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백열등 퇴출에 불붙은 문화전쟁

에디슨 발명 백열전구 역사속으로…1일부터 판매 금지

에너지 효율 규정에 따른 조치…가스레인지 이어 논란

공화 “바이든의 집착·과잉개입” 비판…소비자도 ‘당황’

미국서도 사실상 퇴출되는 백열전구
미국서도 사실상 퇴출되는 백열전구 [연합뉴스 자료사진]

연방 정부가 1일부터 사실상 백열전구 판매를 금지하면서 에너지 소비를 억제하려는 정부의 규제 노력과 집안에서 원하는 건 무엇이든 하려는 미국식 의지 사이에 문화적 논쟁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보도했다.

미국에서는 이날부터 새로운 에너지 효율 규정이 발효돼 백열전구 판매가 사실상 금지됐다. 1879년 토머스 에디슨이 발명한 이후 인류의 삶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온 백열전구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 것이다.

새로운 규정에 따르면 전구는 와트당 최소 45루멘(밝기 단위)을 충족해야 하는데, 기존의 백열전구는 와트당 약 13루멘을 생산한다. 이 때문에 새로운 에너지 효율 규정이 명시적으로 백열전구를 금지하진 않더라도 기준에 미달해 판매할 수 없게 됐다.

백열전구 판매 금지 소식은 앞서 정부가 가스레인지 퇴출을 검토한다는 소식이 알려졌을 때처럼 문화 논쟁의 도화선이 됐다.

공화당 전국위원회는 이날 성명에서 백열전구가 탄소 배출량 감소에 대한 “바이든의 건강하지 못한 집착”의 또 다른 희생자가 됐다고 비판했다.

뉴멕시코주 공화당 관계자도 자신의 트위터에 “토머스 에디슨은 백열전구를 대중에게 선사했고, 조 바이든은 미국에서 백열전구를 금지했다”며 “바이든 행정부의 과잉 개입은 계속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작가 조지프 마시도 트위터에 “책상에 늦게까지 앉아있는 경우가 많은데, 책을 읽고 글을 쓸 때 램프의 따뜻한 불빛이 마치 친구처럼 느껴진다”며 “세상의 모든 기쁨을 빨아들이는 데 전념하는 권력자들이 있다”고 꼬집었다.

유명 조명 판매 회사의 고객센터엔 “정부가 백열전구 판매를 금지한 것인가”, “이 결정이 정교한 정치적 음모의 일부이냐”, “백열전구 팬들은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느냐” 등 당황한 고객들의 전화가 빗발치기도 했다.

한 미술관 내부에 설치된 백열 전구들
한 미술관 내부에 설치된 백열 전구들 [연합뉴스 자료사진]

백열전구 퇴출 움직임은 16년 전인 2007년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 에너지 독립 및 안보법에 서명하면서 시작됐다.

이 법에 따라 2012년부터 새 전구는 기존 백열전구보다 28% 더 적은 전력을 사용해야 했는데, 이는 사실상 구형 전구의 종말을 알리는 신호탄이 됐다.

이후 2017년 1월 당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퇴임 직전 여러 종류의 백열전구에 대한 추가 규제를 제정했으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나는 백열전구를 원한다”며 이를 없던 일로 돌려버렸다.

그러다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환경 보호를 위해 추가 규제 조처를 해야 한다는 압박이 거세지자 에너지부는 지난해 백열전구 제조 및 판매가 올해부터 단계적으로 폐지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실제 올해 1월 제조업체들은 전구 생산을 중단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백열전구의 빈자리는 에너지 효율이 높은 LED 조명이 대신하고 있다.

LED는 전력 사용량이 적어 지구 온난화의 주범인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는 데에도 기여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UC 버클리대의 에너지 경제학자 루커스 데이비스는 NYT에 “백열전구에서 LED로 교체하는 것은 갤런당 25마일을 달리는 자동차를 130마일을 달리는 다른 자동차로 교체하는 것과 같다”고 평가했다.

에너지부는 새 규정에 따라 미국인들이 연간 약 30억 달러의 공공요금을 절약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과거엔 LED 가격이 비싸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최근엔 백열전구와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가격이 떨어져 특히 저소득층 가구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 향후 30년간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억2천200만톤(t) 줄일 수 있다는 게 미 당국의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