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연의 짧은 생각] “고운 얼굴을 보니 후회가…”

“행복은 상태가 아니라 태도”라는 사실을 알려준 소중한 식탁

전직 B 한인회장의 집에 초대받아 식사를 대접받았습니다. 뒷마당에서 구운 특제 스테이크에 직접 끓인 된장국, 잘 익은 고구마와 감자, 샐러드 등 풍성한 식탁을 차려놓고 몇몇 지인들을 초청한 것입니다.

B 회장은 평소 대접하기를 즐겨했고, 회장 재임 당시인 2017년 앞장서서 사다리 작업을 하다 골절상을 당했을 정도로 솔선수범해온 한인 원로입니다. 5년전 중증 치매 진단을 받은 부인을 홀로 간병하느라 외부 출입이 자유롭지 않아 사람들을 집에 초청해 대접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사모님 간병이 힘들지 않느냐”는 눈치없는 질문에 그의 얼굴 한편에 조금은 침울한 표정이 스쳐지나갔습니다. 그는 “뻣뻣하게 누워 일어나지도 못하는 사람을 혼자 안아서 씻기고, 옷을 입히고 하는 일이 어떻게 힘들지 않겠느냐”면서 “사실 어젯밤에도 진이 다 빠져서 넋을 놓고 앉았다가 ‘내가 왜 이렇게 사나’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안쓰러움에 듣던 사람들의 눈이 모두 붉어지려고 했지만 그 때 B 회장의 얼굴에는 오히려 미소가 조금씩 차올랐습니다. 그는 “그래도 깨끗하게 씻기고, 예쁘게 옷을 입히고, 화장품까지 발라주고 보니까 아내 얼굴이 너무 고와서 곧바로 후회가 들었다”면서 “아무 것도 모르고 잠든 얼굴을 보며 ‘여보 미안해’라고 여러번 말했다”며 환한 웃음을 지었습니다. 어쩐지 그 말에 더 울컥해졌고, 입에서는 “세상에…”라는 말만 되풀이됐습니다.

문득 최근 읽은 교황청 변호사 한동일 사제의 책 ‘라틴어 인생 문장’에 나온 “행복은 상태가 아니라 태도입니다(Felicitas non status sed attitudo)”라는 격언이 생각났습니다. 상식적으로는 전혀 행복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B 회장은 행복을 위해 꼭 필요한 ‘사랑이라는 태도’를 결코 잃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러한 태도로 여전히 사람들을 대접하고, 위기에 빠진 한인회에 1만달러를 가장 먼저 기부했습니다. 또한 올해 열릴 코리안페스티벌의 성공적 개최에도 힘을 보태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식사를 마친 참석자들이 B 회장의 부인에게 인사를 하러 방에 들어갔습니다. 침대 위에 평온하게 누운 부인의 얼굴에는 정말 고운 화장기가 있었습니다. 우리의 인사를 알아 듣지는 못하겠지만 남편의 지극한 사랑에 행복해 하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집을 나서며 행복 뿐만 아니라 사랑도 ‘상태가 아닌 태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표기자

행복은 태도라는 사실을 알려준 식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