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사 연구 권위자 모토무라 료지 도쿄대 명예교수는 강의하면서 학생들에게 이런 질문을 자주 던지곤 했다.
“삼국지에 나오는 뛰어난 지략가 제갈공명이 이끄는 군대와 로마군이 싸운다면 어느 쪽이 이길지 상상해보세요. 저는 첫 번째 전투에선 틀림없이 로마군이 진다는 쪽에 걸겠습니다.”
로마군이 공명처럼 그럴듯한 술수를 부릴 줄 모르기 때문이라는 것이 모토무라 교수의 설명이다. 그러나 두 번째 이후부터는 로마군의 승률이 눈에 띄게 올라간다. 로마의 ‘와신상담’ 능력 때문이다.
로마군은 카르타고 명장 한니발이 이끄는 군대에 궤멸했다. 칸나에 전투에서 7만명이 죽었다. 그중에는 원로원 의원 80명도 포함됐다. 300명 정도였던 원로원 의원 가운데 3분의 1이 사망한 것이다. 오늘날로 치면 국회의원 3분의 1이 전쟁에 나가 죽은 셈이다.
철저하게 파괴된 로마군을 다시 일으켜 세운 건 스물 여섯살의 명문가 자제 스키피오였다. 스키피오는 적의 전술을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그는 칸나에 전투에서 로마군에 대패를 안긴 한니발의 전술을 응용해 자마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한니발은 이 전투로 몰락했고, 카르타고는 멸망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보다 앞선 기원전 3세기에 벌어진 삼니움인과의 전쟁에서도 로마군은 절치부심의 지혜를 보여줬다.
로마군은 강인한 산악부족 삼니움에게 초반 대패 위기에 내몰렸다. 삼니움의 장군은 로마가 ‘복종 의식’을 치른다면 살길을 열어주겠다고 했다.
기록에 의하면 복종 의식은 이렇다. 나뭇가지 두 개를 세우고 그 위에 창을 가로로 걸쳐 높이뛰기 장애물을 만든다. 그런 다음 로마 병사들이 그 창 아래를 구부정한 자세로 기어나가는 것이 의식의 핵심이다.
저잣거리에서 남의 가랑이 사이를 기어 지나가는 모욕을 견딘 한나라 대장군 한신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할 만한 모욕인 셈이다.
죽을 때까지 항전하겠다는 군사들을 다독이며 군 최고사령관인 집정관은 생환을 택했다. 로마군은 삼니움군의 거친 욕설과 조롱을 견디며 울분 속에 로마로 귀환했다.
복수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로마군은 새로운 집정관을 뽑아 다시 삼니움과 전투를 했고, 승리를 거둬 똑같은 방식으로 되갚는 데 성공했다.
모토무라 교수는 최근 번역 출간된 ‘로마사를 움직이는 12가지 힘'(사람과나무사이)에서 이런 로마인의 특성을 ‘회복 탄력성’이라고 설명한다. 패배할수록 강해지고, 패배에서 무언가를 배운다는 뜻이다.
저자는 공화정, 공공성, 대립과 경쟁, 영웅과 황제, 후계 구도, 선정과 악정, 5현제, 혼돈, 군인황제, 유일신교, 멸망이라는 키워드로 1천년이 넘는 로마사를 해설한다.
책에 따르면 로마인들은 신에게 기도를 올릴 때 로또 같은 ‘행운을 맞게 해 주세요’라거나 ‘풍년’을 빌진 않았다고 한다. 그 대신 ‘나쁜 일이 생기지 않게 해주세요’라고 빌었다. 여기에는 천재지변만 일어나지 않고 평범한 일상만 이어진다면, 나머지 일은 자신들의 힘으로 어떻게든 할 수 있다는 성실한 사고방식이 반영돼 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그는 “이러한 신앙심은 전쟁에 나가 비겁한 술수를 쓰지 않고 정정당당하게 싸우는 자세와 패배하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두 번 세 번 승리를 거둘 때까지 끈기 있게 싸우는 모습으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서수지 옮김. 41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