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 반쪽만 보고 만드는 뉴스

이상연의 짧은 생각 제 216호

폭스뉴스를 미국 최고의 케이블 뉴스 채널로 키운 로저 에일스가 1996년 사장에 취임하며 한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전체 시청자가 아니라 절반의 시청자만 보고 뉴스를 만든다”는 것입니다. 공화당과 민주당 지지자 모두를 위한 뉴스가 아니라 보수 진영의 공화당 지지자들만을 위해 뉴스를 제공하겠다는 선언이었습니다.

닉슨 대통령 시절부터 선거 캠페인 컨설턴트로 일했던 그는 루퍼트 머독에 의해 스카웃된 후 승승장구를 거듭했고 폭스뉴스는 결국 부동의 1위 채널로 올라섰습니다. 하지만 그는 여성 앵커와 직원들에게 상습적으로 ‘몹쓸 짓’을 했고 이러한 성추행 행각이 드러나 2016년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습니다.

폭스뉴스 퇴직후 그가 간 곳은 당시 트럼프 후보의 대선 캠프였고 그곳에서 대선 토론 기획을 맡아 트럼프 당선에 공헌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다음해인 2017년 혈우병 관련증상으로 사망하면서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흑막’ 인생을 마무리했습니다.

에일스의 스토리는 그의 사망 2년후인 2019년 니콜 키드먼이 나온 영화 ‘밤셸(Bombshell)’과 러셀 크로우가 그의 역할을 맡았던 드라마 ‘라우디스트 보이스(The Loudest Voice)’를 통해 다시 전세계적인 화제가 됐습니다. 2020년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에 우호적인 헐리우드 제작사들이 만든 컨텐츠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보수 진영에 던진 충격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에일스의 말 그대로 요즘 미국 언론을 보면 ‘반쪽의 국민만을 위하여’라는 말이 틀리지 않은 듯 합니다. 특히 새로 출현한 일부 매체들은 ‘트럼프 팬만을 위하여’라는 말이 더 맞을 것 같습니다. 보수나 진보 등 이념적 가치와 상식적인 접근에는 아예 관심이 없고 정치 자체를 ‘팬덤’ 수준으로 바꾸어 개인숭배와 음모론 컨텐츠로 세상을 어지럽히고 있습니다.

언론사를 표방하는 일부 한인 매체들도 이같은 분위기에 편승해 클릭수를 높이려 하고 있어 우려가 큽니다. 당장은 팬덤에 의해 클릭과 조회수가 올라가겠지만 숭배와 조작의 대상이 사라지면 그 다음에는 어찌 하려는지 걱정도 됩니다. 무엇보다 한인사회에 퍼져 나가고 있는 근거없는 음모론과 ‘가상현실’에 대해서는 과연 누가 책임을 질 것인지 묻고 싶습니다.

대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