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눈] 조지아주 경제사절단, ‘정치 브로커’의 그림자

한미 경제교류 이벤트, 개인의 정치욕과 브로커 구조에 휘둘려 취지 퇴색

허위 직함·지인 초청·국회 출입 시도까지…한인사회 구조적 문제 드러나

한국과 미국 조지아주 간 소공인 교류 확대를 위해 추진된 ‘조지아주 경제사절단 방한 행사’가 한인 정치 브로커의 사적 개입으로 본래 취지가 훼손됐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 “존재하지 않는 미국 단체에 한국정부 예산 사용”

이번 경제사절단 통역을 맡은 박청희씨(애틀랜타한인회 부회장)는 행사 주관기관인 전국도시형소공인연합회의 의뢰를 받아 사절단의 통역 및 일정 지원을 담당했다.

그런데 박씨는 자신을 ‘아시안경제인연합회장’이라 소개하며 한국 측 기관 및 지자체 관계자에게 접근한 것으로 확인됐다.

문제는 이 ‘아시안경제인연합회’라는 단체가 존재하지 않는 유령 조직이라는 점이다.

행사 관계자들은 “박씨가 이 명칭을 이용해 조지아주 의원들과 동행한 자신의 지인들을 ‘부회장단’으로 둔갑시켰고, 이들의 체류비·접대비가 한국 정부기관인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사장 박성효) 예산으로 집행됐다”고 증언했다.

박씨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한 인도와 중국계 인사들은 “아시안경제인연합회는 들어보지 못한 단체이며 친구인 박씨가 한국에 함께 가자고 해 왔을 뿐”이라고 말했다.

한인 차세대 부회장으로 소개된 인물은 기자에게 “경제인은 아니며 영화 스턴트맨으로 활동하고 있다. 무슨 행사인지도 모르고 박씨가 오라고 해서 왔다”고 증언했다.

소공인연합회 관계자는 “한국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공기관이 실체가 없는 단체와 교류하고 예산까지 사용했다는 점에서 실무자의 행정 책임이 크다”고 지적했다.

◇ 의원 지인을 ‘보좌관’으로 위장 시도

논란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복수의 사절단 관계자들에 따르면 박씨와 소상공인진흥공단 측은 한국 방문에 동행한 한 조지아 주의원의 지인을 ‘의원 보좌관’으로 허위 등록해 국회 행사 참석을 시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사절단 내부에서 “한국 국회를 우습게 여기는 처사”라는 강한 반발이 제기되면서 계획은 무산됐다.

한 참가자는 “공식 외교 일정에 개인 지인을 끼워 넣는 건 외교 결례에 해당한다”며 “이번 일로 조지아주 정치인들에 대한 신뢰마저 손상됐다”고 말했다.

◇ 주의원들 ‘칙사 대우’ 논란…“가방 사다 달라” 황당 요구

더 큰 문제는 박씨가 조지아주 주의원들을 봉사직 명예직이 아닌 ‘외교 사절’처럼 과도하게 대우하며 공식 일정을 사적인 접대 자리로 변질시켰다는 점이다.

박씨는 행사 종료 전날, 소공인연합회 관계자에게 전화를 걸어 “한 의원이 한국에서 받은 기념품을 담아갈 가방이 필요하니 하나 사다 달라”고 요구했다.

이 요구는 단순한 결례를 넘어 조지아주 의원 윤리규정(Ethics Code)에서 금지하고 있는 ‘외국 기관으로부터의 금전적 또는 물품성 선물 수령’에 해당할 소지가 있다.

실제로 조지아주 의원 보직은 무보수 명예직(Volunteer Position)이며 외국 기관으로부터 어떠한 경제적 대가를 받을 수 없도록 규정돼 있다.

이 요구가 해당 의원의 동의 또는 지시로 이뤄진 것인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행사에 참석한 한 인사는 “한국 측 관계자들에게 마치 ‘의원님이 그렇게 말씀하셨다’는 식으로 전달돼 모두가 난처해했다”고 전했다.

◇ “행사 본래 취지, 브로커들의 정치놀음에 묻혀”

이번 사절단은 원래 한국 소상공인들의 미국 진출 기반 조성 및 기술·제도 교류 확대를 위해 마련됐다.

그러나 행사 전반이 개인의 정치적 목적과 인맥 과시에 이용되면서 ‘정상적 경제교류’라는 취지가 사실상 퇴색됐다는 비판이 나온다.

방문 취지와 통역도 원활이 이뤄지지 않아 이번 방문이 오히려 한국과 조지아주의 경제 교류를 퇴행시켰다는 비판도 있다. 미국 주의원의 역할에 대한 충분한 사전협의가 없어 한국 국회의원들과의 면담에서 연방 차원의 문제인 소상공인 비자 해결을 주문하는가 하면 통역을 맡은 박씨가 ‘비자면제(Visa Waive) 프로그램’을 ‘R비자(종교비자)’로 전달하는 촌극까지 빚어졌다.

특히 박씨는 한국 방문기간 내내 한국의 정치인 및 지방자치단체장들에게 “조지아주 주요 한인타운 도시의 시장으로 출마할 계획”이라며 접근을 시도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한인회나 지역 비즈니스 네트워크를 사적 정치도구로 사용하는 전형적인 브로커 행태”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 구조적 문제: “한인 정치 브로커, 한미 교류의 걸림돌”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단순한 개인 일탈로 보기 어렵다고 말한다.

애틀랜타의 한 한인단체장은 “한국과의 교류 사업이 늘어나면서, 일부 한인들이 ‘공공외교’나 ‘경제사절단’ 이름으로 예산 사업에 끼어드는 구조적 브로커 네트워크가 생겼다”며 “이들은 정치인과 공공기관 사이를 오가며 사적 이익을 취하고, 한인사회의 신뢰를 무너뜨린다”고 말했다.

실제로 미주 각지에서는 ‘한인 정치 컨설턴트’ 혹은 ‘경제교류 추진단장’ 등의 비공식 직함을 내세워 공공 예산 사업에 개입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이로 인해 진정성 있는 한미 경제협력 사업이 ‘브로커 사업’으로 인식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 “투명한 예산 집행과 검증 절차 필요”

한편, 한국 중소벤처기업부 산하 소상공인진흥공단은 이번 사안에 대한 질의에 구체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본보는 또한 박청희 씨에게 수차례 전화와 문자 메시지를 통해 입장을 확인하려 했지만 답변을 받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투명한 예산 집행과 공공사업 참여자 검증 절차가 필요하다”며 “이런 구조를 방치하면 한인사회의 정치력 신장과 한미 양국 간 신뢰 구축이 근본적으로 흔들린다”고 지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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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연 기자

한국 국회를 방문한 조지아주 경제사절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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