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행 항공기 승무원 “우리도 불안해요”

자가격리 의무사항 예외…정부·항공사 책임회피 급급

불안한 승무원들 자진해 호텔 격리, 귀국 후 진단검사

한국 정부가 해외 입국자들에 대한 자가격리를 의무화하는 등 방역망을 강한 가운데 정작 해외 접촉 가능성이 가장 높은 국적항공사 승무원들은 예외사항으로 의무 적용대상에 빠져 있어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더욱이 최근 들어 해외에 다녀온 승무원들 가운데 확진 사례가 잇따라 발생하고 있어 이에 대한 보완책이 절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 방역당국에 따르면, 13일 0시부터 미국발 무증상 입국자도 입국 3일 내 코로나19 진단검사를 받아야 한다. 기존에는 자가격리 중 증상별현이 나타났을 때만 검사를 받았지만 미국 자체의 코로나19 위험도가 증가하고 있어 앞으로는 의무적으로 검사가 시행된다.

앞서 한국 정부는 지난 1일부터 모든 입국자를 대상으로 14일간 자가격리 의무 조치를 시행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해외 입국자들은 증상 발현 여부와 관계 없이 14일간 방역당국이 지정한 시설 등에서 자가격리를 해야 한다.

하지만 정작 해외 입국자들과 가장 많이 접촉하는 승무원들의 경우 자가격리 의무지침 대상에서 빠져 있다. 특히, 최근에는 미국 내 확진자가 급증하고 있어 미국발 입국자에 대한 지역사회 감염 우려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 지난달 24일 비행 스케줄을 마치고 입국한 서초구 거주 승무원은 자가격리를 하지 않다가 확진 판정을 받아 서초구는 물론 동작구, 수원시 등 연쇄감염으로 이어진 바 있다. 방역당국은 최초 감염원으로 해당 승무원을 추정하고 있으며 현재까지 확진판정을 받은 사람만 최소 5명, 관련 접촉자는 300여명에 달한다.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등 일선 승무원들도 불안을 호소하고 있다. 일부 승무원은 감염을 우려해 귀국 후 자발적으로 보건소나 선별진료소를 찾아 진단검사를 받는 경우도 있다. 장거리 운항으로 인한 해외 체류시에도 자체적으로 ‘호텔 격리’에 나서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형 항공사 한 운항승무원은 “모두 기피하는 곳으로 비행을 가서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있다”며 “승무원 개인 뿐 아니라 온 가족이 위험에 처할 수 있다”며 “우리 역시 ‘각자도생’하며 개인위생을 철저히 하고 있지만 승무원에게만 희생을 강요하는 식의 방법으로는 그 가치를 인정받지도 못하는 상황이라 개탄스럽다”고 말했다.

또 다른 객실승무원은 “14일도 되지 않아 스케줄 변경으로 비행을 나갔다 왔는데 그럴 때마다 ‘나가도 괜찮은 건가’ 하는 불안감이 가시질 않는다”고 우려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이같은 문제를 지적하는 청원글이 올라와 있다. 지난 1일 올라온 ‘검사대상에서 제외되는 항공사 승무원이 슈퍼전파자가 되는 걸 막아주세요’라는 글에는 1313명이 동의했다. 작성자는 “승무원이 뒤늦게 확진 판정을 받으면 수백명의 승객에게 코로나19를 옮기는 슈퍼전파자가 될 수 있다”며 “항공사 승무원의 코로나19 진단검사 지원과 2주간 자가격리를 의무화해달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정작 이들에 대한 조치를 마련해야 할 방역당국과 항공사들은 서로의 책임을 떠넘기는 모양새다. 방역당국은 승무원의 업무 특성상 2주간 자가격리를 할 경우 근무가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을 것이란 입장이다.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는 “만약 증상이 있을 경우엔 당연히 검사를 받아야하고, 따로 회사측에 이와 관련 권고하지 않아도 가장 예민하게 대응하고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항공사들은 정부 지침상 승무원들이 의무격리 대상이 아니다보니 강제할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기내에서 확진자가 발생하면 구역에서 접촉하거나 함께 있던 승무원은 격리에 들어간다”며 “하지만 일괄적으로 격리조치를 하기에는 정부차원의 지침도 없어 팀별로 위생준수나 해외 체류 시 호텔에 머물 것을 당부하고 있다”고 말했다./뉴스1

한 항공사 승무원들이 8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2터미널을 통해 입국해 이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