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이준석의 영어 사용, 미국이었다면…

미국 출신 한국인 인요한 위원장에 영어로 “우리는 다르다”

미국에서는 인종차별-혐오발언 낙인…’커리어 자살’ 이어져

한국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가 지난 4일 자신의 강연장에 찾아온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에게 줄곧 영어로 응대한 것으로 나타나 한국에서도 논란이 되고 있다.

인요한 위원장은 ‘존 올더먼 린튼’이라는 이름의 미국 시민이었지만 4대에 걸친 한국 봉사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특별귀화 1호’로 한국인이 됐다. 한국 순천에서 태어난 인 위원장은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고 스스로 ‘순천 사람’이라고 소개할 정도다.

인 위원장의 어머니인 로이스 린튼 선교사는 지난 1965년 남편인 휴 린튼 선교사와 함께 순천기독결핵재활원을 설립해 40년 이상 한국의 결핵 퇴치에 힘썼다. 지난달 로이스 린튼 선교사가 노스캐롤라이나주 블랙마운틴에서 소천하자 한인 인사들이 대거 추모식에 참석하기도 했다.

이준석 전 대표는 자신과 대화를 갖기 위해 찾아온 인 위원장을 미국 이름인 ‘미스터 린튼’이라고 부른 뒤 영어로 “오늘 이 자리에 의사로 왔나, 내가 여기서 환자인가”라고 묻고 “진짜 환자는 서울에 있다. 그와 이야기하라, 그는 도움이 필요하다”고 윤석열 대통령을 지칭했다.

그는 특히 “내가 영어로 말씀드린 이유는 (당신이) 우리의 일원이 됐지만 현재로서는 우리와 같아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에 인 위원장은 초반 불편한 표정을 감추지는 못했지만 “경청하러 왔다”고 한국어로 말한 뒤 “영어를 나보다 훨씬 잘 하는 것 같다”고 큰 소리로 웃었다.

그렇다면 미국 정치인이 이준석 전 대표와 같은 행동을 했다면 어떤 평가를 받게 될까. 조지아주의 백인 정치인이 동료 한인 정치인이 더 이상 쓰지 않는 한국 이름을 부르고 한국어로 “당신은 우리와 같아 보이지 않는다”라고 말했다고 상상해 보면 된다.

귀화한 미국시민에게 얼굴과 피부가 달라 보인다고 같은 미국인이라고 인정하지 못하겠다고 한다면 당장 인종차별이 되고, 그 나라 언어를 사용해 이런 표현을 한다면 혐오발언(hate speech)이 될 수 있다. ‘너와 내가 다르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 언어를 이용했다는 것 자체만으로 대중의 혐오 대상이 될 수 있다. 특히 잘 알려진 정치인이나 기업인이 이런 행동을 했다면 곧바로 ‘커리어 자살(career suicide)’로 이어지게 된다.

한국의 인종적 다양성이 미국에 비해 부족하기 때문에 이런 일에 둔감하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이날 강연회의 제목은 ‘바보야 문제는 정치야’로 미국 빌 클린턴 대통령의 유명한 선거 슬로건인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에서 따왔다. 또한 이준석 전 대표는 미국 하버드대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 최고 명문대에서 수학한 젊은 정치인조차 다문화, 다인종 사회에 대한 인식이 너무나 부족하다는 사실을 보며 저출산 시대 한국의 미래가 걱정스럽기만 하다.

이상연 대표기자

이준석 토크콘서트 참석한 인요한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이 4일 오후 부산 경성대학교에서 열린 이준석 전 대표, 이언주 전 의원이 진행하는 토크콘서트에 참석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