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총격 용의자 취재는 왜 안하나?

주류 언론, 한인 희생자에 과도한 초점…”범행 원인이 피해자 탓?”

AJC는 업계 어두운 면 부각도…일부 한인도 동조해 ‘물타기’우려’

한인여성 4명을 포함해 모두 8명이 희생된 애틀랜타 연쇄 총격사건이 발생한지 1주일이 됐지만 수사당국은 아직 기초적인 수사결과도 발표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사정 때문인지 사건 초기부터 애틀랜타 스파 총격사건 피해자들이 한인여성이라는 사실을 가장 먼저 보도하고 한인 언론만이 취재할 수 있는 각종 정보를 제공한 애틀랜타 K 뉴스가 한국 및 미국 주류 언론들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았다.

사건후 매일 다른 언론사 기자들의 문의전화와 방송사 인터뷰에 시달린 탓에 모르는 전화는 아예 받지 않으려고 했지만 혹시나 모를 제보전화를 놓칠까봐 그러지도 못하는 형편이다. 덕분에 주말에는 한 희생자 가족이 직접 걸어온 전화를 받아 어렵게 몇마디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이런 전쟁같은 상황이 정리되고 희생자 및 가족들에 대한 취재가 마무리되는 가운데 취재를 도와줬던 권위있는 주류 언론사의 아시아계 기자가 한 말이 뇌리에 남는다. 바로 “사건 동기를 놓고 용의자가 아닌 희생자에 이렇게 과도한 초점을 맞추는 상황은 처음인 것 같다”는 말이다.

되돌아 보니 한인 희생자에 초점을 맞출 수 밖에 없는 한국언론은 물론 미국 주류언론 마저도 한인 여성 피해자들과 그들의 가족을 취재하는데만 총력을 기울인 듯 하다. 반면 이처럼 충격적인 사건을 일으킨 용의자 로버트 애런 롱에 대한 심층취재는 워싱턴포스트가 보도한 기사 1건 외에는 찾아보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워싱턴포스트의 기사도 사실 가족이나 친구, 애인 등 핵심 주변인물에 대한 취재는 거의 없고 재활시설의 룸메이트였던 타일러 베일리스라는 청년의 증언에만 의존해 용의자의 성중독을 부각시키는 내용 정도였다. 엄청난 리소스를 갖고 있는 주류언론사들이 용의자의 범행동기를 추적하는 일에는 왜 이리 소홀한지 궁금할 지경이다.

총격사건 희생자에 대한 주목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지만 이번 사건의 경우 희생자들의 삶 보다는 그들의 직업과 근무했던 업소에 대한 관심이 더 큰 것 같아 우려를 감출 수 없다. 특히 주말판 AJC에 게재된 기사는 경악을 금치 못하게 만들었다.

“희생자들에 대한 애도가 끝나지도 않은 상황에서 민감한 주제라는 것을 알지만 너무나 시급한 질문이어서 보도를 결정했다”는 단서를 단 이 기사의 제목은 “애틀랜타 스파 총격은 아시안 여성을 상업화하는 산업을 부각시켰다(Atlanta spa shootings spotlight industry that commodifies Asian women)”이다.

너무나 시급한 질문에 대한 대답이라며 실제 내용은 아시안 스파에서 인신매매가 빈번히 일어나고 있고, 성매매를 단속하지 못한 애틀랜타시와 조지아주의 책임이 크다는 것이다. 특히 피해 여성 가운데 1명이 10여년전 성매매와 관련해 체포됐었다는 사실까지 명시해 놓았다.

총격사건의 희생자를 애도한다며 이들이 종사했던 산업의 일반적인 문제점을 부각시킨 저의가 무엇인지 궁금하고, BLM(흑인생명은 소중하다) 운동을 폭발적으로 점화시켰던 고 조지 플로이드의 전과도 이런 식으로 보도할 ‘배짱’이 있었을런지는 더욱 큰 의문이다.

조지아주를 대표한다는 AJC가 이러한 취재에 쏟을 노력을 용의자 로버트 애런 롱과 생존한 목격자들에 돌렸다면 미국 전체가 주목할만한 기사를 제공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슬프게도 어느 미디어에서도 AJC를 인용하는 기사를 만난 적이 없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주장을 일부 한인들도 수용해 커뮤니티 사이트 등에 퍼나르고 있다는 것이다.같은 민족이라고 해서 무작정 한인들을 감싸라는 것이 아니다. 무자비한 폭력에 일방적으로 희생된 피해자들을, 오히려 그 범행의 원인인 것 처럼 비난할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다.

이상연 대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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