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나왔지만…전세계 ‘코로나 봉쇄’ 속 성탄맞이

교황, 규모 축소해 성탄전야 미사 집전…베들레헴도 ‘썰렁’

작년 화마 휩싸인 노트르담성당 성가대 무관중 합창 공연

미국 일일 사망자 3천명…영국 도버 ‘거대한 주차장’ 방불

‘한 해 중 가장 멋진 시기'(The Most Wonderful Time of the Year)라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휩쓸고 간 올해 지구촌의 성탄절은 그 어느 때와는 다른 풍경을 연출했다.

각국이 내린 이동제한조치 때문에 종교행사는 규모가 축소되거나 비대면으로 진행됐다.

24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한 가톨릭교회 앞에서 신부가 야외 미사를 진행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Photo by Patrick T. Fallon / AFP)

가족 친지들과 함께 들뜬 마음으로 명절을 맞이하려던 세계인들은 모임제한과 각종 행사 취소 때문에 주로 자택에 머무르는 처지다.

전 세계에서 코로나19 피해가 가장 큰 미국에선 백신 접종에도 불구하고 확산세가 여전하고, 영국에선 전파력이 70%나 높은 변종이 출연해 수십 개국이 영국발 입국을 막은 상황이다. 전 세계가 ‘성탄절 선물’로 기다린 코로나19 백신에 희망을 걸고 있지만 확산세가 좀처럼 꺾이지 않으면서 우울한 성탄을 맞게 됐다.

이런 가운데 영국과 유럽연합(EU)은 성탄절 이브에 미래관계 협상을 극적으로 타결해 ’47년 동거’의 완전한 마무리를 앞뒀다.

◇교황, 조촐한 미사 집전…베들레헴도 한산

프란치스코 교황은 24일(현지시간) 바티칸 성베드로대성당에서 성탄 전야 미사를 집례했다.

올해 미사는 당국이 내린 통금에 따라 예년보다 2시간 이른 오후 7시 40분께부터 약 1시간가량 거행됐다. 미사는 성당 중앙제대가 아닌 뒤쪽 한쪽에서 조촐하고 차분히 진행됐다.

약 1만명이 성당에 운집한 예년과 달리 올해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100명 안팎만 미사에 참석했다.

교황은 강론에서 “주님은 항상 우리가 가진 것보다 더 큰 사랑으로 우리를 아껴주신다. 그것이 주님이 우리 마음속에 들어오게 된 비결”이라며 인류가 신의 은총 속에 현재의 어려움을 함께 극복해나갈 수 있기를 기원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출생지로 알려져 매년 성탄절 전후로 순례객이 모이는 팔레스타인 베들레헴도 전례없이 한산한 크리스마스이브를 맞이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국경 통행이 어려워지고 관광이 금지돼 이곳의 성탄 행사가 대폭 축소된 탓이다.

예전엔 북적이던 베들레헴 거리에선 이날 몇몇 현지인 주민만 눈에 띄었다고 외신은 전했다.

이날 자정에 맞춰 열리는 성탄 미사도 성직자를 제외한 일반인의 참여가 제한되며, 온라인으로 생중계될 예정이다.

지난해 4월 화재로 무너져내렸던 프랑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에선 성가대의 ‘무관중’ 합창 공연이 펼쳐졌다.

공사가 여전히 진행 중인 관계로 성가대는 방호복과 안전모 차림으로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징글벨’ 등 캐롤을 불렀다.

공연은 이달 초에 관중 없이 녹화돼 이날 방송됐다. 성가대 인원은 당초 계획한 20명에서 8명으로 축소됐고, 감염 방지를 위해 서로 거리를 둔 채 노래했다.

◇ 각국 봉쇄로 세계인들 자택서 ‘격리 성탄절’

AFP통신 등 외신은 각국이 방역을 위해 이동 제한 조치를 취하며 성탄절을 앞두고 지구촌 주민들의 발이 묶였다고 전했다.

미국은 대규모 코로나19 백신 접종에도 불구하고 이날 이틀 연속으로 3천명 넘는 사망자가 나왔다고 로이터통신이 자체 집계를 인용해 전했다.

당국은 지난달 추수감사절 시즌에 이동량이 많아 확산이 증폭했다며 주민들에게 여행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미국 전역의 교회들은 성탄절을 맞아 신자들에게 사실상 ‘찬송’ 금지령을 내렸다.

이날 팔순을 맞이한 앤서니 파우치 미 국립보건원 산하 알레르기·전염병 연구소장도 자택에서 조용히 온라인 축하 행사를 열기로 했다고 외신은 전했다.

독일은 매년 성대하게 열린 크리스마스 마켓 영업을 중단했고, 벨기에에선 크리스마스 이후까지도 자택에 손님을 한 명까지만 초대할 수 있도록 제한했다.

기독교 인구가 적지 않은 쿠웨이트에선 내달 10일까지 교회가 폐쇄됐다.

그리스에선 전통적으로 크리스마스 전야에 진행되는 아이들의 크리스마스 합창이 취소됐다. 아이들이 집집마다 돌며 노래하면 감염위험이 있다며 당국이 금지했다.

코로나19 바이러스 변종이 확산 중인 영국은 잉글랜드 지역에서 23일부터 5일간 적용키로 했던 크리스마스 제한 완화조치를 크리스마스 당일 하루로 축소한 상태다.

최근 지역사회 감염이 줄어들어 국경제한을 완화한 호주도 지난주 신규 확진 사례가 나와 국경을 다시 폐쇄했다.

◇영국·EU, 성탄절 전날 ‘포스트 브렉시트’ 합의…도버항은 여전히 ‘주차장’

크리스마스를 하루 앞두고 영국과 유럽연합(EU)은 이날 자유무역협정을 포함한 미래관계 협상을 극적으로 타결했다.

이로써 영국은 1973년 EU의 전신인 유럽경제공동체(EEC)에 가입한 이후 이어져 온 47년간의 동거생활에 마침표를 찍게 됐다.

영국 의회는 현재 크리스마스 휴회기에 들어갔지만, 정부는 오는 30일 다시 소집해 합의안 승인을 추진할 예정이다.

이런 가운데 영국 도버항에서 프랑스로 넘어가려는 화물트럭 수천대가 여전히 발이 묶여 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영국 내 변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에 따라 프랑스가 영국발 입국을 전면 금지한 데 따른 것이다.

지난 22일 양국은 국경 재개방에 합의하면서 화물트럭 운전사들의 프랑스 입국이 가능해졌지만, 프랑스가 이들에게 코로나19 음성 검사 확인서를 요청하며 입국이 지연되고 있다.

영국 정부는 검사소를 설치해 신속히 검사하겠다고 밝혔지만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화물트럭 수천 대가 며칠째 도버항에서 꼼짝 못 하고 있는 가운데 교통정리를 위해 프랑스 소방 당국이 투입됐으며, 곧 영국 군병력도 현장에 합류할 예정이라고 가디언은 전했다.

영국 도버항 인근에 프랑스로 입국하려는 화물차 수천대가 발이 묶여 있다. [EPA=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