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요양병원과 요양원

이형균

우리가 나이가 들고 서서히 정신이 빠져나가면 어린애처럼 속이 없어지고 결국 원하건 원치 않건자식이 있건 없건마누라나 남편이 있건 없건돈이 있건 없건잘 살았건 잘못 살았건, 세상 감투를 썼건 못썼건, 잘났건 못났건 대부분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에서 생의 마지막을 보내게 된다.

고려시대에 60세가 넘어 경제력을 상실한 노인들은 밥만 축낸다고 자식들의 지게에 실려 산속으로 고려장을 떠났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고려장은 일제가 만든 거짓 역사라는 주장도 있다.) 오늘날에는 요양원과 요양병원이 노인들의 고려장터가 되고 있다한번 자식들에게 떠밀려 그곳에 유배되면 살아서 다시는 자기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니 그곳이 고려장터가 아니고 무엇이랴.

그곳은 자기가 가고 싶다고 해서 갈 수 있는 곳도가기 싫다고 해서 안가는 곳도 아니다늙고 병들고 정신이 혼미해져서 자식들과의 대화가 단절되기 시작하면 갈 곳은 그곳 밖에 없다산 사람들은 살아야 하니까.

요양병원에 근무하는 어떤 의사가 쓴 글이다. 요양병원에 갔을 때의 일을 생각해보니 어쩌면 이 의사의 말이 어떻게 그렇게 딱 들어맞는지 놀라울 정도이다그래서 전문가라고 하는 것 같다.

요양병원에 면회 와서 서 있는 가족의 위치를 보면 촌수가 딱 나온다. ▷침대 옆에 바싹 붙어 눈물 콧물 흘리며 이것저것 챙기는 여자는 딸이다. ▷옆에 뻘쭘하게 서있는 남자는 사위다. ▷문간쯤에 서서 먼 산을 보고 있는 사내는 아들이다. ▷복도에서 휴대폰 만지작거리고 있는 여자는 며느리다.

요양병원에 장기 입원하고 있는 부모를 그래도 이따금씩 찾아와 살뜰히 보살피며 준비해 온 밥이며 반찬이며 죽이라도 떠먹이는 자식은 딸이다대개 아들놈들은 침대 모서리에 잠시 걸터앉아 딸이 사다놓은 음료수 하나 쳐 먹고 이내 사라진다아들이 무슨 신주단지라도 되듯이 아들을 원하며 금지옥엽 키워놓은 벌을 늙어서 받는 것이다딸 하나 열 아들 부럽지 않은 세상인 것을 그때는 몰랐다.

오늘도 우리의 가족이 창살 없는 감옥에서 의미 없는 삶을 연명하며 희망이 없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그들도 자신의 말로가 그렇게 될 줄은 전혀 몰랐을 것이다자신과는 절대 상관이 없는 이야기라고 믿고 싶겠지만 그것은 희망 사항일 뿐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두고 보면 안다.

그래도 어쩌랴내 정신 갖고 사는 동안에라도 맛있는 것 먹고가고 싶은 곳 가보고보고 싶은 것 보고하고 싶은 것 하면서 즐겁고 재미있게 살아야지기적 같은 세상을 헛되이 보낼 수는 없지 않겠는가퍼온 글

 <서울대 총동창신문 발행인, 冠岳언론회(서울대출신 언론단체) 창설·명예회장/경향신문 편집국장,  駐워싱턴 특파원, 논설위원 역임/근저: 세상이 변한 것도 모르시네!’/서울대 문리대 정치학과 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