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답답한 애틀랜타…’팩트’가 결국 승리합니다

한인사회 ‘팩트와 진실’ 대신 ‘정치와 선동’ 난무

사실 확인 없는 일방적 주장은 오히려 역효과

어제 보도한 ‘한인회장 공탁금은 눈먼 돈’ 기사(링크)와 관련해 한 독자로부터 이메일을 받았습니다.

한인회장의 공탁금이 선거관리위원회에 납부돼 은행에 입금됐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는 내용에 대해 “은행 입금 사실을 확인했다고 했는데 은행 스테이트먼트까지 확인했는지, 입금했다는 사람들 말만 그대로 전하면서 확인이 됐다고 하는 건 아닌지”라고 묻는 내용이었습니다. 이어 “선거 공탁금에 대한 은행 스테이트먼트 확인도 안하고 확인됐다고 하는 것 같은데 이상연 대표기자까지 이러니 답답하다”는 하소연까지 포함돼 있었습니다.

최근 애틀랜타 한인사회의 갈등을 지켜보면서 팩트와 진실은 사라지고 정치와 선동만 난무하는 것 같아 답답함을 느꼈는데 논란이 된 이슈의 팩트를 기자가 직접 확인했다는 기사를 아예 믿지 않으며 답답해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본보는 이같은 독자들을 위해 오늘 공탁금 납부를 증명하는 수표와 은행 스테이트먼트를 추가 공개할 예정입니다.

언론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감시(watchdog) 기능이며 이를 위해서는 팩트(하나 하나의 사실)와 그 팩트들이 가리키는 맥락인 진실(truth)을 밝히는 일이 가장 우선돼야 합니다. 한인회장의 보험금 수령 은폐 의혹을 예로 들자면 보험금 수령을 숨겼다는 의혹은 팩트로 드러났고, 보험금을 개인 계좌에 넣어 횡령했다는 의혹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보험금을 한인회 계좌에 입금해 어떻게 사용했는지는 별도의 감사나 취재를 통해 밝혀야 팩트가 드러나게 됩니다.

이번 의혹을 제기한 측은 보험금 수령 은폐와 횡령이라는 별개의 의혹을 하나로 묶어 공격하는 실수를 범했고, 이들이 한인회장 선거와 한인회관 관리 문제를 둘러싸고 한인회를 지속적으로 비난해왔기 때문에 실수가 아닌 의도적인 공격으로 보는 것이 타당한 맥락입니다. 팩트가 맞지 않는 상태에서 한인회장의 즉각 사퇴를 주장했기 때문에 정치적 공격으로 읽혀 자신들이 의도했던 대로 여론이 흐르지 않은 것입니다.

본보가 김윤철 전 회장의 연방기금 부당 수령과 재정 유용 의혹을 연이어 제기할 당시 한인 언론 어느 곳도 추가 보도를 하지 않았고 한인 지도자들도 침묵을 지켜 외로운 싸움을 벌여야만 했습니다. 본보는 여러 의혹에 대한 사실 확인 보도는 했지만 한인회장 사퇴나 탄핵을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팩트가 드러나면 그 이후의 일처리는 전직 한인회장들이나 한인 사회가 공론을 모아 진행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해당 의혹은 모두 팩트로 드러났고 전직 한인회장들은 김 전 회장을 뒤늦게 영구제명했습니다. 한인회 역사상 첫 제명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된 것입니다.

전직 한인회장들이 이번 보험금 사용 내역에 대해 감사를 하겠다고 밝히고 이홍기 회장도 문제가 드러나면 책임을 지겠다고 한 것도 순리에 맞는 일입니다. 반대편에서는 감사가 제대로 이뤄지겠느냐며 이 회장에게 면죄부를 줬다고 하지만 감사가 진행되지 않는다면 본보가 나서서라도 한인회 재정에 대한 팩트 확인을 할 계획입니다. 만일 팩트가 확인돼 재정 의혹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이 회장도 결국 응분의 책임을 질 것으로 믿습니다. “보험금 수령에 대해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 만으로도 사퇴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이 역시 한인 사회가 바른 판단을 할 것으로 믿습니다.

어제 보도된 한인회장 공탁금 미납 의혹도 한인회장 사퇴를 주장하는 측에서 내놓은 주장입니다. 이같은 주장은 충분히 확인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고 기초 취재 결과 이재승 선관위원장 등의 태도가 모호해 “문제가 있다”는 심증이 있었습니다. 다각도의 취재 끝에 공탁금 의혹과 관련된 팩트를 확인했고, 직접 수집한 증거 자료를 바탕으로 기사를 작성한 것입니다. 여기서 드러난 팩트는 뜻밖에도 “공탁금은 납부됐지만 선관위가 이를 방만하게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이홍기 회장의 단독 출마를 도와준 선관위원장 선임과 선관위 구성 자체가 문제였다는 맥락까지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한인회에 대한 의혹이 다수 제기되자 한인회 측에서는 “우선순위도 아닌 음향 및 조명 공사 등의 문제로 한인회관 주도권 다툼에 개입한 사람들과 코리안페스티벌 준비위 관계자들이 배후에서 한인회장을 사퇴시키기 위해 여러 소문을 내고 있다”면서 “여기에 성추행 투서 문제까지 겹치면서 진흙탕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한인회가 코리안페스티벌 재정 문제를 ‘맞불작전’으로 들고 나온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코리안페스티벌 재정 문제는 이미 지난 연말 한인회 송년회와 이사회를 통해 갈등이 수면 위로 드러난 문제여서 역시 팩트 취재가 필요한 상황이었습니다. 본보가 이 문제를 취재해 보도(기사 링크)하자 한인회와 페스티벌 준비위 양측 모두 자신들에게 불리한 팩트에 대해서는 볼멘 소리를 하고, 유리한 팩트는 카톡방 등을 통해 홍보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여기서 드러난 진실은 “한인회의 주장대로 재정과 관련한 문제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양측의 신뢰가 무너질 대로 무너졌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서로 신뢰하지 않는 사람들과 함께 공공의 선을 위해 봉사하는 것은 오히려 사회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맥락도 발견하게 됩니다.

이상연 대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