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황화론’…아시아계 겨냥 범죄 잇따라

폭행·강도·자상 등 갖가지 가해 자행…힘없는 노인대상 ‘화풀이’ 급증

“트럼프의 수사법도 중요한 이유…위기 때 희생양 찾는 행태가 원인”

최근 미국에서 아시아계 미국인을 겨냥한 폭행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며 아시아계 공동체가 바짝 경계하고 있다고 CNN 방송이 13일 보도했다.

CNN에 따르면 지난달 말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서는 84세의 태국계 남성이 아침에 산책을 하다가 폭행을 당한 뒤 끝내 숨졌다.

그로부터 사흘 뒤에는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의 차이나타운에서 91세 아시아계 남성이 거칠게 밀쳐져 바닥에 쓰러지며 다쳤다.

또 지난주에는 역시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의 베트남 슈퍼마켓 앞에서 64세 여성이 강도를 당했고, 뉴욕 지하철에서는 61세의 필리핀계 남성이 얼굴을 베이는 폭행을 당했다.

CNN은 “이 사건들이 ‘반 아시아인’이란 편견이 동기가 돼 발생했다는 증거는 없다”면서도 “당국과 아시아인 공동체는 아시아인을 겨냥한 증오와 폭력이 몇 달간 조성되고 있었으며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한다”고 지적했다.

아시아태평양정책기획위원회(APPPI)의 만주샤 쿨카르니 사무국장은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후 아시아계 미국인에 대한 혐오가 부상한 것을 19세기 ‘황화론’ 시대에 비유했다.

이 시기는 아시아계 이민자들을 사회적 위협으로 보는 편견과 인종차별적 법률이 미국에서 확산하던 때다.

쿨카르니 사무국장은 “그것(최근의 아시아인 혐오)은 아시아인에 대한 증오와 인종 차별의 최신 버전”이라고 말했다.

인권단체들은 아시아계 미국인들을 겨냥한 폭력 사건이 급증한 원인을 파악하지는 못하고 있다. 그러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후 아시아계를 표적으로 삼은 증오의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아시아태평양정책기획위원회는 작년 3월 아시아인에 대한 혐오·차별 사례를 신고받는 사이트를 개설했는데 이곳에는 연말까지 2800여건의 사례가 신고됐다.

신고가 들어온 지역도 50개 주 가운데 47개 주와 워싱턴DC 등으로 미 전역을 망라한다.

대다수인 71%는 말로 하는 괴롭힘이었지만 9%는 물리적 공격이 개입된 사례였고, 6%는 고의로 기침을 하거나 침을 뱉는 사건이었다. 21%는 아시아인을 기피하는 행동이었다.

특히 아시아계 인구가 많은 캘리포니아와 뉴욕에서 문제가 뚜렷했다.

또 ‘뉴욕 아시아계 미국인 변호사협회’가 최근 펴낸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1∼10월 뉴욕경찰에 신고된 아시아인 혐오 범죄는 그 전해 같은 기간의 8배로 증가했다.

‘정의를 진전시키는 아시아계 미국인’의 존 양 사무국장은 미국에서 반아시아인 편견이 발호하게 된 것은 일정 부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거듭해서 코로나바이러스를 ‘중국 바이러스’라고 부른 일이 이런 편견을 부추겼다는 것이다.

또 전문가들은 질병의 위협이나 다른 위기가 닥쳤을 때 사람들이 문화적 규범의 바깥에 속한다고 여겨지는 집단을 희생양으로 삼는다는 점도 원인으로 지목했다. 이번 팬데믹 사태 때는 그게 아시아계 미국인이었다는 것이다.

아시아계 미국인 변호사협회는 보고서에서 “이는 일부 사람들에게 안정감과 소속감을 가져다주고, 죽음에 대한 공포에 맞서는 방어기제로 작용한다”고 밝혔다.

이런 범죄가 잇따르자 캘리포니아주 앨러미더카운티 지방검사는 최근 아시아계 범죄를 전담하는 특별대응팀을 창설했다. 뉴욕경찰도 지난해 8월 비슷한 성격의 태스크포스를 출범했다.

지역사회 지도자들은 더 많은 조치를 요구하고 있다.

양 사무국장은 폭력 사건이 벌어졌을 때 제3자가 개입하도록 훈련시킬 것과 고령자들을 위한 산책·쇼핑 서비스를 제안했고, 쿨카르니 사무국장은 기업과 정부, 지역사회가 공동으로 힘을 모아 희생자를 지원하고 장기적인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리포니아주 앨러미더카운티 지방검사실이 페이스북 홈페이지에 아시아계 미국인을 노린 증오 범죄를 신고하는 핫라인 전화번호를 안내했다. [출처=앨러미더카운티 지방검사실 페이스북 페이지, 재배부 및 DB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