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체조 금메달 수니사 리, 어번대 진학한다

몽족 후예 아시아계 여자 개인종합 우승…한국 이윤서 역대 최고 성적

아시아의 소수민족인 몽(Hmong)족 후예인 수니사 리(미국)가 29일 도쿄 올림픽 여자 기계체조 개인종합 경기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수니사 리(18)는 애칭이 ‘수니'(Suni)여서 ‘이순이’라는 한인으로 오해받기도 했지만 중국 남부와 라오스, 캄보디아에 걸친 산악지역에 거주하는 소수민족 몽족(묘족) 후손이다.

올림픽 여자 기계체조는 단체전 등 6개 금메달이 걸려있으며 도마, 이단평행봉, 평균대 및 마루운동 4개 전종목을 한 선수가 모두 차례로 펼쳐 종합점수를 매기는 개인종합 우승이 최고의 영예로 꼽힌다.

이번 대회에서는 2016년 리우 올림픽 4관왕인 시몬 바일스(24, 미국)의 2연패가 예상됐지만 바일스가 단체전 출전 뒤 ‘방향감각 상실’을 이유로 출전을 포기하면서 미국 팀내 2인자인 리가 자연스럽게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됐다.

리는 이단평행봉이 주종목이었으며 도마, 평행봉, 평균대를 마친 중간점수가 1위였으나 브라질의 레베카 안드레데는 0.17점 차로 맹렬한 추격을 벌였다. 마지막 마루운동에서 리는 마커를 떨어뜨리는 실수를 해 미국 대표팀을 긴장에 빠트렸으나 다음 순서인 안드레데가 더 큰 실수를 해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미네소타 세인트폴의 고교를 졸업한 리는 8월 앨라배마주 어번대학교에 진학해 대학 대표팀에 합류한다. 어번대 체조팀의 제프 가르바 감독은 현재 리를 지도하고 있는 세인트폴의 제스 가르바 감독의 쌍둥이 형이다.

올림픽에 출전한 최초 몽족 출신 미국인인 리는 6살 때부터 코치의 지도 아래 체조를 배우기 시작해 9살 때는 평균대에서 공중제비돌기를 하는 등 체조의 소질을 타고났다는 평가를 받았다.

리는 14살 때 미국 주니어국가대표단에 들어갔고 2018년 이단평행봉 전국선수권 대회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면서 점차 올림픽 참가의 꿈에 가까워졌다.

그의 이번 금메달은 운도 따랐다. 유력 금메달리스트 시몬 바일스(24·미국)가 정신 건강을 이유로 기권한 것이다.

그는 바일스의 퇴장으로 미국 여자 체조팀의 사실상 리더 역할을 하며 단체전에서도 은메달 수상으로 이끌어 언론에 의해 스타로 보도되고 있다.

그러나 승승장구하던 그에게도 위기는 있었다.

2019년 아버지가 사다리에서 떨어져 가슴 아래 신체가 모두 마비되는 참변을 당했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자신을 키워주었던 삼촌과 숙모를 잃었다.

리는 올림픽의 꿈을 접어야 하는 상황까지 몰렸지만 아버지의 지속적인 격려 속에 도쿄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또 팬데믹 속 아시아 혐오와 인종차별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이번에 승리를 거머쥔 리는 “그들은 우리를 이유 없이 혐오한다”며 “우리가 그들이 말하는 것 이상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것은 멋진 일일 것”이라고 말했다.

도쿄올림픽 기계체조 개인종합에서 우승한 수니 리.
도쿄올림픽 기계체조 개인종합에서 우승한 수니사 리. 수니사 리 인스타그램. 

몽족은 중국의 묘족이 자신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묘족은 동이족의 시조로 알려진 치우의 후손을 자처하고 있으며, 옛날 중국 중원에서 큰 세력을 형성하고 살다 한족에 밀려 중국 남부와 동남아시아로 쫓겨났지만 5년천 역사의 말과 풍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역사학자들은 몽족과 북방의 몽골족의 상관 관계에 대해서도 연구하고 있다.

 수니리 응원하는 미국 몽족 주민들
수니리 응원하는 몽족 주민들 가운데 팀수니 티셔츠를 입은 사람이 수니리의 아버지. [AFP=연합뉴스]

수니리의 조상은 중국에서 라오스와 캄보디아, 태국 등지로 이주했다. 이후 베트남전쟁 발발 당시 미국에 협력했지만, 미국이 도중에 철수하면서 목숨을 잃거나 난민 신세가 됐다.

이들은 1970~80년대 미국에 정착했고, 위스콘신주와 미네소타주에 가장 큰 공동체를 형성했다. 리는 이 중 미네소타주에서 자랐다. 몽족은 2019년 기준 32만명 이상이 미국에 살고 있다.

이들은 가족 이상의 굉장히 끈끈한 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리의 아버지는 엘르 잡지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역대 미국에서 몽족 출신이 이뤄낸 제일 큰 성과”라며 “역사적으로 길이 남을 것”이라고 소감을 전했다.

한편 여자 기계체조의 희망 이윤서(18·서울체고)는 역대 한국인 선수 최고 순위 타이기록을 냈다. 이윤서는 29일 일본 도쿄 아리아케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개인종합 결선에서 도마-이단평행봉-평균대-마루운동 4개 종목 합계 51.632점을 받아 결선에 출전한 24명 중 21위에 올랐다.

이는 1988년 서울 대회 이 종목에서 박지숙이 남긴 역대 한국인 최고 순위와 같다. 차이가 있다면, 당시에는 결선에 36명이 출전했다. 이윤서는 예선 순위를 결선에서 한 단계 끌어올렸다.

개인종합 금메달리스트 미국 수니사 리 [AFP=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