켐프 등 비(非) ‘마가’ 견제 효과…보수층 결집, 외국기업 ‘길들이기’
이민 당국이 지난 4일 조지아주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을 급습해 한국인 근로자 300여 명을 체포한 사건은 단순한 단속을 넘어선 정치적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일각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군사작전’과도 같은 이번 단속을 통해 공화당 내부의 권력 재편과 향후 대선 구도, 보수층 결집과 이민 문제 등 여러 토끼를 동시에 잡으려 했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 첫 번째 노림수: ‘비(非) MAGA’ 켐프 조기 견제
현대차-LG 합작 공장은 브라이언 켐프 조지아 주지사가 자랑하는 최대의 업적이며, 조지아 경제 개발사에서 ‘왕관의 보석(crown jewel)’이라 불릴 만큼 상징성이 크다. ICE의 이번 단속이 이 공장 건설 현장을 정조준한 것은, 켐프 주지사의 정치적 입지에 직접적인 타격을 가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단속 직후 열렬한 트럼프 지지자이자 조지아 제10지역구 연방하원의원 후보인 토리 브레이넘은 자신이 이 공장의 불법행위를 당국에 직접 제보했다고 공개하며 “이 같은 불법 고용은 전적으로 켐프의 책임”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켐프는 이번 단속에 대해 아무런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켐프 주지사는 2020년 대선 이후 트럼프의 선거 부정 주장을 수용하지 않아 트럼프와 대립각을 세운 대표적인 ‘비(非) MAGA’ 공화당 인사다.
특히 그는 공화당 내 반 트럼프 인사들로부터 2028년 대선 출마를 권유받고 이를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는 이번 단속을 통해 켐프와 같은 잠재적 경쟁자들을 견제하고, 향후 대선 과정에서도 ‘킹메이커’ 역할을 하려는 포석을 놓은 것이다.
◇ 두 번째 노림수: 핵심 지지 보수층 결집
트럼프는 이번 단속을 통해 주요 지지층인 백인 노동자들에게 ‘내가 당신들을 보호하고 있다’는 확실한 메시지를 전했다. 외국인 불법 고용 문제를 부각시켜 건설업과 생산직종에 주로 종사하는 이들의 표심을 다시 한번 결집시키려는 전략이다.
맷 리브스 조지아주 하원의원은 애틀랜타 K에 “이번 단속은 지역 건설노조의 반복적인 민원 제기로 시작됐으며, 최소 6개월 이상 ICE에 보고가 이어졌다”고 밝혔다. 이는 “외국 기업이 미국 노동자의 일자리를 위협하고 있다”는 보수 진영의 주요 이슈를 재확산시키는 효과를 냈다.
◇ 세 번째 노림수: 외국 기업에 대한 경고
이번 단속은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한 외국 기업들에게 강력한 경고로 작용했다. 현대차와 같은 기업이라도, 준공 이후의 생산직뿐만 아니라 건설 과정의 모든 인력도 미국인을 우선 고용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각인시켜 준 것이다.
트럼프는 단속의 의미를 묻는 질문에 “외국 기업의 대미 투자는 환영하지만, 고용에 있어서는 미국인을 우선해야 한다”는 입장을 명확히 했다. 애꿎은 한국 기업이 본보기가 된 셈이다.
7일 한국 대통령실은 “한국인 근로자 석방 교섭이 마무리됐으며, 행정절차가 완료되는 대로 전세기를 통해 귀국 조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측은 전례 없이 신속한 석방 조치를 통해 외교적 마찰은 피하고 한미 경제협력에는 문제가 없다는 모양새를 취하면서도, 한국 정부와 재계에 ‘최대 볼륨’의 경보음을 울렸던 이번 단속의 위력은 유지할 수 있게 됐다.
무엇보다 미국에 투자하는 한국 기업들에게는 ‘고용 구조의 투명성’이라는 새로운 리스크를 체험시켰고, 한국 정부에는 한미 경제 협력이 트럼프와 공화당의 정치 역학에 따라 언제든 흔들릴 수 있다는 냉정한 교훈을 안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