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무에서 길어 올린 빛나는 서사…욘 포세 작품 세계

‘3부작’ ‘아침 그리고 저녁’ 등 대표작 한국 소개

‘거울’ ‘가을날의 꿈’ 등 희곡 작품도 무대 올라

욘 포세
욘 포세 [자료 사진]

 

“이제 아이는 추운 세상으로 나와야 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는 혼자가 된다, 마르타와 분리되어, 다른 모든 사람과 분리되어 혼자가 될 것이며, 언제나 혼자일 것이다, 그러고 나서, 모든 것이 지나가, 그의 때가 되면, 스러져 다시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 왔던 곳으로 돌아갈 것이다, 무에서 무로, 그것이 살아가는 과정이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새, 물고기, 집, 그릇, 존재하는 모든 것이….”

5일 올해 노벨문학상을 받은 노르웨이 작가 욘 포세의 소설 ‘아침 그리고 저녁’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짙은 허무에 깃든 외로움의 정서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욘 포세 노벨문학상 수상
욘 포세 노벨문학상 수상 [자료사진]

‘아침 그리고 저녁’은 포세가 2000년 발표한 소설이다. 인간 존재의 반복되는 서사, 생의 시작과 끝을 독특한 문체에 압축적으로 담아냈다. 저자는 고독하고 황량한 피오르를 배경으로 한 평범한 어부가 태어나고 또 죽음을 향해 다가가는 과정을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그는 간결하고 음악적인 언어, 제자리를 맴도는 듯한 불투명한 서사, 심연에 파묻힌 인생의 환영을 통해 인간의 본원적 불안, 그리고 생명의 빛을 향한 희망의 시선을 소설, 시, 희곡 등의 작품에 녹여냈다.

책 표지 이미지
책 표지 이미지 [문학동네 제공]

한국에 소개된 대표 소설 ‘3부작’도 그런 경향을 보여준다.

저자는 세상에 머물 자리가 없는 연인과 그들 사이에 태어난 한 아이의 이야기를 쓸쓸한 어조로 그린다. 가난하고 비루한 그들의 삶과 죽음을 통해 소박하고 거룩한 사랑, 달곰씁쓸한 희망과 좌절, 사라지는 것들과 영원히 이어질 것들을 그 특유의 문장에 담아 아름답고 서글프게, 신비롭고도 섬찟하게 그려 냈다.

‘잠 못 드는 사람들'(2007)과 ‘올라브의 꿈'(2012) 그리고 ‘해질 무렵'(2014) 세 편의 중편 연작을 한 권의 책으로 묶은 이 책은 2015년 북유럽 문학 최고의 영예인 북유럽 이사회 문학상을 받은 바 있다.

책 표지 이미지
책 표지 이미지 [새움 제공]

초기작 ‘보트하우스’도 눈길을 끈다. 작중 화자의 불안감을 드러내며 시작하는 도입부가 많은 현대 노르웨이 작가들에게 영감을 준 것으로 유명하다. 이름 없는 화자인 ‘나’와 그의 어린 시절 친했던 친구인 크누텐, 그리고 크누텐의 아내 세 사람 사이에 벌어지는 기묘한 사건이 관능적인 은유와 섬짓한 분위기 속에 펼쳐진다. 이 작품은 1997년 노르웨이에서 29분 분량의 중편영화로도 만들어진 바 있다.

희곡집 ‘가을날의 꿈’은 ‘어느 여름날’ ‘가을날의 꿈’ ‘겨울’ 등 희곡 3편을 수록한 책이다. 짧고 서정적인 시어로 표현된 대사들이 작품에 여백을 만들어 내며 독특한 매력을 풍기는 작품들이다.

그의 희곡을 바탕으로 한 연극도 무대에 올랐다.

‘가을날의 꿈'(송선호 연출, 2006), ‘겨울'(김영환 연출, 2006), ‘이름'(윤광진 연출, 2007), ‘기타맨'(박정희 연출, 2010), ‘어느 여름날'(윤혜진 연출, 2013) 등이 국내에서 초연된 바 있다.

그의 희곡은 가족 관계와 세대 간 관계를 통해 볼 수 있는 인생, 사랑과 죽음 같은 보편적인 삶의 모습들을 주로 다뤘다. 그는 단순하고 간결한 언어로 심오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장인이다. 쉼표 너머의 침묵, 그리고 내밀한 뉘앙스가 담긴 대사들을 통해서 말이다.

포세 연극 '이름'의 한 장면
포세 연극 ‘이름’의 한 장면 [연합뉴스 자료사진]

 

소설 ‘아침 그리고 저녁’의 추천사를 쓴 정여울 작가는 “정제되고 차분한 언어로 선문답 같은 언어를 쓰지만, 그 이면에는 인간이 포기해선 안 되는 따스함과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는 작가”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