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의 ‘승부수’…삼성전자 ‘AI 노벨상’ 만든다

‘올해의 삼성 AI 연구자’ 시상 신설…미래인재 육성

상금 3만불…오는 11월 ‘AI 포럼’서 첫 수상자 공개

삼성전자가 전 세계의 인공지능(AI) 분야 석학들을 발굴하고 육성하기 위해 독자적인 ‘삼성 AI 연구자상’을 도입한다. 공공 부문이 아닌 개별 기업이 AI 분야에서 우수 연구자를 격려하는 자체 시상식을 운영하는 것은 드문 일이며 국내에선 삼성전자가 최초 사례다.

이는 국적을 불문하고 역량을 갖춘 인재들을 적극 지원하는 동시에 AI 사업 역량을 확대하기 위한 의도로 분석된다. 재계에선 삼성전자의 이같은 행보에 총수인 이재용 부회장의 의지가 크게 반영된 것으로 보고 있다.

프린스턴대학교 홈페이지에 게재된 ‘올해의 삼성 AI 연구자상’ 시상 관련 안내문의 모습 (사진=프린스턴대 홈페이지)

 

삼성전자는 지난 6월 미국 프린스턴대에서 뇌과학 전문가로 활동했던 세바스찬 승(한국명 승현준) 교수를 삼성리서치 소장(사장)으로 발탁했는데, 이 부회장이 직접 승 소장에게 협력을 제안할 정도로 AI 인재 영입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종합기술원은 ‘올해의 삼성 AI 연구자상(Samsung AI Researcher of the Year Award)’을 제정하고 오는 11월 첫번째 시상식을 개최할 예정이다.

그간 삼성은 창업주인 호암 이병철 선대회장을 기리기 위해 공익법인 호암재단에서 한국인 과학자만 대상으로 하는 ‘호암상’을 운영해왔다. 하지만 호암상과 별개로 삼성전자가 AI 분야에 국한해 자체적인 시상식을 도입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해외만 하더라도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 일부 기업뿐이며 국내에선 단연 삼성전자가 첫 시도인 셈이다. 업계에선 삼성전자가 글로벌 IT 선도기업으로서 이른바 ‘AI 분야 노벨상’을 도입한 것이란 평가도 나온다.

신설된 AI 연구자상은 삼성전자가 전 세계에서 활동 중인 전도유망한 인재들을 지원하고 연구 문화를 장려하는 것이 목적이다. 이를 위해 삼성전자는 지난달 시상식과 관련한 주요 정보를 취합해 미국, 유럽, 아시아 등 주요 지역 대학과 연구기관 등에 전달한 뒤 후보자 추천을 요청했다.

삼성전자에 따르면 자연어 처리(Natural Language Processing), 컴퓨터 비전(Computer Vision), 딥 러닝 하드웨어(Deep Learning Hardware) 등 AI와 관련된 분야에 몸담고 있는 대학교수 혹은 공공기관 연구자면 누구나 지원이 가능하다. 국적과 성별 자격 제한도 없다. 다만 삼성전자는 젊은 연구자를 지원하기 위해 접수 마감일인 2020년 9월 7일 기준 ’35세 이하’만을 대상으로 삼았다.

수상자에게는 상패와 상금 3만달러(약 3600만원)가 지급되며 삼성전자가 매년 개최하는 ‘AI 포럼’에서 강연할 수 있는 특전도 제공된다. 심사는 삼성 AI 포럼 공동의장인 요슈아 벤지오(Yoshua Bengio) 캐나다 몬트리올대학 교수를 비롯한 AI 포럼 이사회 멤버간 논의를 통해 이뤄진다.

삼성전자는 오는 10월 수상자를 선정할 예정이다. 영예의 첫번째 수상자는 오는 11월 2일 ‘제4회 삼성 AI 포럼’을 통해 공개된다. 삼성 AI 포럼은 지난해까지 서울 서초사옥에서 열렸으나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해 온라인 행사로 개최된다.

재계에선 삼성전자가 자체적으로 AI 시상제를 도입한 건 그만큼 유능한 인재를 영입하는 것이 절실하다는 의미로 해석한다. 향후 수상자가 삼성전자에 입사하거나 혹은 해당 연구기관과 삼성이 협력할 수 있는 기회도 활발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더욱이 총수인 이 부회장이 AI 분야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신설된 연구자상의 역할과 위상이 더욱 확대될 수 있을 가능성도 크다. 지난 5월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에서도 이 부회장은 “삼성은 앞으로도 성별, 학벌, 나아가 국적을 불문하고 훌륭한 인재를 모셔와야 한다”면서 역량있는 인재 확보가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이자 역할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이 부회장은 최근 호암재단이 주관하는 ‘호암상’ 과학 부문을 Δ과학상 물리·수학부문 Δ과학상 화학·생명과학부문 등으로 분리·확대할 것을 제안할 만큼 기초과학 육성에도 큰 관심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AI는 5G, 바이오, 전장 중심 반도체 등과 함께 이 부회장이 꼽은 삼성의 ‘4대 미래성장사업’ 중 하나이기도 하다. 삼성전자는 2017년 11월 통합 연구조직인 ‘삼성 리서치’를 출범시키면서 산하에 AI 센터를 신설해 선행 연구를 진행 중이다. 현재는 △한국 △미국 실리콘밸리·뉴욕 △영국 케임브리지 △캐나다 토론토·몬트리올 △러시아 모스크바 등 7개 지역에서 AI 센터가 운영 중이다.

지난 6월엔 삼성전자 AI 센터를 총괄하는 삼성 리서치 소장으로 프린스턴대의 세바스찬 승 교수가 발탁돼 업계의 관심을 받기도 했다. 삼성전자가 사장급 임원인 삼성 리서치 소장으로 외부 인사를 영입한 것은 이례적인데, 이는 이 부회장의 적극적인 러브콜이 결정적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재계 한 관계자는 “삼성에서 인재 발굴을 가장 잘 할 수 있는 사람과 가장 적극적인 사람이 이 부회장”이라며 “삼성전자의 AI 연구자상이 인공지능 분야의 노벨상이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고 말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