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편향’ 연방대법원, 낙태합법화 판례 뒤집나

미시시피 ‘낙태금지법’ 위헌 판단 가을부터 심리

내년 6월 결과 나올 때까지 각계 논란 가열 전망

미국에서 사실상 낙태합법화 판례로 기능해온 1973년 ‘로 대 웨이드’ 판결이 시험대에 올랐다. 그간 1, 2심에서 부당하다고 판결한 미시시피주의 ‘낙태금지법’ 위헌 여부가 대법원 심리에 오르면서다.

현재 보수 성향 대법관 6명과 진보 성향 대법관 3명인 대법원 이념 구성상 개인의 중절권을 인정한 기존 판례가 뒤집힐 가능성이 작지 않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1973년 대법원 판결에 헌법적 결함이 있다”고 주장해왔는데, 그가 재임 기간 임명한 3명의 보수 성향 대법관들이 이번 판단의 키를 쥔 셈이다.

다만 조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올해 1월 22일 백악관 성명을 내고 “바이든-해리스 행정부는 로 대 웨이드 판결을 연방법에 성문화하겠다”며 낙태권 지지 의사를 밝힌 만큼, 향후 관련 논란이 가열할 전망이다.

17일 AFP 통신에 따르면 연방 대법원은 미시시피 낙태금지법 위헌 판단을 오는 10월 개정하는 가을 심리기간 논의 테이블에 올린다.

미시시피 낙태금지법은 임신 15주 이후의 낙태를 전면 금지한 내용으로, 트럼프 재임 기간인 2018년 제정됐다. 공화당 우세주에서 ‘낙태금지화’ 바람이 불던 시기였다. 특히 강간이나 근친상간의 경우까지 예외로 인정하지 않아 논란이 된 바 있다. 이 법률이 인정한 유일한 예외적 낙태 허용 사유는 의학적 응급성이나 태아의 치명적인 기형 뿐이었다.

이에 위헌법률심판이 제기됐고 1심과 2심에서 모두 법률이 부당하다고 판단하자 마침내 대법원이 직접 심리하기로 한 것이다. 미국은 연방대법원이 한국의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역할을 통합 보유하고 있다.

미국은 1973년 1월 22일 연방대법원이 내린 로 대 웨이드 판결 이후 사실상 낙태를 합법화해왔다. 이전에 미국 각 주는 일반적으로 태아가 생존할 수 있는 것으로 인식되는 기간인 임신 24주내 낙태를 금지했는데, 이는 수정헌법에 기초한 사생활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취지였다.

이후 반 년간 낙태는 미국을 절반으로 가른 첨예한 이슈가 됐다. 특히 복음주의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강력한 반대가 제기됐고, 보수 정치권에서도 대법원 판례를 번복하기 위한 시도들이 여러 차례 있었다. 최근 공화당이 우세한 주에서는 낙태 관련법에 제약을 가하면서 관련 병원이 문을 닫는 사례도 나오고 있으며, 이의 대표적인 사례가 미시시피의 경우다.

문제는 현재 대법원의 균형추가 보수로 기울어진 상황이라는 점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임 기간 3명의 대법관을 임명하면서 현재 대법관 9명 중 6명이 보수 성향으로 분류되고 있다. 이에 보수 편향적인 판결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미시시피법 소송 당사자이기도 한 ‘재생산권센터’의 낸시 노섭 대표는 “대법원이 낙태금지법을 재검토하기로 합의하면서 약 50년간 유지돼온 대법원 판례가 흔들리고 로 대 웨이드 판결이 뒤집힐 위기”라며 “재생산권을 위협하는 경고벨이 크게 울리고 있다”고 말했다. 센터에 따르면 2019년 이후 12개 주가 임신 각 단계에서 낙태를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미시시피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낙태 시술소인 잭슨 여성보건기구의 다이앤 더지스 사장은 “법이 확정되면 이 주에서 낙태할 권리를 잃게 될 것”이라면서 “정치인들은 낙태에 접근하려는 사람들에게 수많은 장벽을 만들어냈고, 이 모든 것은 낙태를 완전히 없애려는 그들 전략의 일부”라고 했다.

미국시민자유연맹(ACLU) 생식자유 프로젝트의 제니퍼 달벤은 “대법원이 미시시피의 손을 들어준다면 낙태 결정권을 개인에게서 박탈해 정치인들에게 넘겨주는 격”이라면서 “국민은 개인의 자결권을 압도적으로 지지하며, 이를 빼앗기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반면 낙태 반대 단체 ‘수잔 B. 앤서니 리스트’의 마조리 대넨펠서 대표는 “이번 사건은 대법원이 태아를 고통스러운 말기 낙태의 공포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국가의 권리를 인정하는 획기적인 기회”라며 대법원 결정에 환영했다.

그는 “국민의 뜻에 따라 행동하는 주 의원들은 우리 법을 인간화하고 ‘로'(로 대 웨이드 판결 원고)가 남긴 현재의 급진성을 타파할 536개 친생명법안을 도입했다”면서 “대법원이 선거와 정책으로 표현된 과학적 현실과 그에 따른 국민의 공감대를 따라잡아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반 년 전 대법원의 역사적 판례에 우경화된 정치권이 제동을 건 만큼 이번 사건 심리 기간 미국 사회 각계는 물론 정치권의 논쟁이 치열하게 펼쳐질 전망이다. 바이든 대통령과 집권 민주당은 낙태합법화를 지지하고 있다.

이번 사건의 대법원 판결은 내년 6월쯤 나올 전망이라고 AFP는 전했다.

연방대법원 [AP=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