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한국선 당연한 것이 해외에선 삶의 목적

한인 청소년들은 ‘정체성’에 대해 평생 고민

의식적 노력에 2천여 한글학교의 피땀 필요

한국 떠났다는 이유로 차세대 매도 말아야

전후석 변호사/영화 ‘헤로니모 ‘감독

“헤로니모”를 시작할 때 저는 헤로니모 선생의, 그리고 쿠바한인들의 삶이, 해외에 사는 한인들과 한국에 있는 이들에게 큰 영감을 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실제 이것이 지금처럼 나름 잘 알려지고 관심을 갖게될 줄은 몰랐습니다.

한국에서 돌아오자마자 바로 다음날, 뉴저지에서 한글학교 행사가 있었습니다. 바쁜 고등학생들이지만 한글교육과 정체성에 관심있는 50여명의 재미한인 ‘고딩’들에게 “헤로니모”관련 프로젝트와 제가 고민했던 한인 정체성에 대해 공유하는 자리가 마련되었죠.

한국에서는 한인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갖기 힘듭니다. 실제 국제기구들의 조사에 의하면 남한은 세계에서 가장 문화적/인종적 다양성이 결여된 나라 중에 하나입니다. 한국에서는 당연한 것이지만, 해외에서는 한인 정체성이라는 것에 대해 어린 친구들이 평생을 고민합니다.

다시 한 번 언급합니다. 해외에 사는 한인들은, 직접 한국에서 이민 온 1세대가 아닌 이상 자신의 부모의 문화와 현지 문화 사이에서 평생을 씨름합니다. 접경에 있는 이들, 경계선에 서 있는 이들은, 자신이 누구인가를 스스로 정립하지 못했을 경우, 자존감이 상대적으로 결여되어 삶을 영위합니다.

온전한 현지인이 되려고 노력하지만 만약 그 대가가 자신의 부모와 조국과의 친밀한 관계에 대한 부실이라면, 그 공백에, 그 모순에, 그 간극에 채울 수 없는 갈증을 느낍니다. 물론, 생존이라는 인간에게 주어진 짐의 무게가 더 커서 이런 고민을 등한시하고 평생을 살아갈 수도 있겠지만요.

저는 어린시절 한국에서 자랐기에 이 간극이 태생적인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미국 국적을 택하고 다시 왔을때 많은 재미교포 2세들 친구들을 만나며, 그리고 저 역시 온전한 미국인이 되려는 노력에서 과연 해외에 사는 한인들은 어떻게 정체성을 확립해야 하는지 관심이 생겼었습니다. 그 오랜 고민의 여정의 결과물이 쿠바에서 “헤로니모” 가족을 만나며 구체화된 것 뿐입니다.

한국에서는 당연한 자아에 대한 이해가, 해외에서는 당연한 것이 아닙니다. 만약 자아에 대한 온전한 이해가 정말 중요한 것이라면, 그리고 그 온전한 이해 속에 부모가 떠나온 조국에 대한 (어느정도의) 앎이 수반된다면, 그리고 부모의 조국과 현지국 사이에 여러 복잡한 정치/경제/사회 이슈가 수시로 등장하여 한반도와 관련된 더 큰 그림을 볼 수 있는 더 깊은 통찰이 요구된다면, 그렇다면 해외 한인 후손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데는 의식적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 의식적 노력들을 세계 전역에 2000여개의 한글학교에서 여러 한글학교 선생님들께서 부담합니다. 그 의식적 노력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희생과 피와 눈물이 섞여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당연한것이 해외에서는 희생으로 이루어집니다.

한국인의 정체성은 국수주의나 민족주의,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에 대한 맹목적 충성이 아닙니다. 하지만 막상 본국에서는 그런 이들에게(디아스포라들에게) “너희들은 한반도를 떠났으니 더 이상 우리 일원이 아니야,” 라고 할 때가 있습니다. 잔인한 것입니다.

죄송하지만 디아스포라들이야 말로 더 한국인이 되려고, 더 한국을 알려고, 더 한국적인 것을 유지하려고 애쓰는 이들입니다. 한국의 혜택을 누리려는 것이 아니고, 자신이 존재하는 이유와 삶의 목적을 “Korean”이 되려는 노력에서 찾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