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연의 미국정치 이야기 8] 레이건+닉슨-매케인=트럼프

“매버릭(Maverick)”.

한 집단에 속해있지만 그 노선을 따르지 않고 독립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원래 자신의 송아지에게 주인이름이 적힌 낙인찍기를 거부했던 19세기초 텍사스 정치인이자 목장주였던 새뮤얼 매버릭(Samuel Maverick)의 이름에서 유래한 단어입니다.

매버릭은 송아지에게 고통을 주기 싫다는 이유로 낙인을 찍지 않았지만 다른 목장주들은 “실수 등으로 낙인이 찍히지 않은 소들을 모두 자기 소유로 만들려는 흉계”라며 그를 비난했습니다. 처음엔 낙인없는(unbranded) 소들을 가리켰던 이 말은 규칙을 따르지 않고 따로 행동하는 사람을 일컫는 단어로 의미가 바뀌었습니다.

현대 미국 정치사에도 매버릭이 있습니다. 지난해 별세한 존 매케인 전 상원의원입니다. 미국인들이 기억하는 그의 별명이 바로 매버릭입니다. 공화당 소속이면서 골수 공화당원, 즉 레이건 추총세력들의 노선을 따르지 않았던 매케인을 평생 따라다녔던 낙인이었습니다.

공화당 내부에서는 이단아 취급을 받았지만 사실 매케인은 정통 보수주의자입니다. 그에게 상원의원직을 ‘물려준’ 사람이 바로 배리 골드워터입니다. 애리조나주에서 종신 상원의원까지 가능했던 골드워터는 베트남전 포로 출신의 전쟁영웅인 매케인을 ‘점지’해 자신의 후계자로 키웠습니다. 결국 매케인도 멘토의 모범을 따라 죽을 때까지 애리조나주 상원의원을 지냈습니다.

매케인이 ‘정통’ 레이건 주의자들의 미움을 받게 된 것은 민주당과의 협상을 통해 선거자금 개혁법(이 법은 나중에 따로 다루겠습니다)을 통과시키고 기후변화 대처법(골수 공화당원들은 기후변화의 위협을 믿지 않습니다), 이민개혁법 등에 줄줄이 찬성표를 던졌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강단있던 매케인이지만 2008년 공화당 후보로 대통령 선거에 나설 때 공화당원들 앞에서 “링컨과 테디(시오도어 루즈벨트), 그리고 레이건의 공화당”이라는 다짐을 하게 됩니다. 레이건에 대한 충성맹세 없이는 공화당의 전폭적인 지지는 꿈도 꿀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매케인과 롬니의 실패 후 서서히 대통령의 꿈을 키운 트럼프는 매우 영리한 사람입니다. 처음부터 레이건 경제정책의 뿌리를 계승한다고 강조했고, 매케인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이민과 기후변화 문제 등에서 공화당원들이 좋아하는 이야기만 되풀이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결정적으로 첨가한 것이 닉슨에게 배운 ‘인종주의’입니다. 5회에서 소개했듯이 닉슨은 흑인 시민운동을 교묘히 이용해 남부 백인 유권자들의 마음을 공화당으로 돌려놓았습니다. 백인들의 불안감을 자극했던 흑인들의 평화행진을 중남미 이민자들의 월경으로 슬쩍 대체한 것이 바로 트럼프입니다.

통계적으로 공화당 지지자의 89%는 백인(갤럽조사)입니다. 히스패닉과 흑인은 6%와 2%, 아시안은 1% 뿐입니다. 무엇보다 트럼프가 대통령에 출마한 2016년은 레이건 때와 달리 국경을 넘어오는 유색인종의 유입이 급속히 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트럼프는 닉슨의 ‘못된’ 남부전략을 응용한 ‘장벽(Wall) 전략’을 고안해 냈습니다. 대선 캠페인기간 트럼프가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가 바로 “Wall”입니다.

트럼프는 2020년 재선 캠페인에도 이민과 인종주의 문제를 가장 많이 활용할 것입니다. 올랜도에서 재선 출정식을 갖기 전날인 17일 트위터를 통해 “곧 불체자 수백만명을 추방할 것”이라고 ‘풍선’을 띄웠습니다. 실제로는 2000명 정도만 체포하는 작전을 승인했으면서도 지지자들을 자극하기 위해 ‘조미료’를 상당히 많이 뿌린 것입니다.

결국 트럼프는 매케인의 실수에서 교훈을 얻어 ‘레이건의 좋은 점은 이어 받고, 닉슨의 교묘함은 흡수한’ 괴물같은 정치인이 됐습니다. 그렇다면 트럼프의 성공 원인이 꼭 인종주의에만 있는 것일까요?, 그리고 민주당은 미국정치의 인종주의에서 자유로울까요? 다음 회에서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대표기자

포즈까지 닮은 두 사람. /CNN

 

둘다 미국 정계의 아웃사이더였지만 결국 대통령이 된 트럼프와 레이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