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뉴스의 특징…간단한 것도 취재를 안한다”

[팩트체크] ‘3호선서 쓰러진 여성, 남성들이 외면’ 보도는 가짜

한국 언론인권센터, “커뮤니티 게시글 확인도 않고 젠더 논란 부추겨”

‘성추행 누명 안쓰려 남성이 안 도왔다’ 글·보도 확산…성별갈등 비화

서울교통공사 “남성 외면 사실 아냐’…현장서 남성의사가 도운 정황”

최근 ‘핫팬츠 여승객 쓰러졌는데 남성들 외면’ 제목의 기사가 한국에서 젠더 이슈와 관련된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하지만 이 기사는 한 커뮤니티 게시글을 기본적인 사실 확인도 하지 않고 작성한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 언론인권센터의 성명과 연합뉴스의 보도를 종합해 소개한다. /편집자주

언론인권센터 성명서(2021년 7월6일)

지난 5일, 보배드림 커뮤니티 게시글이 뉴스1을 통해 기사화됐다. ‘어제 지하철에서 생긴 일’이라는 제목의 게시글로 3일 서울 지하철 3호선에서 한 여성이 쓰러졌는데 남성들이 여성을 도울 생각을 하지 않았고 주변 아주머니, 젊은 여성들이 쓰러진 여성을 부축해 나갔다는 내용이었다. 뉴스1은 해당 게시글에 <핫팬츠 여승객 쓰러졌는데 남성들 외면…3호선서 생긴 일 ‘시끌’>이라는 제목을 붙여 기사화했다. 이후 많은 언론사에서 해당 기사를 받아쓰면서 온라인 상의 젠더 갈등에 불을 붙였다.

[뉴스1] 핫팬츠 여승객 쓰러졌는데 남성들 외면…3호선서 생긴 일 ‘시끌 ‘(2021-07-05)
[조선일보] 남성들 성추행 몰릴까봐?… 쓰러진 ‘핫팬츠 여성’ 모른척 (2021.07.06)

[MBN] 성추행범 몰릴까봐…지하철서 쓰러진 여성 외면한 남성들 (2021-07-06)

이번 사건은 서울교통공사나 현장에 있었던 당사자에 대한 취재를 바탕으로 작성되지 않았다. 특히 최근 여성과 남성 사이의 갈등이 심각한 한국 사회에서 젠더 이슈는 매우 큰 파급력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언론사들은 갈등을 증폭시킬 게 뻔한 사건을 사실 확인도 없이 보도했다.

언론사들은 이번 사건을 제대로 취재해 보도할 의지가 전혀 없었다. 7월 3일에 발생한 일이 7월 5일에 처음 보도된 만큼, 취재를 할 수 있는 시간은 충분했다. 취재 대상도 특정하기 어려운 상황이 아니었다. 그러나 진위 여부를 확인한 언론사는 단 한 곳 로톡뉴스였다. 로톡뉴스와의 통화에서 서울교통공사는 “여성이 쓰러졌다거나, 성추행 관련으로 서울교통공사에 신고나 보고가 들어온 건 없다”고 답했다. 또한 “일반적으로 서울 지하철 역사에서 사람이 쓰러지면 경찰이 출동하는 등의 조치를 취한다”며 “그러한 출동 사실도 전혀 확인되는 게 없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사건을 취재한 안세연 기자에 따르면 취재는 1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10분이면 이 사건이 보도할 가치가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언론사는 단 10분도 할애하지 않았다.

뉴스 댓글란에는 ‘여자들 자업자득이다’, ‘내버려 둔 남성들이 공감이 간다’ 등의 댓글이 수두룩하다. 논평에 인용하기도 꺼려질 만큼 거칠고 공격적인, 여성을 향한 비난과 매도도 이어진다. ‘여성들은 왜 남성들이 먼저 나서서 여성들을 도와야 한다고 생각하느냐’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취재없는 기사의 결과는 특정 성별에 대한 맥락없는 혐오와 비난으로 이어지고, 사회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이번 사안은 논란거리, 찬반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언론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방치한 시민들의 무관심, 시민의식에 대해 지적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사건을 ‘여성’과 ‘남성’으로만 바라보고 보도하고 있다. 도움이 필요한 ‘여성’에게 ‘남성’이 도움을 줘도 되는가로 관점을 비틀고 ‘논란’, ‘갑론을박’, ‘시끌’로 이름 붙여 젠더갈등을 조장하고 있다. 이런 기사들은 ‘여성을 도와줘도 되는가’라는 당연한 이야기를 사회적으로 논의가 필요한 것처럼 만들고 있다.

[머니투데이] “쓰러진 여성, 꼭 남자가 도와줘야 해요? 여자들은 뭐하고요?” (2021-07-06)

이 사건을 논란거리로 만들고자 하는 언론의 의도는 ‘핫팬츠’라는 표현에서도 엿보인다. 이번 사건을 첫 보도한 뉴스1에서는 원 게시글의 ‘짧은 반바지’ 표현을 기사화하는 과정에서 ‘핫팬츠’로 바꾸어 보도했다. 이후 이번 사건은 ‘핫팬츠女’, ‘핫팬츠女승객’, ‘3호선 핫팬츠’ 등으로 타 언론사에서 보도되기 시작했다. 심지어 한 언론사에서는 빨간색 핫팬츠를 입은 인물의 사진을 기사와 함께 삽입했다.

[한국경제] 핫팬츠녀 지하철서 쓰러졌는데 남성들 외면한 이유는 [법알못] (2021-07-06)

젠더문제는 가부장제에서 비롯된 불평등한 젠더 권력 구조가 기반이 된 것이다. 그럼에도 기자들은 매번 젠더문제를 성별 간의 싸움으로만 보도하고 있다. 이는 젠더 갈등과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으며, 오히려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뿐이다.

언론인권센터 논평팀은 이번 사건을 유일하게 취재한 로톡뉴스의 안세연 기자와의 통화에서 황당한 질문을 했다. “대부분의 언론사가 취재 없이 기사를 썼는데 어떤 이유로 취재를 하게 되셨나요?” 수화기 너머로 이 질문을 ‘기자’에게 던지는 심정은 참담하기 그지 없었다. 이 지경까지 만든 것에 대해 기자들은 부끄러움을 느껴야 할 때다./언론인권센터

▶ 연합뉴스 7월7일자 보도

(서울=연합뉴스) 임순현 기자 = 서울 지하철 객차안에서 여성이 쓰러졌는데도 남성 승객들이 ‘성추행 누명’을 쓸까 봐 구조하지 않고 외면했다는 글이 4일 인터넷에 게시되면서 큰 논란이 됐다.

게시자는 “쓰러진 여성이 짧은 반바지에 장화를 신어 신체 노출이 조금 있었다”며 “이 때문에 해당 칸에 있던 어떤 남성들도 그 여성을 부축하거나 도울 생각을 하지 않더라”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 글만을 근거로 5일 여러 매체에서 이른바 ‘3호선 핫팬츠녀’라는 다소 자극적인 제목으로 보도하면서 포털사이트에서 종일 높은 관심을 끌었다.

그러면서 이 사건이 성별 갈등으로까지 번졌다.

남성 방문자가 많은 일부 커뮤니티에서는 남성이 억울하게 성범죄 누명을 쓰는 일이 많다며 이를 여성의 과잉 대응 또는 의도적 무고 탓으로 돌리는 글이 오르기도 했다.

서울 지하철 객차(기사와 직접 관련 없음)
서울 지하철 객차(기사와 직접 관련 없음) [연합뉴스자료사진]

하지만 당시 여성 승객이 쓰러진 사실을 119에 최초 신고했다고 주장하는 네티즌이 6일 밤 인터넷에 글을 올리면서 사건은 반전을 맞았다.

이 작성자는 “3일 제 앞에 서 있던 20대 여성분이 제 위로 쓰러졌다. 순간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그분 주위로 몰려왔다”며 “여성 한 분과 남성 두 명이 그분 들어서 압구정역에서 내렸다”고 주장했다.

이어 “심지어 딱히 핫팬츠도 아니었고 장화도 신고 있어서 성추행이니 뭐니 할 상황은 전혀 아니었다”며 쓰러진 여성이 노출이 있는 옷을 입고 있어 남성 승객들이 돕지 않았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이 사건과 관련, 압구정역 승강장이 촬영되는 CCTV를 확인한 역무원에게서 당시 상황을 보고 받은 서울교통공사(이하 공사) 측은 7일 연합뉴스에 이 사건의 실체는 보도된 내용과 다르다고 설명했다.

공사에 따르면 3일 오후 5시 50분께 3호선 객차 내에서 여성 승객이 쓰러졌고, 이어 성별이 명확히 식별되지 않은 승객이 객차 내 인터폰으로 승무원에게 신고했다.

열차가 압구정역에 들어와 멈춘 뒤 신고를 받고 대기하던 역무원이 쓰러진 여성을 승강장으로 옮겨 구호 조치를 했다고 한다.

공사 관계자는 “현장에 있던 역무원에게서 ‘자신을 의사라고 알린 남성이 여성을 도왔다’고 들었다”며 “CCTV 확인한 역무원은 ‘남녀를 가리지 않고 쓰러진 여성을 돕는 분위기였다’고 보고했다”고 말했다.

이후 현장에 도착한 119 구급대원이 정신을 차린 여성에게 병원에서 치료받겠느냐고 물었지만 여성이 ‘괜찮다’며 잠시 휴식을 취한 후 귀가하면서 사건이 일단락됐다는 것이다.

결국 지하철 열차 내에서 여성이 쓰러졌는데도 ‘성추행 누명’을 우려한 남성 승객들이 아무도 돕지 않고 외면했다는 내용의 글과 이를 그대로 인용한 보도는 내용 일부를 과장하거나 왜곡한 ‘가짜 뉴스’인 것으로 파악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