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역사] 경운궁에 전화 개통되다

이제 스마트폰은 몸의 일부처럼 여겨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스마트폰으로 문자, 사진, 동영상을 보내고 은행업무를 보는 등 거의 종일 사용하고 있죠.

이렇게 발전한 전화. 우리나라에는 언제 등장했을까요?

우리나라에 전화가 처음 들어온 것은 1882년. 청나라 시찰에 나섰던 영선사 일행이 2대를 가져왔는데요. 미국에서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이 1876년 전화를 실용화한 지 6년 뒤 일입니다.

그러다가 1898년 1월 28일 고종이 머물던 경운궁(현 덕수궁)에 전화가 가설됐습니다. 궁내와 관청간 연락용으로 전화로 업무를 보는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전화는 우리나라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이후 부분적으로 써오다가 경운궁 개통 이후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전화는 ‘덕률풍’, ‘덕진풍’ ‘어화통’ 등으로 불렸습니다. 전화의 영어표현인 텔레폰을 한자음으로 나타낸 것이죠.

신하들은 고종 황제와 통화하기 전에 4번 큰 절을 하는 등 예를 갖추었다고 합니다.

일반인이 전화를 사용하기 시작한 건 1902년. 하지만 비싼 요금 탓에 많은 사람이 이용하진 못했습니다.

일제시대에 전화가 어떻게 사용됐는지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일제는 한반도 지배를 둘러싸고 청, 러시아와 전쟁을 벌였는데요.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 따르면 일제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전화 등 통신시설을 먼저 장악해 결국 두 전쟁에서 승리했습니다.

승전국 일본은 이어 1907년 고종 황제를 퇴위시키고 조선군대를 해산시켰습니다. 이에 우리 민족은 대규모로 의병을 일으키고 일제 강제병합 이후엔 3.1운동을 벌이는 등 격렬히 저항했습니다.

그러자 일제는 이러한 저항을 효과적으로 누르고자 전국에 있는 헌병대, 경찰서에 전화를 설치했습니다. 이른바 경비 전화였는데, 그 전화망은 갈수록 촘촘해졌습니다.

경비 전화에 비해 우선순위에서 밀려났지만 기업과 상점을 중심으로 한 전화가 설치되고 사용도 늘어났습니다. 그러나 전화가입자 대부분은 한국에 거주하는 일본인이었습니다. 1941년 한국인 가입자는 30%에 미치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