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틀랜타한인회, 여론 수렴없이 건물 2층으로 ‘사실상 철거’
한인회관 설립 놓고 ‘좌우’ 분열…한인회 총회 표결로 설립
한인이 앞장서 소녀상 위치 이전한 첫 사례로 역사에 기록
지난해 3월 1일 전세계 주요 한인회관 앞에 최초로 세워졌던 애틀랜타한인회관 평화의 소녀상이 16일 오전 회관 2층으로 옮겨졌다.
이날 이전은 김일홍 한인회 건물관리위원장이 인부 2명을 불러 전격적으로 실시했으며 소녀상은 2층 복도 한편에 놓여졌다. 소녀상이 위치했던 회관 앞 공간은 완전히 철거됐다.
소녀상이 옮겨진 2층 복도는 소녀상 기념관이라는 명칭이 붙어있지만 평소 아무도 찾지 않는 공간이며 한인회관 2층은 2014년 입주 후부터 지금까지 냉난방이 고장난 상태여서 여름이나 겨울에는 관람객을 받을 수 없는 곳이다.
현재까지 전세계 한인회관 가운데 건물 내에 소녀상이 위치한 곳은 뉴욕한인회관이 유일하지만 뉴욕한인회관 소녀상은 한국과 미국의 정치인들도 자주 찾는 6층의 한인이민사박물관에 놓여져 있다.
무엇보다 이번 한인회관 평화의 소녀상 이전은 세계에서 처음으로 한인들이 주도해 소녀상을 스스로 이전한 사례로 역사에 기록되게 됐다. 일본 정부의 집요한 반대공작이나 관람 편의 등의 이유로 소녀상이 옮겨진 경우는 있지만 한인회가 스스로 이전한 케이스는 애틀랜타가 처음이다.
한인회관 앞 소녀상 설립은 추진 당시부터 한인사회에서 큰 논란이 됐다. 소녀상 설립을 놓고 한국의 좌우 이념 대립이 애틀랜타에서 불거지면서 보수 우파 진영의 한인 인사들이 공식적으로 반대 의사를 표명했기 때문. 또한 박선근 전 회장 등은 “차세대들에게 한국의 긍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더 좋다”는 등의 다른 이유로 설립에 반대했다.
애틀랜타총영사관 측은 이에 대해 공식적인 반응을 내놓지는 않았지만 외교적으로 민감한 조형물이 설치돼 있다는 이유로 이후 한인회관에서 한인사회 기념식을 제외한 공식행사를 단 한차례도 주최하지 않았다.
이홍기 한인회장은 보수 성향 인사이면서도 당시 김백규 소녀상 건립위원장 겸 한인회관 관리위원장과의 관계 때문에 고심을 거듭하다 한인 공청회와 총회 표결을 통한 결정을 해법으로 내놓았다. 이 회장은 당시 기자에게 “솔직히 소녀상을 (한인회관에) 놓고 싶지 않지만 눈치를 봐야 해서 어쩔 수 없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결국 2022년 12월 개최된 정기총회에서 참석자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설립이 결정됐다.
이후 2023년 3월 1일 104주년 3.1절에 한인회관 앞에서 성대한 설립 기념행사가 개최됐고 미주 한인사회는 물론 한국과 전세계에 설립 뉴스가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하지만 이홍기 회장이 김백규 위원장과 극심한 결등을 겪은 뒤 역시 보수 인사인 김일홍 위원장이 임명되면서 소녀상 이전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지난 12일 열린 한인회 이사회는 총회의 결정을 뒤집고 독단적으로 소녀상 이전을 의결했고 이 자리에는 취재진의 입장도 허용되지 않았다. 한인회 최고 의사결정기관인 총회에서 결정된 안건이 하위 기관인 이사회의 자의적인 결정으로 번복된 나쁜 선례가 만들어진 것이다.
일부에서는 “이렇게 옮길 것이었으면 차라리 만들지 않았어야 했다”거나 “조만간 한인회장이 바뀌면 소녀상이 다시 건물 앞으로 옮겨지는 것이냐”는 자조섞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소녀상을 이전하려면 최소한 여론 수렴의 절차는 거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소녀상 사태는 애틀랜타한인회와 이홍기 회장을 규정할 또다른 ‘추태’로 역사에 기록될 전망이다.
이상연 대표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