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 이상연의 짧은 생각 제51호

누가 거짓말을 하는 걸까?

예전에 퍼블릭스에서 계산해야 할 아이템이 1개 밖에 없어 Express Lane에 줄을 섰는데 앞의 중년 여성 1명이 어림잡아도 30개가 넘는 물건을 계산하고 있었습니다. 순간 머릿속에 “뭐 이렇게 매너없는 사람이 다 있지”라는 짜증이 솟구쳐 올랐습니다. 생각 같아서는 한마디 해주고 싶었지만 꾹 참았습니다.

이렇게 머릿속에 있어야 하는 짜증을 한 남자가 흑인 여성에게 퍼부었습니다. 지난 금요일 캅카운티의 한 퍼블릭스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10개 이하만 계산해야 하는 레인에 20개가 넘는 아이템을 올려놓은 것을 보고 한마디 했다가 말싸움이 붙어 여성에게 욕설까지 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이 여성이 임신 9개월인데다 민주당 소속 주하원의원이었습니다.

이 여성 의원은 그날 밤 자신의 페이스북에 모르는 남자로부터 봉변을 당한 이야기를 눈물로 하소연하며 “그 백인 남자가 나에게 ‘원래 네 나라로 돌아가라(Go back where you came from)’고 말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말은 트럼프 대통령이 민주당 소속 여성 연방 하원의원 4명에게 한말로 인종차별적인 의미가 있어 전국적인 이슈가 된 발언입니다.

이 페이스북 포스트는 미국 전역에서 화제가 됐고 민주당 지지자와 가수, 배우, 그리고 대선후보들까지 나서 해당 여성을 위로하고 트럼프와 그의 추종자들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렸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이 ‘백인남자’가 기자회견을 자청하고 나섰습니다. 임신한 여성에게 욕설까지 한 사람으로서는 의외의 행동입니다. 그는 지역 방송사가 모두 모인 가운데 “나는 (유럽계) 백인이 아니고 쿠바 출신 히스패닉”이라면서 “평생 민주당을 지지했고, 트럼프의 그 인종차별 발언에 대해 페이스북을 통해 비난했던 사람”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욕을 한 것은 잘못했지만 ‘네 나라로 돌아가라’고 말했다는 것은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반박했습니다.

흑인 여성의원은 이러한 주장이 나오자 “정확히 그런 말을 했는지는 기억이 안나지만 그런 의미(reference)로 말했다”고 한발 빼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그래도 그녀는 “증인들이 나오면 다 밝혀질 일”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사태가 반전되자 트럼프 지지자와 공화당 측은 “민주당이 선거를 앞두고 조작된 이야기로 지지를 얻으려 한다”고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누가 거짓말을 했는지 속단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미국이 인종주의로 인해 심각하게 갈라지고 있다는 사실이 이 사건을 통해 또 한번 확인됐습니다. 한인을 포함한 아시아계는 백인들은 물론 흑인들로부터도 “Where are you from?”이라는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인종주의와 스테레오타입 만들기의 가장 큰 피해자인 아시아계가 이를 극복하려면 역시 정치적인 힘을 키우는 방법 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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