하거나 처벌하는 것이 미국의 현행법과 상충되지는 않는걸까? 이에 대해 법률 전문가들은 “자국의 법률을 다른 나라에 적용할 때는 국제법의 원칙과 해당 국가의 법률 체계를 존중해야 한다”면서 “이러한 원칙을 따른다면 자국민이 해외에서 범죄를 저질렀을 경우 처벌하는 규정을 둘 수 있다”고 해석하고 있다.

익명을 요청한 한인 변호사는 “한국 국민이 미국에서 한국법률을 위반할 경우 한국 검찰에 고발되고 절차에 따라 법적인 처벌을 받는 것 자체는 미국 현행법률을 위반하지 않는다”면서 “하지만 이 과정에서 위반 용의자의 의사에 반하는 강제 조사 등의 문제가 발생하면 안되며 미국 법률이 보장하는 개인의 권리보장이나 국제법상 인권 기준에 부합하는지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이같은 현지법과의 법리 충돌 우려 때문에 한국 선관위는 미국 등 해외에서의 재외선거법 위반에 대해 1차에 한해 경고 조치를 내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위반 사실이 명백하고 심각한 경우에도 징역형이나 벌금형 대신 여권 반납 또는 발급 제한 등의 행정적 처벌을 주로 사용하고 있다. 지난 2016년 제20대 총선을 앞두고 고 장준하 선생의 아들인 장호준 목사(코네티컷주)는 미국과 프랑스 한인 신문에 ‘박근혜 정부를 심판하자’는 내용의 광고를 게재한 혐의로 고발돼 재외선거 제도 도입 이후 최초로 여권반납 처분을 받았다.

◇ 미국 시민권자도 위반시 한국 입국금지 가능

미국 국적을 지닌 한인 시민권자가 한국 재외선거 관련 법률을 위반했을 경우 내려지는 가장 중한 처벌은 한국 입국금지 조치다. 국제법 전문가들은 “국제법의 원칙에 따라 입국금지 조치는 한국 정부의 주권에 속하는 문제여서 한국의 법률과 규정에 따라 입국을 허용하거나 거부할 권리가 있다”면서 “이같은 규정은 미국 현행 법률을 침해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해석하고 있다.

하지만 입국금지 조치를 내리기 위해서는 적절한 조사나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이같은 조사를 한국의 재외선거관이 미국 시민권자에게 강제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미국 시민권자에 대해 한국 법률의 위반 여부를 조사하기 위해서는 일반적으로 한미 양국의 외교 경로를 통해야 하며 미국의 현행법과 양국간의 협정을 준수하는 한편 미국 정부의 동의와 협력을 받아야 한다.

만약 미국 시민권자가 충분한 조사 없이 한국 입국금지 조치를 받았다면 한국 법원은 물론 미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할 수도 있다. 외국 정부가 미국 시민에게 보장된 수정헌법 제1조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했다고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할 경우 승소 여부를 떠나 한국 정부에 타격을 주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이유 때문인지 재외선거 제도 도입 12년째를 맞았지만 미국 시민권자에게 한국 입국금지 조치가 실제로 내려진 경우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 한인 미디어의 역할 중요

애틀랜타총영사관 선거영사는 해당 신문의 보도에 대해 “지역의 재외선거를 관리하는 책임자로서 명백한 위반 사항의 경위를 알아보기 위해 협조를 구한 것 뿐인데 오해한 것 같다”면서 “결코 강압적인 태도로 정보를 요구하거나 협박을 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애틀랜타 한국정부 관련 단체 인사는 “선거가 있을 때마다 한국 정부의 재외선거 홍보 광고를 게재하는 한인 언론사들이 동시에 한국 선거법을 위반하는 광고도 싣고 있어 문제가 발생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중앙선관위 측은 “재외선거법 위반의 대부분이 불법적인 신문광고이기 때문에 한인 언론사들의 관련 법률 숙지 및 준수가 절실하다”면서 “공정하고 순조로운 재외선거관리를 위해 한인 미디어들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상연 대표기자

재외선거 포스터/중앙 선관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