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여자가 그렇게 술을 많이 마시죠?”
이러한 상투적 물음에 ‘남자는 마구 마셔도 되고, 여자는 좀 많이 마시면 안 되는가요’라는 대답은 논리적이지 못하다.
20년간 알코올의존증을 앓았던 영국 플리스머스대 교수가 엮은 책 ‘여성과 알코올’은 이러한 물음에 대해 신체 내 수분 비율이나 알코올 분해효소가 낮은 여성의 구조적 특성이나 의학적 해석을 내놓지 않는다.
책은 술을 마시거나 오용하는 여성을 폄훼하는 시선, 그들을 향한 편견 등 사회적 쟁점에 관한 통찰을 담았다.
사회 일각에서는 왜 남성의 만취에 대해 관대하면서도, 폭음하는 여성에 대해 성적으로 문란하다고 낙인찍거나 분노를 표출하는가.
때로 정부 기관이나 언론, 소셜미디어 등은 남성이 주도하는 밤 문화는 외면한 채 젊은 여성의 음주 이미지를 왜곡시키거나 부정적으로 생산하지는 않았는가.
알코올에 중독된 남성보다 여성이 더욱 ‘부도덕하다’는 잣대를 들이대는 이유는 무엇인가.
책은 음주의 맥락에 대해 개인적 또는 의학적 차원이 아니라 사회의 문화, 차별, 배제 등의 요인과 더불어 이해하려는 사회적 모델을 적용한다.
여성에게만 부과된 비난과 기대, 낙인이나 규제 등이 여성의 음주를 규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성이 음주를 지속하는 요인은 남성과 구별되는 측면이 있을 수 있어 이를 헤아려야 한다고 말한다.
말 못 할 가정폭력이나 비극적인 개인사를 견뎌내기 위한 대안적 공간은 아닌지, 과다한 음주를 하는 것으로 보고되는 레즈비언 여성들의 이면에 감춰진 아픔은 무어인지 들여다봐야 한다는 것이다.
카리브해 흑인 여성에게 알코올은 출산, 결혼 등 예식의 중심에 있고 종교의식을 도와주는가 하면 크리스마스 케이크의 재료로도 쓰인다. 이처럼 알코올은 여성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다양한 역할도 있다.
책에는 알코올 연구자와 젠더 연구자, 사회복지사, 간호사, 알코올의존증 경험자 등 다양한 경력의 소유자들이 등장해 여성의 음주에 관해 대변한다.
음주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여성을 위한 적절한 치료 공간은 있을까.
의사 중 일부가 여성의 음주를 도덕적 관점으로 심판한다면, 여성은 죄책감을 느껴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사회가 기대하는 규범에 미치지 못했다는 자괴감,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는 생각에서 오는 수치심이 치료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찾지 못하게 한다.
이러한 여성들은 비심판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분위기에서 감정을 털어놓게 하는 ‘치료의 장’을 필요로 한다.
집필진은 술을 마시거나 오용하는 여성은 주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서로 다름을 중심에 두고 현상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패치 스태던 엮음.정슬기 옮김.37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