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버스 기고문] 한국의 뒷북 IRA 대응 외교

본보 이상연 대표기자는 지난 23일 한국 온라인 매체인 ‘뉴스버스’에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대한 한국 정부의 외교 부재를 지적하는 칼럼(링크)을 게재했다. 해당 칼럼을 전재한다. /편집자주

낸시 펠로시 홀대와 IRA 대응 외교 총력전은 모순

한국 자동차만 수정이나 유예는 사실상 불가능해

윤석열 대통령의 무리한 한미정상회담 추진이 ’48초 환담’과 미국 의회 욕설 논란으로 역포화를 맞으면서 회담 현안으로 꼽혔던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대한 미주 한인들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미 연방의회가 통과시키고 바이든 대통령이 이달 공포해 실시된 인플레이션 감축법의 주요 내용 가운데 전기차 보조금 방안이 한국 경제에 불리하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이 문제가 외교 현안으로 불거지기 시작했다. 미국에서 생산된 전기차에만 7,500달러의 할인 혜택이 주어져 아직 미국산 전기차를 만들지 못하고 있는 한국 자동차 업체는 이같은 혜택에서 제외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산 전기차에만 혜택을 주겠다는 조항은 올해초부터 꾸준히 제기된 것이다. 그래서 한국 정부가 이 문제에 대응할 수 있는 시간이 충분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또한 한국 자동차 업체라고는 현대차그룹 밖에 없는데, 한 기업을 보호하겠다고 나서 정부가 나서 외교 총력전을 벌인다는 사실을 미국 측에선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분위기다.

◇ 법안 통과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 한국측 IRA 대응

미국에서 의회를 통과한 법률을 수정하거나 유예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그만한 명분이나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 특히 미국은 상하원 제도의 특성상 IRA와 같은 중요한 법안은 양원을 오가며 수많은 수정을 거치게 되고, 그 과정에서 국민 여론이나 양당의 정치적 목적이 대부분 반영되기 때문에 이후에 다시 수정되기는 더욱 힘들다.

이같은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한국 정부는 법안이 통과된 뒤에야 IRA 대응에 나섰고, 그것도 입법부인 의회 보다는 행정부에 대한 ‘읍소’에 매달리는 모습을 보였다. 물론 현대자동차 관계자는 기자에게 “한국 정부가 미국 의회 인사들도 많이 만났지만 보도가 되지 않은 점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 정부가 거물급 연방의회 인사를 접촉했다면, 보도될 수 밖에 없는 게 미국 언론의 시스템이다. 중요한 인사를 만나지 못했거나, 이미 통과된 법안에 대해 코멘트를 할 수 없어 비보도를 전제로 만났다고 볼 수 밖에 없는 부분이다.

특히 지난 8월 13일 IRA가 연방 하원을 통과하면서 바이든 대통령의 책상으로 보내졌는데, 이보다 열흘 앞선 8월 3일 낸시 펠로시 연방 하원의장이 한국을 방문했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스테이케이션’을 이유로 펠로시 의장을 만나지 않았고 의전 논란까지 겹치면서 외교적 결례라는 지적을 받았다. 미국 권력 서열 3위 인사인데다 의회의 최고 실력자인 펠로시 의장을 홀대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 셈이다.

한국 정부의 IRA 대응 측면에서만 본다면, 펠로시 의장을 홀대해놓고 뒤늦게 미 행정부에 매달리는 건 모순이다. 미국 사정을 잘 아는 한인들이 국내 정치를 위한 ‘쇼’정도로 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법안 통과를 열흘 남기고 펠로시 의장을 만났다고 하더라도 결과는 바뀌지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을 한다. 하지만 IRA에 대해 한국 정부가 아무런 대응책도 세우고 있지 않았다는 증거만 될 뿐이다.

◇ 미국, 현대차 한 기업 이익 위해 ‘정부 외교 총력전’ 갸우뚱

무엇보다 미국 현지에서는 “현대자동차 그룹의 이익을 위해 한국 정부가 외교 총력전을 벌이고 있다”는 점을 의아하게 생각한다. 한국 경제에서 자동차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지만, 결국 사기업의 문제에 정부가 관여하고 있다는 지적인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대통령까지 나서 정상회담을 추진하다 국제적 망신까지 당하면서 이같은 비판은 더욱 커지고 있다.

IRA로 인해 국내에선 한국 자동차 업체의 피해 사실만 부각되고 있는데, 사실 미국 기업인 GM과 테슬라도 올해말까지는 7,500달러 세제 혜택을 받지 못한다. 현재까지 전기차를 누적 20만대 이상 판매한 기업은 당분간 혜택이 금지되기 때문이다. 한국 현대 기아차가 IRA로 인해 올해부터 내년까지 받는 피해보다 테슬라의 피해액이 더 클 수도 있는 상황이다. 현대차는 2024년부터 조지아주 전기차 공장을 가동할 예정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아직 IRA로 인해 받을 영향을 계산하기는 힘들다”면서 “해당 조항 유예 등을 위해 최대한 노력하는 한편 조지아주 미국 전기차 생산공장의 조기 준공 등 대안도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 자동차 업계에서는 현대차가 IRA로 인한 판매 악영향을 극복하기 위해 인센티브 제공 등을 실시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처럼 IRA로 인한 한국 산업의 피해도 제대로 파악되지 않은데다 단기적 손실을 보더라도 마케팅과 미국 공장 조기 가동 등을 통한 해법이 있는데도 “한국이 차별받고 있다”는 감정적 대응에 외교 역량을 집중하고 있는 모습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상연 애틀랜타 K 대표기자

브라이언 켐프 조지아 주지사와 장재훈 현대자동차 사장이 지난 5월 20일 조지아 전기차 공장 설립 계약서에 서명하고 있다. (사진=이상연/브라이언 켐프 트위터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