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만2300단어 문서서 규제·노동자 보호·아동 안전·무기 통제 촉구
교황 레오 14세가 인공지능(AI)의 오용과 과도한 활용이 인간 존엄성과 노동, 사회적 역할에 미칠 위험을 경고하는 첫 교황 회칙을 발표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레오 14세는 25일 바티칸에서 영어판 기준 약 4만2300단어 분량의 회칙 ‘마그니피카 후마니타스’를 공개했다. 회칙은 ‘선의를 가진 모든 사람들’에게 보내는 공개 서한 형식으로 작성됐으며, AI 시대에 인간의 존엄성과 주체성을 보호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레오 14세는 이날 회칙 발표 자리에 AI 개발사 앤스로픽 공동창업자 크리스토퍼 올라를 함께 세웠다. 이는 종교계와 기술계 지도자 사이의 대화를 상징하는 장면으로 해석됐다.
교황은 회칙에서 “기술 자체가 인류에 적대적인 힘으로 간주돼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다만 “더 큰 이윤 추구가 일자리를 체계적으로 희생시키는 선택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회칙은 AI 개발을 주도하는 민간 기업에 대한 정부 규제, 일자리를 위협받는 노동자 보호와 재교육, 학생들이 기술을 비판적으로 이해하도록 돕는 교육, AI로 생성되는 폭력적·성적·허위 정보로부터 아동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 등을 촉구했다.
또 무기 사용과 관련한 모든 결정에서 AI가 아니라 인간이 최종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황은 자율무기 체계가 쉽게 배치될수록 전쟁이 더 실행 가능해지고 인간 통제에서 멀어질 수 있다고 밝혔다.
레오 14세는 모든 인간이 사회 안에서 기본적 역할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높은 기술 발전 수준에도 불구하고 소수에게만 고용을 보장하는 사회는 많은 사람을 강제적 비활동 상태에 노출시킬 위험이 있다”고 썼다.
그는 이어 이 같은 상황이 “물질적 진보와 인간학적 퇴행의 역설을 만들어 정의롭고 안정적인 사회 평화의 토대를 약화시킨다”고 밝혔다.
레오 14세는 자신의 견해가 과학자, 엔지니어, 정치 지도자들과의 대화를 통해 형성됐다고 말했다. 그는 올라와 함께 “인공지능의 시대에 인류를 위한 길을 찾기 위해”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올라는 가톨릭 신자는 아니지만 교황의 문제 제기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자신과 같은 AI 기업들이 때로 올바른 판단과 충돌할 수 있는 유인과 제약 속에 놓여 있다며 “그 유인이 굽히지 못하는 도덕적 목소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레오 14세는 즉위 직후부터 AI가 인간 존엄성과 정의, 노동에 미칠 위험을 교회가 다루겠다는 뜻을 밝혀왔다. 그는 이후 튀르키예와 레바논 방문, 가톨릭 대학 지도자 연설, 국제 수학의 날 기념 행사 등에서도 AI 문제를 언급했다. 바티칸은 지난주 AI가 제기하는 과제를 논의하기 위한 고위 성직자 위원회를 구성했다고 발표했다.
이번 회칙은 레오 14세가 지난 15일 공식 서명했다. 이날은 1891년 교황 레오 13세가 산업혁명 이후 노동자 보호 문제를 다룬 회칙 ‘레룸 노바룸’을 발표한 지 135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레룸 노바룸’은 노동계층의 권리와 존엄성을 보호하기 위해 작성된 문서로 현대 가톨릭 사회교리의 기초 문헌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레오 14세의 새 회칙도 AI가 노동자에게 제기하는 위협을 다루며 유사한 문제의식을 드러냈다.
교황은 회칙에서 노동은 소득을 얻는 수단을 넘어 “인간 조건의 요구이며 성숙과 발전, 개인적 성취를 향한 정상적 경로”라고 썼다. 그는 고용 기회 보호와 개인의 대체 불가능한 역할을 강조했다.
회칙은 아동 보호 문제도 다뤘다. 교황은 아동이 기술의 왜곡 효과에 특히 취약하다며, 어린 나이에 감독 없이 디지털 기기와 소셜미디어에 노출될 경우 수면, 집중력, 감정 조절, 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레오 14세는 회칙에서 바티칸의 과거 노예제 관련 역할에 대해서도 사과했다. 그는 현대판 노예제 문제를 다루는 대목에서 교황청이 과거 노예제를 명확히 규탄하지 못했고, 노예제를 실행한 통치자들을 지지한 데 대해 개인적으로 사과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