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연의 미국정치 이야기 10] “바보야, 문제는 종교야” [하]

지난 회에서 이어집니다./편집자주

안토닌 스칼리아 전 대법관

동성결혼 허용 판결로 공화 보수주의자들을 충격과 공포로 몰아넣었던 연방 대법원에 2016년 2월 13일 또 하나의 ‘지진’이 일어납니다. 앤서니 케네디와 함께 레이건 대통령이 지명한 2명의 대법관 가운데 1명인 안토닌 스칼리아가 7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4대5’가 ‘3대6’이 될 위기

스칼리아 대법관은 좋게 말하면 ‘보수 중의 보수’, 나쁘게 보면 ‘극우’로 분류될 정도로 노선이 분명한 판결을 내렸던 인물입니다. 임기가 1년도 남지 않았던 오바마 대통령은 곧바로 후임 대법관 인선에 들어가지만 가장 확실한 사법부의 보루를 잃을 위기에 처한 공화당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 저지에 나섭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메릭 갤런드 연방 항소법원 판사를 새 대법관 후보로 내세우지만 상원을 장악하고 있던 공화당은 청문회도 열지 않고 ‘철저한 무시’와 ‘시간끌기’ 전략으로 신임 대법관 인선을 다음 정권으로 넘기는데 성공합니다. 안 그래도 4대5로 불리했던 대법원이 자칫 3대6으로 바뀌면 안된다는 위기의식에 보수층이 정말 ‘똘똘’ 뭉쳤습니다.

2016년 대선 캠페인 당시 트럼프 후보는 아예 대법관 후보를 정해놓고 있었습니다. 바로 닐 고서치 콜로라도 항소법원 판사인데 당시 나이가 49세에 불과했습니다. 적어도 30년 이상은 대법관을 할 수 있는 보수주의 판사를 선택해 대법원만은 진보주의자들에게 넘겨주지 말라는 지지층의 염원을 확실히 반영한 것입니다.

“우리가 해냈어”. 인준 직후 기뻐하는 매코널(왼쪽)과 캐버노.

공화당 역사상 최고의 순간

2018년 7월엔 보수주의자들이 쾌재를 부를만한 사건이 일어납니다. ‘변절자’ 앤서니 케네디 대법관이 노령(82세)과 건강을 이유로 사임을 발표한 것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다렸다는 듯이 53세의 브렛 캐버노 DC 항소법원 판사를 후임자로 임명합니다. 캐버노의 상원 청문회는 잘 아시다시피 ‘진흙탕’이었습니다.

캐버노의 술버릇과 여성 편력이 공개되고 결정적으로 성폭력 증언까지 나왔지만 공화당 상원의원들은 인준안을 통과시킵니다. 찬성 50 대 반대 48. 이 아슬아슬한 승리에 미치 매코널 공화 상원 원내대표는 “내 생애 가장 큰 업적이자 공화당 역사상 최고의 순간 가운데 하나”라고 선언했습니다. 오바마케어 폐지 등 백악관 일부 정책에 미온적인 반응을 보여 트럼프와 대립했던 매코널이지만 대법원 문제만은 ‘보수주의의 양심’을 철저히 반영한 것입니다.

미국에서 가장 힘이 센 단체는?

그래서 현재의 대법관 진용은 5명의 보수와 4명의 진보로 정리됐습니다. 만약 지금 동성결혼 합법화나 낙태 허용 소송 등이 대법원에 올라오면 기존의 판결과는 완전히 다른 결과가 나올 것입니다. 그만큼 현재 보수주의 대법관들의 색깔이 확실한 편입니다.

특히 이들 5명의 보수주의 대법관은 모두 ‘연방주의자 클럽(Federalist Society)’ 출신입니다. 또한 앤토닌 스칼리아 전 대법관은 이 단체의 창립 멤버입니다. 1982년 레이건 정부 당시 보수주의 법학자들이 모여 만든 이 단체는 “연방정부의 권한을 통제하고, 개인의 권리를 보호하며, 헌법을 원문 그대로의 의미로 해석한다”는 이상을 갖고 있습니다.

현재는 미국 200개 로스쿨에 지회를 갖고 있고 학자들의 연구모임과는 별도로 현장에서 일하는 변호사와 판검사 회원만 7만명에 이르는 대형 조직으로 성장했습니다. 아들 부시 대통령은 25주년 기념식에서 축사를 했고, 트럼프는 대법관과 각 연방법원 판사를 임명할 때 이 단체 수뇌부로부터 후보자 명단을 추천받아 그 중의 한명을 선택합니다. 그래서 연방주의자 클럽의 별명이 ‘미국 역사상 가장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단체’입니다.

“트럼프에 질 순 없지” 열심히 운동하고 있는 긴즈버그 대법관.

이젠 민주당이 궐기할 차례

트럼프 대통령이 만약 재선에 성공하면 대법원의 구성은 보수 7명 대 진보 2명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현재 대법관 가운데 가장 고령인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86세)와 스티븐 브라이어(81세)가 모두 민주당 대통령이 임명한 진보주의 판사들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최고령인 긴즈버그 대법관은 지난해 12월 낙상으로 갈비뼈가 부러져 민주당 지지자들의 가슴을 졸이게 했습니다. 일부 지지자들은 “가능하다면 내 갈비뼈, 아니 수명중 일부라도 기증하고 싶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다행히 곧 퇴원한 긴즈버그는 “최소한 5년은 더 일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래도 트럼프가 재임에 성공하고 상원까지 다수를 차지하면 5년후 또다른 보수주의 대법관이 등장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2020년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이 뭉쳐야할 이유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종교적인 ‘분노’와 이념적인 모티베이션이 보수주의자들에 비해 부족한 민주당 지지자들이 이 문제에 대해 ‘대각성’을 할지는 두고봐야 할 일입니다.

대표기자

종교에 따른 대통령 선거 투표 결과/PEW Resear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