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무가지 신문은 무슨 기준으로 1등 뽑나?

29년전 서울의 한국일보에서 견습으로 기자 일을 시작할 때의 일이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견습기자는 무조건 사회부 경찰기자팀에 배속돼 속칭 ‘하리꼬미'(터잡기라는 뜻의 일본어)를 해야 했다. 집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경찰서의 냄새나는 기자실 방에서 숙박을 해결하며 취재를 하는 것이다.

그러다 현재는 한국의 유명 인터넷 매체를 운영하고 있는 선배에게 눈물이 쏙 빠지도록 혼이 났다. 연쇄 절도범에 대한 기사였는데 피해액을 ‘수백만원’이라고 쓴 것이다. “스트레이트 기사는 꼼꼼한 취재를 바탕으로 육하원칙의 내용과 정확한 숫자를 기록해야 하는데 수백만원은 도대체 누구 상상에서 나온거냐”는 훈계였다.

이같은 교육 덕분인지 이후 기사를 작성할 때 수치와 통계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됐고 후배들도 같은 방식으로 가르치게 됐다. 독자들에게 정확한 기사를 전달하는 것이 기자의 사명이고 이를 위해서는 치밀한 취재와 정확성을 담보할 수 있는 기사작성법이 뒷받침돼야 한다. 기자가 미국 유학을 할 때 이 선배는 삼성 X파일과 K스포츠 및 미르 재단 의혹을 특종 보도하며 한국 최고의 탐사 취재기자라는 명성을 얻게 됐다.

정확한 수치의 제시가 필요한 것은 단순한 스트레이트 사건 기사에 국한되지 않는다. 기업 홍보기사부터 권력에 대한 비판기사에 이르기까지 팩트가 벽돌처럼 쌓여 지탱해주지 않으면 기사로서의 힘을 갖지 못할뿐더러 독자에 대해서는 큰 실례가 된다. 기자라는 명함을 지니고 다니는 사람들이 꼭 기억해야 할 말이다.

어제 한 지역 한인신문이 ‘신문도 1등, 웹사이트도 1등’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출범 15개월 만에 자체 홈페이지 방문자가 크게 늘었다는 사실에 고무됐는지 작성한 기자의 이름도 없이 “동남부 한인사회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이라는 문장으로 기사를 시작했다.

웹사이트 1등이라는 주장의 근거는 순 방문자가 50만명에 ‘근접’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애틀랜타 K를 겨냥해 “그동안 한인 뉴스 미디어 1위를 자임해 온 타 미디어가 자사 기사에서 공개한 6월 방문자 수를 넘어섰다”고 주장했다.

구글 애널리틱스로 집계된 통계라면 정확한 수치를 제공할텐데 “50만명에 근접한다”는 애매한 수치는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본보는 최근 기사를 통해 “구글 애널리틱스 통계에 따르면 6월 이용자(users)가 49만6517명, 방문(sessions)은 56만6600건”이라고 밝혔다. 49만6517명 보다 더 많은데 50만명에 근접한다면 도대체 몇 명인지도 의문이다.

구글이 제공하는 그 많은 통계는 하나도 공개하지 않고 그저 1등이니 믿으라고 주장한다면 독자들을 너무나 우습게 아는 처사이다. 애틀랜타 K가 1등이라고 주장했으니 본보만 제치면 1등이라는 논리인데 그래도 다른 신문사의 통계도 살펴보는 것이 취재의 기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또한 구글은 ‘방문자’라는 개념의 통계 대신 사이트에 접속하는 ‘이용자’와 이용자가 사이트 내에서 행하는 광고 클릭 등의 활동을 의미하는 ‘방문’이라는 통계를 제공한다. 방문자라는 개념이 무엇인지도 설명해야 정확한 기사가 되는 것이다.

웹사이트 1위 주장보다 더 황당한 것은 ‘신문도 1등’이라는 제목이다. 지역 한인들이 모두 알다시피 애틀랜타에서 발행되는 한인 신문 3개는 모두 한인마트나 음식점, 비즈니스에 공짜로 뿌려지는 무가지이다. 3개 신문 모두 부수를 한번도 공개한 적이 없어 몇 부를 찍는지 알 수 없고, 주민들이 얼마나 가져가는 지도 파악하기 불가능하다 . 특히 유료배달을 받아보는 독자가 1명도 없는데 무슨 근거로 1등이라고 주장하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만약 광고 매출을 기준으로 1등이라고 주장한다면 한마디로 부정확한 배포 부수로 ‘광고주를 속이는데 1등’이라는 말로 들릴 수 밖에 없다.

이 신문은 얼마전 애틀랜타총영사의 이임 소식을 다른 한인언론들에 비해 가장 뒤늦게 알아놓고 갑자기 단독 기사라며 “총영사 전격교체”라는 제목을 달았다. 게다가 민주평통 애틀랜타협의회장 인선을 둘러싸고 현 정권과 갈등을 빚어 교체된 것처럼 묘사하는 내용을 기사에 포함시켜 놓았다

총영사관의 문제제기가 있자 신문사 측에서는 “한인사회에 떠도는 후문을 듣고 기사를 작성했다”고 답했다고 한다. 한인사회의 소문을 바탕으로 기사를 쓰면서 총영사관에 확인전화 한통 하지 않는 것이 정상적인 저널리즘인지도 궁금해진다. 게다가 총영사관의 문제제기 후 온라인의 기사는 모두 고쳐놓고, 종이신문에는 해당 기사를 1면 톱으로 그냥 내보냈다. 더욱 슬픈 사실은 이 ‘1등 종이신문’의 존재를 몰랐는지 총영사관이 항의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신문은 지난 2021년 애틀랜타한인회와 동남부한인회연합회 등 6개 단체가 애틀랜타 K에 대한 취재거부를 발표하자 다음날 전문가 대담 등의 특집 기사를 통해 인터넷 매체의 문제점을 맹폭했다. 그런데 종이신문의 쇠락이 현실화하자 얼마전부터 인터넷에 올인한다며 카톡방에 ‘기사 도배’를 하는 등 본격적인 마케팅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홈페이지 이용자는 때로는 늘 수도, 때로는 줄 수도 있다. 하지만 저널리즘의 기본도 지키지 않으면서 웹사이트 1등을 하는 것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언론사라는 간판을 갖고 있다면 ‘최고 권위’를 자랑하기 전에 한번이라도 뒤돌아 볼 일이다.

이상연 대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