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호의 역사칼럼] 13. 추수감사는 인디언에게?

 

누구나 미국에 와서 제일 처음 겪는 색다른 경험 중 하나가 칠면조 요리를 먹어보는 것이다. 사람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처음 칠면조 요리를 대하면 그 반응이 “맛이 영 아니올시다네…”쯤 되는 것 같다. 칠면조 요리는 주로 추수감사절에 먹는다. 이 때문에 추수감사절에는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초청받아서, 혹은 교회에 나가서, 아니면 이웃집에서 갖다 주어 한 해에 한 번쯤은 칠면조요리를 꼭 대면하게 된다. 추수감사절에 왜 칠면조 고기를 반드시 먹어야 하는 풍습이 생겼으며 언제, 어디서 시작했을까?

미국식 추수감사절은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영국으로부터 건너와 뉴잉글랜드 지방에 자리 잡은 청교도들이 시작한 것이다. ‘청교도’란 전통적인 영국 교회에 반발하여 생긴 교파로서 ‘깨끗한 교회;라는 뜻으로 ‘청교도’(Puritans)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들은 한때 혁명에 성공하여 영국 왕실을 몰아내고 1653년부터 1658년까지 5년간 권력을 잡기도 했으나, 그 이전에는 영국왕실과 구교도들로부터 핍박을 받아 내내 고생하던 중 일부 청교도들은 네덜란드로 피신하여 살기도 했다.

네덜란드에서 피신해 살던 청교도들은 “어차피 남의 땅에서 고생할 바에야 신대륙으로 건너가 살아보자”고 작정하고 1620년 버지니아 땅으로 향했다. 그런데, 도중에 풍랑을 만나 배를 지금의 매사추세츠 땅에 대고 임시로 피신한 것인데, 나중에는 이곳에서 아주 정착하게 되었다. 다시 고생하며 버지니아로 가 보았자 어차피 신앙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푸대접 받는 것은 뻔할 것이므로 인심 좋은 뉴잉글랜드 지방의 인디언들과 함께 사는 것이 차라리 낫다고 생각한 것이다.

식량과 옷감이 제대로 없는 상황에서 뉴잉글랜드의 고생스러운 첫 겨울을 보내게 된 이들에게 주위의 인디언들이 엄청나게 많은 도움을 줬다고 한다. 더우기, 그 이듬해 가을에는 추수를 끝낸 인디언들이 자신들이 평소에 먹던 음식을 들고 와서 이들과 함께 잔치를 벌인 것이 추수감사절의 기원이라고 한다. 이때 인디언들이 가져온 음식이 바로 칠면조 요리, 옥수수 삶은 것, 크랜베리 소스, 빵부스러기 스터핑, 으깬 감자 등등 이었는데, 그 전통이 그대로 지금까지 전해 내려 오고 있으며, 1776년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직후 미국 정부는 추수감사절을 국가 공휴일로 지정하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순수하게 시작된 추수감사절도 정치에 휘말리기도 했다. 다름이 아니라, 남북전쟁이 한창이던 1863년 링컨 대통령은 11월 마지막 목요일을 추수감사절로 지정했다. 그러자, 남부지방의 각 주에서는 링컨 대통령의 조치를 북부 지방의 풍습을 남부에 강제적으로 지키게 하려고 한다고 반발하고 나섰다. 이 때문에 남북전쟁이 끝난 후에도 한참 동안 남부 지방에서는 추수감사절을 별로 탐탁지 않게 여기기도 했다고 한다. 물론, 세월이 지나가면서 남부에서도 결국 별 반감 없이 추수감사절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1939년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11월 마지막 목요일이던 추수감사절을 일주일 앞당겨 시행하도록 했다. 크리스마스 대목을 염두에 둔 상인들이 백악관에 끊임없이 진정한 결과라고 하니 상업주의가 얼마나 팽배했는지를 보여 주는 대목이다. 일부 사람들이 대통령의 조치를 끊임없이 반대하고 나서자, 루스벨트 대통령은 2년 만에 여론에 굴복, 마지 못해 절충안을 내놓았다 11월의 네 번째 목요일로 하자는 것이다. 많은 경우에 네 번째 목요일이 바로 마지막 목요일이 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가끔 있기 때문에 양쪽의 의견을 모두 수렴하는 결과가 된 것이다.

미국에 사는 해를 거듭할 수록 처음에는 별로 맛이 없던 칠면조 구이 요리에 대해 해마다 그 깊은 맛을 느끼게 되는 것은 웬일일까 ‘선구자’들도 최초로 인디언들이 차려준 추수감사절 음식에 대해서 같은 느낌이었을 것이고 해를 거듭할 수록 그 맛에 점점 익숙해졌을 것이다. 칠면조 맛에 익숙해지는 것만큼이나 미국생활과 문화에 익숙해진다는 뜻은 아닐지? 추수감사절 풍습을 갖게 된 것을 인디언에게 고마워해야 옳을 것 같다.

(최선호 보험제공 770-234-48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