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 초대석] 한인 금융계 슈퍼우먼 “I AM BACK”

텍사스 휴스턴에서 제2의 역사 쓰는 조앤 김 SWN뱅크 은행장

1978년 LA 외환은행 대출 보조로 시작 …한인 은행계 ‘산 증인’

11년간 CBB은행 맡아 기록적 성장…”은퇴하니 은행이 그리워”

휴스턴 사우스웨스턴내셔널뱅크 조앤 김 행장.

 

한인 금융업이 최초로 태동한 LA 지역에서 한인 은행의 성장사를 기록했던 전설적인 은행가 조앤 김 행장이 텍사스 휴스턴에서 제2의 역사를 써내려 가고 있다.

지난해 4월 11년간 행장으로 몸담았던 LA CBB은행에서 은퇴를 선언했던 그는 지난해 8월 휴스턴의 대만계 중견 은행인 사우스웨스턴 내셔널(SWN)뱅크 은행장에 취임했다.

지난 17일 기자와 만난 김 행장은 “은퇴 후 좋아하는 하이킹과 여행 등을 마음껏 즐겼지만 마음 속에는 45년간 일해왔던 은행이 그리는 마음이 사라지지 않았다”면서 “SWN뱅크로부터 영입 제의를 받고 대화를 나누다 보니 은행의 미래에 대한 비전이 일치해 흔쾌히 수락하게 됐다”고 은행 현장 복귀 이유를 설명했다.

1977년 고려대 영문과를 졸업한 김 행장은 지난 1978년 외환은행 LA지점의 대출 보조원(Loan assistant)으로 채용돼 은행업계에 발을 들였다. 한국 대학을 갓 졸업하고 이민해 영어도 능숙지 않은데다 금융 지식도 전혀 없었던 23세의 한인 여직원에게 매일매일의 업무는 엄청난 도전이었다. 김 행장은 “바닥부터 배우겠다는 마음으로 자세를 낮추고 남들보다 2배 이상 노력했다”고 회고했다.

빠르게 업무를 배운 김 행장은 1980년 신설 한인 은행인 윌셔은행의 대출 담당으로 자리를 옮겼고 이때부터 본격적인 명성을 얻게 된다. 미국 은행의 부행장으로 근무하던 1992년 LA 폭동이 발생했고 김 행장은 자신이 직접 대출을 성사시켰던 한인 비즈니스들이 아무런 잘못도 없이 불타 사라지는 것을 보고 눈물을 삼켜야 했다. “한인들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그는 이후 한인 정치참여 단체에 기부를 이어왔고 현재 KAPA(Korean American for Political Action) 자문위원으로 봉사하고 있다.

이후 한미은행 등을 거쳐 1999년 친정격인 윌셔은행으로 돌아간 김 행장은 최고 대출책임자(CLO)를 거쳐 2008년 행장에 취임했고 미래은행 인수 등을 통해 은행 성장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이렇게 성장한 윌셔은행은 BBCN은행과 합병을 통해 미주 최대 한인은행인 뱅크오프호프가 된다.

2011년 윌셔은행보다 훨씬 작은 규모의 CBB은행으로 옮겨 행장을 맡은 김 행장은 지난해 4월까지 11년간 재임하며 부임 당시 자산 4억달러 수준의 은행을 18억달러 규모로 4.5배 성장시켰다. 김 행장은 “은행가로서 성공 비결을 묻는 질문이 많은데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을 보는 눈”이라면서 “합리적인 사고를 통해 대출을 신청한 고객이 융자금을 상환할 수 있을 능력과 자세가 돼 있는지 판단하면 된다”고 말했다.

후회없는 금융 커리어를 마무리했다고 생각했던 김 행장에게 SWN뱅크 측은 정중하지만 집요하게 은행의 도약을 이끌어달라고 간청했다. 수차례의 미팅을 통해 은행 오너십의 ‘진심’을 확인한 김 행장은 전혀 네트워크가 없는 텍사스주에서 새로운 도전을 하기로 결심했다. 현재 SWN뱅크의 자산은 10억달러 미만으로 CBB은행의 절반 수준이다. 김 행장은 “은행이 중국계 고객들을 중심으로 고속 성장을 해왔다”면서 “은행의 성장에 걸맞는 인프라를 갖추도록 하는 일에 집중하고 있으며 시스템이 완비되면 비약적으로 발전할 잠재력이 충분하다”고 평가했다.

김 행장은 경주마 조련사인 딸과 의사인 아들을 키우는 한편 노령의 부모님을 직접 모시는 등 가정에서도 ‘슈퍼우먼’의 면모를 보여왔다. 김 행장은 “휴스턴으로 이주하면서 그동안 함께 살던 90세 어머니를 남동생이 모시게 됐다”면서 “SWN뱅크 행장직을 수락하면서 1달에 1번은 어머니를 뵙기 위해 LA에 가야 한다는 조건을 포함시켰다”고 말했다. 김 행장은 “은행 인프라 구축이 마무리되고 있는 만큼 이제 본격적으로 대외 활동을 펼쳐 나가겠다”고 선언했다.

휴스턴(텍사스)=이상연 대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