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배우 지나 롤로브리지다 별세…향년 95세

1950∼1960년대 할리우드 섹시 스타로 활약

당대 쌍벽을 이뤘던 소피아 로렌 “깊은 충격과 슬픔”

지나 롤로브리지다의 젊은 시절 모습

지나 롤로브리지다의 젊은 시절 모습

[AP=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20세기의 모나리자’로 불리며 전 세계 남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이탈리아 영화계의 전설 지나 롤로브리지다가 16일(현지시간) 별세했다. 향년 95세.

롤로브리지다의 가족은 고인이 이날 이탈리아 수도 로마에서 숨을 거뒀다고 발표했다.

1927년 7월 4일 로마 근교 수비아코에서 태어난 롤로브리지다는 미스 이탈리아 대회에 출전한 것을 계기로 영화계에 데뷔했다.

그는 1950∼1960년대 이탈리아와 미국 할리우드를 오가며 수십편의 작품에 주로 주연으로 출연했다.

롤로브리지다가 1950년대 할리우드에 진출했을 때 ‘피플 투데이’ 잡지는 커버스토리 제목을 “이탈리아에서 온 섹스 심벌이 미국을 침공한다”로 뽑았다. 그는 ’20세기의 모나지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으로도 불렸다.

그는 1956년 ‘노트르담의 꼽추’, 1959년 ‘솔로몬과 시바의 여왕’ 등에서 맡은 관능적인 역할로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누렸다. 1968년 ‘애인 관계’로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미국의 영화배우 록 허드슨과 이탈리아 여배우 지나 롤로브리지다의 1960년 9월 10일 모습
미국의 영화배우 록 허드슨과 이탈리아 여배우 지나 롤로브리지다의 1960년 9월 10일 모습

[AP=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소피아 로렌, 브리지트 바르도 등과 함께 유럽을 대표하는 섹시 스타로 이름을 날린 그는 프랭크 시내트라, 율 브리너 등 숱한 남성들과 염문설에 휘말리기도 했다.

그는 2018년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헌액됐다.

은막에서 은퇴한 뒤에는 사진기자, 조각가, 사진작가로도 활동했다. 쿠바 공산혁명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와의 독점 인터뷰 특종으로 화제를 몰기도 했다.

롤로브리지다는 1949년 유고슬라비아 출신 의사 밀코 스코피치와 결혼해 아들 밀코 스코피치를 출산했으나 결혼생활 22년 만인 1971년 이혼했다.

이후 그는 자신보다 34살 어린 스페인 사업가 하비에르 리가우와 한때 약혼했다가 2007년 공식 결별했다.

롤로브리지다는 지난해 9월 25일 조기 총선에서 ‘주권과 대중 이탈리아 정당'(ISP) 소속으로 상원의원에 도전했으나 ISP가 비례대표를 배분받기 위한 최소 기준인 3% 득표율을 얻지 못해 낙선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지난해 11월 21일이다.

당시 그는 이탈리아 TV의 간판 버라이어티쇼에 출연, 재산의 상당 부분을 전 집사에게 남기겠다고 유언장에 쓴 이후 상속 재산을 둘러싸고 아들·손자와 기나긴 법적 다툼을 벌이고 있다고 털어놨다.

그는 그러면서 “나는 평화롭게 살고 죽을 권리가 있다”고 말하며 흐느꼈다.

고인의 별세 소식이 알려진 뒤 각계에서 추모 메시지가 이어졌다.

당대 쌍벽을 이뤘던 소피아 로렌은 “깊은 충격과 슬픔을 느낀다”고 밝혔다.

젠나로 산줄리아노 이탈리아 문화부 장관은 “고인의 매력은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고 애도의 뜻을 전했다.

지나 롤로브리지다, 2018년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입성
지나 롤로브리지다, 2018년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입성

[EPA=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