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별명은 ‘태양왕’…킹메이커 머독의 ‘토사구팽’ 약사

미국-영국 등서 ‘대권’에 막대한 영향력…이번엔 트럼프 버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절친’이었으나 최근 노골적으로 정치적 결별을 표 내고 있는 글로벌 언론재벌 루퍼트 머독의 행보가 주목받고 있다.

그가 소유한 언론매체들은 최근 재선 출마를 선언한 트럼프에 대해 거리를 두는 대신 새로운 공화당 차기 대선주자로 떠오른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를 미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루퍼트 머독
루퍼트 머독 [연합뉴스 자료사진]

앞서 머독이 소유한 미국 폭스뉴스 등 보수매체들은 트럼프 행정부의 든든한 응원자 역할을 자처한 바 있어 의외라는 관전평이 나온다.

영국 방송 BBC는 17일 머독이 오로지 자신의 이익만 좇아 지금의 거대한 미디어 제국을 구축했으며, 그의 행보는 탐욕과 배신으로 점철됐다고 전했다.

지금은 상대적으로 영향력이 시들해졌지만 1970년대 머독은 자신의 언론을 동원해 호주 총리를 갈아치우기도 했다는 것이다.

호주의 노동당 당수였던 고프 휘틀럼은 1972년 총리가 되기 전까지는 머독과 각별한 관계를 유지했다.

머독이 소유한 전국지 ‘디 오스트레일리안’은 그에게 우호적인 뉴스를 도배했고, 그에 힘입어 휘틀럼은 총리 자리까지 오르게 된다.

하지만 총리가 된 이후 휘틀럼은 머독과 연락을 줄였고, 보크사이트 탄광을 운영하던 머독의 사업 관련 편의 부탁도 들어주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자 디 오스트레일리안은 성추문 등 각종 스캔들 추측 기사를 보도하며 휘틀럼을 공격했다. 머독은 ‘휘틀럼을 죽여라'(Kill Whitlam)라고 쓴 메모를 신문사 편집진에 전달하면서 휘틀럼에 대한 비판기사를 주문했고, 일부 기사는 자신이 직접 쓰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디 오스트레일리안은 급속히 보수성향으로 바뀌었다.

결국 휘틀럼 총리는 10개월을 견디지 못하고 사퇴했다.

휘틀럼 외에도 맬컴 턴불과 케빈 러드 등 여러 호주 총리가 머독 때문에 실각했다고 BBC는 전했다.

머독 부자 비난 시위
머독 부자 비난 시위 [연합뉴스 자료사진]

막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머독에겐 ‘태양왕'(the Sun King)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머독은 평소 온화한 표정에 좀체 화를 내지 않지만 언제든 자신의 이익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되면 이빨을 드러내는 스타일이라는 평이 붙었다.

영국에서 타블로이드 매체가 적잖은 영향력을 행사하던 1992년 머독이 소유한 ‘더선’은 당시 외환위기를 이유로 존 메이어 총리를 맹렬히 공격했다.

메이어 총리는 훗날 “당시 더선의 편집장에게 내일자 기사가 어떻게 나갈 것이냐고 물으니 ‘내 책상 앞에 쓰레기통이 있는데, 당신에게 전부 쏟아부을 거다’라고 말했다”라고 회고했다.

다음날 더선의 기사 제목은 ‘이제 우리는 정부 때문에 모두 망했다’였다고 한다.

메이어 총리는 당시 머독이 자신에게 유럽에 대한 정책 등 각종 사안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간섭했지만 받아주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후 더선은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 전 총리에 기울었고, 블레어는 압도적인 표 차로 총선 승리를 거머쥔다.

블레어 총리는 주위의 조언을 받아들여 머독을 거의 내각 구성원처럼 대했다고 블레어 총리의 핵심 참모는 회고록에서 밝혔다. 블레어가 중요한 결정을 할 때 머독의 의견을 꼭 청취했다는 것이다.

한 참모는 “블레어 총리는 교통부나 환경부 장관보다도 머독을 더 걱정했다”라고 말했다.

이와 같은 머독의 행보를 봤을 때 트럼프를 버린 머독의 행동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으로 보인다.

플로리다 자택에서 대선출마 선언을 하는 트럼프
플로리다 자택에서 대선출마 선언을 하는 트럼프 [연합뉴스 자료사진]

미 폭스뉴스는 트럼프의 재선 출마 선언 생방송을 중간에 끊어버렸고 뉴욕포스트는 그의 선언을 전하는 기사에 ‘플로리다 맨이 성명을 발표하다’라는 제목을 달았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사설에서 그를 ‘패배자’라고 칭했다.

머독이 트럼프에 대해서도 ‘휘틀럼을 죽여라’ 같은 메모를 그의 언론사에 전달했는지는 알 수 없다고 BBC는 전했다.

머독이 과거 외양상 트럼프의 절친으로 보이긴 했지만 진짜 각별한 사이는 아니었다는 증언도 나온다.

트럼프 행정부의 속살을 전한 저서 ‘분노와 화염'(Fire and Fury)에 따르면 머독은 당시 참모총장과 통화를 끊으면서 트럼프에 대해 외설적인 표현과 함께 ‘멍청이’라고 칭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