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연 칼럼] 오이 밭에서는 신을 고쳐 신지 않는다

비키 아이즈먼/CBS NEWS 캡처

 

미국을 대표하는 세계적 권위지인 뉴욕타임스도 여러 ‘흑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지난 2008년 보도된 ‘존 매케인의 로비스트 스캔들’입니다.

2008년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로 확정된 매케인 상원의원이 미모의 여성 로비스트인 비키 아이즈먼(Vicki Iseman)과 1990년대 후반 부적절한 관계를 가졌다는 정가의 소문을 그대로 기사화한 것입니다.

당시 민주당 버락 오바마 후보를 공개 지지했던 뉴욕타임스가 10년전의 일을 오로지 익명의 취재원만을 인용해 사실처럼 보도했기 때문에 공화당과 지지자들은 분노를 감추지 못했습니다. 또한 언론학자들까지 나서 취재 과정과 보도 결정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면서 뉴욕타임스는 곤경에 빠졌습니다.

비키 아이즈먼은 뉴욕타임스를 상대로 “허위로 내가 존 매케인과 로맨틱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처럼 보도해 명예를 훼손했다”며 2700만달러의 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그는 “매케인 의원의 전용기에 함께 탑승했고 상원 상무위 소속인 매케인 의원에게 로비를 한 것도 사실이지만 모두 합법적인 것이었고 개인적인 관계는 결코 맺지 않았다”고 주장했습니다.

처음에는 “기존 보도를 고수하겠다”고 강경한 자세를 취했던 뉴욕타임스는 결국 재판을 피하기 위해 아이즈먼과 합의를 했는데 금전 배상 대신 아이즈먼이 요구한 정정보도를 수용하는 ‘굴욕’을 당했습니다. 뉴욕타임스는 2009년 2월 이례적으로 신문에 ‘독자에 대한 노트’라는 제목으로 “우리의 기사가 존 매케인 상원의원과 비키 아이즈먼 사이에 부적절한 관계가 있었다는 점을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는 정정기사를 실었습니다.

이 사건이 10년이 지나서야 수면 위로 떠오른 이유는 2000년에도 대선 경선에 출마했던 매케인의 선거본부가 당시 항간에 떠도는 두 사람의 소문을 듣고 적극적인 대응에 나섰기 때문입니다. 워싱턴포스트는 2008년 뉴욕타임스의 보도 직후 “당시 선거본부 책임자인 존 위버가 아이즈먼을 직접 만나 ‘매케인 후보와 당장 모든 접촉을 중단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위버는 아이즈먼이 자신의 고객인 케이블 업체들에게 “상원 상무위 핵심 의원(매케인)은 물론 그의 보좌관들과도 밀접한 유대가 있다”고 과시한다는 정보를 듣고 곧바로 대응에 나섰습니다. 그는 아이즈먼에게 “사실이 아니겠지만 괜한 오해를 불러 일으키면 매케인 후보가 큰 타격을 받는다”며 협조를 부탁했고 아이즈먼은 이를 수용했습니다.

이 스캔들을 보면서 사실이 아니더라도 오해가 생길 만한 행동은 가능하면 적극적으로 피하는 것이 공인이 지녀야할 기본적인 덕목이라는 점을 깨닫게 됩니다. 또한 이렇게 대응했던 일도 나중에는 여러 방식으로 공개돼 문제가 될 수 있어 여론을 먹고 사는 정치인에게는 ‘위기관리 매뉴얼’이 필요하다는 교훈도 얻게 됩니다.

현재 한국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대통령 처가 관련 고속도로 스캔들을 보면서 ‘오이 밭에서는 신도 고쳐 신지 않는다’는 속담이 생각납니다. 공인이라면 정상적인 절차를 거쳐 자신의 땅 옆으로 노선이 변경되더라도 오해를 피하기 위해 토지를 처분하는 것이 현명한 대응입니다. 하물며 의혹이 짙은 노선 변경 의혹이 불거졌는데도 아무런 해명도 하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공인의 덕목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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