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자-B1/B2 비자 소지자도 한국서 임금받으면 설비 설치 등 가능
“E2 비자도 막혔다”…트럼프발 단속에 한국 기업 ‘투자 회의론’ 고조
한미 FTA 체결국인데도 E4 쿼터 제로…한국 정부 외교력 도마 위에
지난 4일 미국 조지아주 브라이언카운티 현대차-LG 합작 배터리 공장 현장에서 체포된 300여명의 한국 직원 대부분이 미국 연방법이 규정하는 근로 규정을 지켰는데도 불법 체포된 것으로 나타났다.
국토안보부 산하 국토안보수사국과 애틀랜타총영사관에 따르면 체포된 한국 파견 직원 대다수는 무비자(ESTA)나 단기 체류비자인 B1 또는 B2 비자를 소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무비자나 B1/B2 비자도 미국 연방법의 비자 관련 규정에 따르면 특정 상황에서 단기간 근무를 할 수 있다.
이민법 전문 위자현 변호사는 “ESTA나 B비자를 소지한 사람들도 신설 공장의 기계 설치 등을 위해 미국을 방문했다면 미국이 아닌 한국 본사에서 한국 계좌로 해당 작업에 대한 임금을 받는 경우 이같은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면서 “이민단속 당국이 이같은 규정을 무시하고 E2(미국 투자기업의 파견직원 비자)나 영주권을 소지하지 않았다고 무차별 체포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 단속이 이뤄진 배터리 공장은 조만간 완공을 앞두고 각종 설비와 기계 등을 설치하기 위해 현대차 및 LG에너지솔루션 본사 직원 및 하청업체 직원들이 한국에서 파견돼 작업을 하고 있었고, 이들 대부분이 당국에 체포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기업들은 이같은 당국의 무차별 단속을 예방하기 위해 가능하면 E2 비자를 발급받으려 노력해 왔지만 이마저도 지극히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조지아에 대규모 투자를 한 한국 대기업 관계자는 “비용이 훨씬 많이 들기는 하지만 불법 오해를 받지 않기 위해 E2 비자를 수백명씩 승인받아 직원을 파견해 왔다”면서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인 지난해 12월부터 갑자기 주한미국대사관이 신청한 E2 비자 전량을 모두 승인 거부했다”고 말했다.
E2 비자의 승인 거부 사태는 올들어 더욱 심각해지기 시작해 미국에 투자한 대기업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대규모 투자를 유치해놓고 정작 공장 설치와 운영에 필요한 필수 인력의 미국 파견은 막고 있다”며 미국 투자를 후회하는 목소리가 커졌다는 것이다.
다른 대기업 관계자는 “우리 생산시설에 맞는 기계와 장비를 적재적소에 문제없이 배치하는 것은 숙련된 본사 직원만이 처리할 수 있다”면서 “투자 주체인 우리도 비자 받기가 어려운데 하청업체들의 고민은 더욱 클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러한 한국 기업들의 고충을 해결하기 위해 미국과 FTA(자유무역협정)를 체결한 국가에게 발급되는 E4(전문직 취업비자) 쿼터를 위해 한인단체 등이 로비를 펼치고 있지만 20년 넘게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한국보다 대미 투자와 인구가 훨씬 적은 호주와 싱가포르는 E4 쿼터를 통해 각각 1만개와 5000개의 전용 비자를 자국 기업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위자현 변호사는 “E4 비자 쿼터는 한인 동포들이 자발적으로 조직을 만들어 미국 정치인들에게 로비를 펼치고 있지만 결국 한국 정부가 나서서 외교적 역량으로 풀어내야 할 문제”라며 “최소한 E2비자의 문호 개방을 촉구하는 목소리라도 내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