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 도색잡지 ‘허슬러’를 아시나요

이상연의 짧은 생각 제124호

성인용 도색잡지 가운데 ‘허슬러'(Hustler)라는 것이 있습니다. 플레이보이 등과는 차원이 다르게 정말 노골적인 내용으로 채워진 ‘민망한’ 잡지입니다. 이 잡지를 창간한 래리 플린트의 인생은 영화 ‘래리 플린트(원제 The People vs. Larry Flynt)’로도 만들어질 만큼 파란만장했습니다. (영화는 명장 밀로스 포먼이 감독했고 베를린영화제 대상인 황금곰상을 받았습니다)

플린트는 1980년대 당시 유명한 침례교 목회자였던 제리 폴웰 목사를 특히 괴롭혔는데 급기야 허슬러에 패러디 광고 형식으로 그가 근친상간을 했다는 풍자문을 실어 미국사회를 들끓게 했습니다. 참다 못한 폴웰 목사는 명예훼손과 사생활 침해, 감정적 상해 등을 이유로 4500만달러의 손해배상 소송을 냈습니다.

2심까지는 감정적 상해가 인정된다며 20만달러를 배상하라는 판결이 내려졌습니다. 하지만 연방대법원은 수정헌법 제1조인 ‘표현의 자유’를 근거로 공인(public figure)에게는 감정적 상해 등이 적용되지 않는다며 만장일치로 플린트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한마디로 공인이 주장하는 정신적 피해 또는 명예훼손보다 표현의 자유라는 가치가 더 크다는 것입니다. 이 판결은 아직도 미국 언론 및 표현의 자유와 관련된 소송에 적용되는 기념비적인 판례입니다.

미국의 보수주의를 대변하는 법관으로 유명한 윌리엄 렌퀴스트 대법원장은 당시 판결문을 통해 “미국 시민이 갖는 가장 중요한 특권중 하나는 바로 공인이나 정책을 비판할 권리이며 이런 비판은 해당 대상에 대한 증오나 악의에서 비롯된 것일지라도 허용돼야 한다”면서 “비판의 동기를 문제삼아 불이익을 준다면 공적인 문제에 대한 토론이 위축될 수 있으며 이러한 악의적인 주장조차도 진실을 찾는데 도움을 준다”고 ‘뜻밖의’ 설명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공인’은 어떤 사람일까요? 미국에서 법적으로 규정한 공인은 ‘공중(public)에 의해 넓게 인정받으며 특정한 직책과 행동영역을 갖고 사회와 공중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한편, 사회로부터 혜택을 받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여러 판례에 비춰볼 때 정치인은 물론 연예인과 스포츠 스타, 사업가, 공공단체 대표 등이 포함되며 심지어 최근에는 소셜미디어(SNS) 유명인사도 공인으로 분류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한인 단체장들도 한인사회의 공인이라고 규정할 수 있습니다. 본인들도 공인이 된다는 각오로 단체장직을 맡았을 것이고 ‘회장님’이라고 불릴 때부터 사회적인 책임을 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단체장들이 직책과 호칭은 좋아하면서 비판에는 알러지 반응을 보인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인지 작은 비판만 받아도 ‘명예훼손’ 운운하면서 발끈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아무리 자유가 있다 하더라도 언론도 무작정 비난을 해서는 안됩니다. 실제로 심각한 해를 끼치려는 악의적인 의도(actual malice)를 갖고 발견된 사실까지 일부러 무시한채 허위 기사를 싣는다면 명예훼손에 해당하는 것이 맞습니다 (물론 이 경우에도 피해자인 공인이 이같은 악의를 입증해야 하는 엄중한 법적 책임을 지게 됩니다). 무엇보다 이런 기사를 게재하면 독자들이 먼저 알고 외면합니다. 이처럼 시장의 원칙을 존중하기 때문에 언론에 더 관대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래리 플린트와 제리 폴웰 목사는 대법원 판결이 내려진 후 불구대천의 원수가 됐을까요? 아닙니다. 두 사람은 사회문제를 깊게 토론하는 둘도 없는 친구가 됐습니다. 둘은 대학 강의를 함께 다니며 크리스마스 카드와 가족 사진을 교환하는 사이가 됐고 2007년 폴웰목사가 사망한 뒤 플린트는 LA 타임스에 그를 기리는 특별기고까지 했습니다. 한인사회에서도 이런 멋진 모습이 연출되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단체장 여러분, 비판을 들으면 독이 아니라 약이라고 여기세요!

대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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