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버스] 미국선 권력자들 ‘함정취재’ 핑계 안 통해…몰카취재 허용

미국서는 공익위한 취재활동에 거의 무한대 자유 보장

미국선 김건희 여사 ‘디올 백 수수’ 몰카, 취재 허용 범위

본보 이상연 대표가 한국 매체 ‘뉴스버스’에 기고한 칼럼을 전재한다./편집자주

지난 2020년 7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법률자문이었던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이 한 호텔방에서 치욕적인 ‘몰래 카메라’에 찍혀 화제가 됐다.

루디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이 정치풍자 영화 '보랏2' 제작진이 꾸민 가짜 인터뷰에 속아 몰래카메라에 포착된  장면. (유튜브 영상 캡처)
루디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이 정치풍자 영화 ‘보랏2’ 제작진이 꾸민 가짜 인터뷰에 속아 몰래카메라에 포착된 장면. (유튜브 영상 캡처)

줄리아니는 코로나19 대응 문제로 자신을 취재하고 싶다는 미모의 여기자를 따라 그녀의 호텔방까지 올라갔다. 그녀의 정체는 영화감독이자 배우인 샤샤 코언이 고용한 24세의 여배우로 선정적인 태도로 줄리아니를 유혹해 침대에 눕힌 뒤 두 손을 바지 속에 넣게 했다.

그 순간 코언이 현장에 뛰어들어 “이 여자는 15세 미성년자”라고 소리질렀고, 이 장면은 그의  정치풍자 영화 ‘보랏 2’에 그대로 실렸다. 몰카에 속아 일생일대의 망신을 당한 줄리아니는 현장에서 경찰을 불렀으나 이들에 대한 처벌은 원하지 않았고 추후 법적 대응도 하지 않았다.

‘함정 취재’는 틀린 말…’위장 취재’로 불러야

기자라는 사실을 숨기고 취재원에게 접근해 정보를 얻는 취재활동은 한국에서는 흔히 ‘함정 취재’로 불리지만 미국에서는 ‘위장 취재(undercover reporting)’라고 정의한다. 범죄 의도가 없는 사람들을 유혹해 범죄를 저지르게 하면 함정이지만, 범죄나 부정의 현장에 신분이나 취재 목적을 숨기고 접근하기 때문에 ‘위장’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설령 ‘함정’을 파놓고 몰래 카메라를 들이미는 행위 자체도 그 대상이 공직자나 유명 연예인, 스포츠 스타, 대기업 총수 등 미국 법률이 규정하는 ‘공인’이라면 윤리적으로는 지탄받을 수 있겠지만 법적인 처벌은 불가능하다. 바로 미국에서 가장 중요한 법률인 ‘수정헌법 1조’가 공인에 대한 감시를 공익으로 분류해 철저히 보호하기 때문이다. 줄리아니가 치욕을 당하고도 아무런 법적 조치를 취하지 못한 것도 이러한 연유다.

공인에 대한 위장취재는 법적으로 문제가 없지만, 미국전문기자협회(SPJ) 등은 자체적인 윤리규정을 통해 “꼭 필요한 경우에만 위장취재를 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협회는 “취재라는 사실을 밝히는 전통적이고 공개적인 방법을 통해서는 대중에게 필요한 공익적 정보를 얻을 수 없을 경우에만 위장 취재를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의 대표적 공인인 김건희 여사에 대한 위장취재는 미국이라면 법적, 윤리적으로 허용되는 취재 방법이 된다.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가 지난해 9월 13일 서울 서초구 코바나컨텐츠 사무실에서 최재영 목사에게 '디올 백'을 선물받고 대화를 나누는 몰카 장면.  (사진=유튜브 서울의소리 캡처)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가 지난해 9월 13일 서울 서초구 코바나컨텐츠 사무실에서 최재영 목사에게 ‘디올 백’을 선물받고 대화를 나누는 몰카 장면.  (사진=유튜브 서울의소리 캡처)

직원 위장해 기업 비리 취재…배상금은 단 2달러

미국 역사상 언론의 ‘몰래 카메라’ 취재가 소송으로 비화한 경우는 지난 1995년 ‘푸드 라이온(Food Lion)’ 케이스가 거의 유일하다. 당시 ABC 방송은 식품점 체인인 푸드 라이온이 비위생적으로 육류를 취급한다는 제보를 받고 기자 2명을 일용직 직원으로 위장시켜 매장에 취업시켰다.

직원으로 위장한 기자들은 몰래카메라를 이용해 육류 처리 현장을 생생히 녹화해 프라임 타임 뉴스로 내보냈고 푸드 라이온은 곧바로 ABC 방송을 고소했다. 이들은 사기와 불법침입, 직원의 충성의무 위반 등을 이유로 거액의 배상금을 요구했고, 1심 법원의 배심원단은 550만달러의 배상금과 2달러(기자 1명당 1달러)의 불법침입 및 충성규약 위반 배상금을 결정했다.

하지만 1심 판사는 배심원단의 사기 배상금이 과도하다고 판단해 이를 31만5000달러로 낮췄고, 항소법원은 아예 사기 배상금을 모두 기각하고 2달러의 불법침입 및 충성규약 배상금만 인정했다. 이 결정은 대법원에서도 그대로 확정돼 현재까지 위장취재와 관련한 기념비적인 판결로 남아 있다.

법원은 “사기업의 프라이버시와 운영규정은 보호돼야 하지만 그것이 헌법에 의해 보장되는 공익을 위한 뉴스 수집을 방해하는 무기가 될 수 없다”고 판결 이유를 밝혔다. 다만 직원으로 위장해 불법침입과 직원 윤리를 위반한 점은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1인당 1달러라는 명목적인 처벌만 내렸다.

미국 법원들은 이 판례에 따라 이후 가짜 이름을 대거나 신원을 속이고 사기업이나 개인에게 접근하는 취재 행태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고 있다. 하지만 몰래카메라 사용 자체를 사기로 보는 시각은 완전히 사라진 셈이다.

이와 관련, 언론인 단체인 미국 언론자유재단(FPF)은 지난 10월 31일자 칼럼을 통해 “점점 공인에 대한 접근이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취재원이 앞문을 열어주지 않을 때 뒷문으로 들어갈 수 있는 창의적인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면서 “대신 신중한 판단과 함께 취재 활동 전에 법률전문가와 긴밀히 협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