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6.25 정신 훼손하는 재향군인회

내분으로 6.25기념식 마저 중구난방 치러

“베테랑들이 오히려 한인사회의 짐” 지적

향군이라는 줄임말로 더 잘 알려진 대한민국 재향군인회는 한국에 본부를 둔 조직이다. 지난 1952년 창설된 후 1962년 한국 법률로 보호받는 법적 단체가 돼 현재 매년 400억원 가량의 정부 보조를 받고 있다.

특히 향군은 퇴역한 한국 군인이면 자동적으로 가입이 되기 때문에 대부분의 성인 남자를 회원으로 보유한 거대 단체로 미국을 비롯한 각 지부에 지원금을 전달하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향군은 법률에 따라 정치활동이 금지돼 있지만 이를 무시하고 공공연히 정치에 간여하는 모습을 보여 빈축을 사고 있다. 또한 1조원 이상의 자산을 운용하는 가운데 여러 비리가 발생해 지난 2010년 간부가 구속되는 등 ‘부패단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애틀랜타 한인사회에는 재향군인회 미 남부지회가 있으며 미주지역에 동부지회, 중남부지회, 서부지회, 북동부지회, 남서부지회, 중서부지회, 북서부지회 등 다양한 지회가 활동하고 있다. 애틀랜타 한인단체 가운데 유일하게 월 수백달러의 한국 본부 지원금을 수령하는데다 6.25 기념행사 등을 주최하는 ‘폼나는’ 자리여서 지회장 자리는 항상 인기가 높은 편이다.

미 남부지회는 공교롭게도 직전 지회장 3명이 모두 임기 중에 별세하는 바람에 지회장을 조기에 선출해야 하는 일이 이어져왔다. 특히 직전 9대 이춘봉 회장의 별세 이후 새로운 지회장을 인선하는 과정에서 내부의 갈등이 폭발하면서 걷잡을 수 없는 내분에 휩싸이는 바람에 재향군인들이 오히려 한인사회의 짐이 되고 있다.

우선 ‘복마전’인 한국 향군본부가 일부 지역 인사의 말에 휘둘려 선거관리 방식을 마음대로 바꾼 것이 발단이었고, 본부가 원하는 대로 구색을 맞추기 위해 육군 출신이 공군으로 탈바꿈하는 등 편법이 자행되면서 지회의 정통성을 스스로 부인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하지만 이러한 갈등의 근저에는 ‘굴러온 돌’과 ‘박힌 돌’의 기싸움이 있었음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향군 ‘원로인사’라는 사람들은 향군 본부의 무책임한 일처리를 비난하면서 동남부 재향군인연합회라는 아예 새로운 단체를 만들어 발족식까지 가졌고 한국에 있는 향군 본부를 고소한다는 불가능한 주장까지 하면서 나름대로의 세를 과시하고 있다.

이러한 세 싸움과 감투 다툼으로 인해 애틀랜타의 한인 재향군인 단체는 베테랑들이 가장 존중해야 할 가치인 ‘명예’를 도외시하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 또한 향군의 거의 유일한 행사인 6.25 기념식을 사분오열 치르면서 ‘단결’이라는 군인정신을 훼손하며 호국영령들에게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우선 기존의 향군 미 남부지회 임시 집행부는 제71주년 6.25 기념식을 지난 18일 둘루스의 한 교회에서 가졌다. 이날 행사에는 이들에 동조하는 월남참전유공자회 등 일부 재향군인만 함께 했고 애틀랜타총영사와 다른 한인단체장은 아예 참석하지 않았다.

새로 발족된 재향군인연합회는 오는 25일 다른 한인교회에서 별도의 6.25기념식을 가질 계획이지만 이 행사도 ‘그들만의 잔치’가 될 것으로 보인다. 향군의 분열 탓에 다른 단체들도 별도의 6.25 행사를 계획하면서 25일 하루에만 3~4개의 ‘이벤트’가 열리게 된다. 이런 ‘중구난방’의 분위기 속에서 한국의 자유를 위해 목숨을 바친 한미 베테랑들을 기념하는 본연의 의미가 과연 제대로 지켜질지 의문이다. 특히 올해 행사는 지난해 70주년 기념식이 코로나19으로 무산되면서 2년만에 치러지는 것이다.

진정한 베테랑들이라면 지금이라도 모든 것을 내려놓고 단합된 모습을 보여야 한다. 내부에서 발생한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모르겠지만 한인사회와 차세대들이 보기에는 ‘1세대들의 구태의연한 자리 다툼’으로 밖에 인식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면 한다.

이상연 대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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