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낙태 다음 타깃은 피임·동성혼?

주심 “낙태와 연결 안돼” vs 보충의견 보수대법관은 “오류 바로 잡아야”

진보대법관 3명 “다른 헌법권리 위협받아”…대법원, 보수절대우위 구도

연방대법관 9인
연방대법관 9인

연방대법원이 낙태를 헌법상 권리로 인정한 판례를 파기한 이후 동성혼, 피임 등 다른 판결 역시 뒤집힐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대법원 다수 의견은 이들이 낙태와 별개 사안이라고 거리를 뒀지만 ‘헌법에 낙태 언급이 없고 다른 조항으로도 보호되지 않는다’는 논리를 적용할 때 이들 권리도 지속될 것임을 장담할 수 없다는 진보 진영의 우려 탓이다.

1973년 낙태권을 보장한 ‘로 대 웨이드’ 판례를 파기하는 판결문 작성을 주도한 새뮤얼 얼리토 주심 대법관은 “이 판결의 어떤 것도 낙태와 관련 없는 다른 판례에 관한 의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이해돼선 안 된다”며 우려 불식에 나섰다.

그는 “향후 우리는 그리스월드, 로런스, 오버게펠을 포함해 앞선 판례 모두를 재검토해야 한다”며 대법원에는 판례의 오류를 바로잡을 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이는 각각 피임과 동성애, 동성혼 등을 인정한 대법원 판례다.

‘로 대 웨이드’ 판례 변경에 반대한 진보 성향 대법관 3명은 소수의견에서 “아무도 대법관 다수가 그들의 일을 끝냈다고 확신해선 안 된다”며 클래런스의 보충 의견에 대한 우려를 숨기지 않았다.

이들은 “‘로 대 웨이드’ 판결의 권리는 동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라며 “반대로 법원은 이 권리를 신체 보전, 가족 관계, 생식을 포함한 다른 자유와 수십 년간 연결해 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낙태 인정이 피임약의 구매 및 사용, 동성애, 동성 결혼과 연결돼 있다면서 대법원의 다수 의견은 위선이거나 다른 헌법적 권리가 위협받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대법원 앞의 낙태 찬반 시위대
대법원 앞의 낙태 찬반 시위대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워싱턴포스트(WP)는 이 판결이 다른 보호조치의 철회를 촉발할 것이라고 우려하는 시민의 반응을 전했다.

30년간 동성혼 상태인 에이미 마틴은 WP에 동성혼 금지가 대법원의 다음 타깃에 될 수 있다는 공포에 사로잡혔다면서 “미국의 뼈대와 기초가 풀려버리고 있다”고 말했다.

스콧 스키너-톰슨 콜로라도 보울더대 법학 부교수는 “자유를 권리장전이나 수정헌법이 추인됐을 때 용어로만 정의한다면 우리는 그 시대에 갇혀 버린다”며 “18∼19세기에 미국은 많은 이들에게 그리 자유롭지 않았다. 특히 여성과 유색인종에게 그랬다”고 대법원 판결을 꼬집었다.

WP는 대법원 판결을 비판하는 많은 이들이 소수 인종과 소수 민족, 동성애자에 대한 권리의 철회를 촉발할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우려한다며 백인과 남성에 맞서 어렵게 확대한 권리가 대법원에 의해 사라져 버릴지 모른다는 감정을 느끼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현재 미국 연방 대법관 이념적 분포는 보수 6명, 진보 3명이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20년 ‘진보의 아이콘’으로 통하던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대법관이 별세한 뒤 보수 성향 인사를 후임자로 앉힘으로써 이전 보수 5명, 진보 4명의 구도가 보수 절대 우위로 바뀐 결과다.

이에 따라 대법원이 국민 전반의 여론과 동떨어진 보수 일색의 결정을 내릴 공산이 상당하다는 우려도 있다.

연방 의회가 최근 잇따른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한 뒤 약 30년 만에 총기 규제를 실질적으로 강화하는 법안을 처리하던 지난 23일 대법원이 찬반 6 대 3으로 공공장소에서 권총을 휴대할 권리를 인정한 판결을 내린 것이 극명한 사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