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 초대석] “이민자의 삶 보듬는 총영사 되겠습니다”

지난 1월 부임 정영호 휴스턴총영사, 본보와 인터뷰

“영주권자로 살며 미주 한인들의 정서와 애환 알아”

“동포봉사가 최우선 순위…재외동포가 곧 대한민국”

한미 우주협력한미동맹 70주년 위해 특별행사 기획

정영호 총영사.

 

“총영사는 관리자(manager)가 아닙니다. 자리에 앉아서 보고만 받아서는 아무 것도 바뀌지 않습니다. 동포사회와 대한민국 외교를 위해 발전적인 결과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앞장서서 기획하고 이를 실행하는 리더(leader)가 돼야 합니다”

지난 1월 부임한 정영호 제21대 휴스턴총영사는 기자와 만난 17일 “오늘로 부임한지 71일이 됐다”고 말문을 열었다. 지난 71일간 지역 한인인사를 비롯해 수많은 사람을 만났다는 정 총영사는 “어제도 전 미주에서 찾아온 150여명의 한인 대표들과 소통하는 자리를 가졌다”고 소개했다.

정 총영사는 윤석열 대통령 후보 재외동포 특별위원장을 지낸 뒤 대통령 인수위원회 대변인을 맡았고 이어 비 외교관 출신으로 미주지역 총영사에 임명돼 화제가 됐다. 정 총영사가 말한 16일 행사도 재외동포 특별위원장 당시 도움을 줬던 미주 한인 인사들이 한 자리에 모인 것이었다.

◇ 다시 미주 한인들의 삶 속으로

연세대학교 신학과(81학번)를 졸업한 정영호 총영사는 미국 신학교에서 목회학 석사(M.Div)를 마치고 정식 안수를 받은 뒤 미국 중견 한인교회 담임목사까지 지낸 독특한 이력의 외교관이다.

그는 “42세때 한국 국회 사무처 최연소 1급 비서관에 발탁됐고 이회창 한나라당 대표 공보특보, 국회부의장 비서실장 등을 거치며 국회의원 기회도 있었지만 미국 유학길에 올랐고 12년간 미국에 거주하며 영주권을 받았다”면서 “언더우드 선교사의 모교인 뉴브런즈윅 신학대흘 졸업한 뒤 목사 안수를 받았고 피츠버그 한인연합장로교회 담임 목사로 목회를 했다”고 소개했다.

한인 이민자 대상의 목회를 하며 미주 한인동포들의 삶과 애환을 이해하게 됐다는 정 총영사는 “2017년 한국에 귀국해 정치권으로 복귀했지만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 한인들을 위해 일해야겠다는 생각을 놓지 않았다”면서 “그래서 미주지역 총영사를 희망했으며 다행히 대통령께서 이같은 비전을 실행할 수 있도록 해주셨다”고 말했다.

부임 직후 휴스턴한인회관부터 찾은 정 총영사는 지난 70여일간 샌안토니와 킬린, 오스틴, 엘파소 등 관할지역의 한인사회를 순회하는 한편 한인 교회들과 상공인 모임 등도 부지런히 찾으며 처음 약속한 ‘동포들과의 직접적인 소통’을 실천하고 있다. 정 총영사는 “앞으로 오클라호마와 아칸소, 루이지애나, 미시시피주 등 관할 지역의 한인사회를 순차적으로 방문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 외교관도 틀 깨고, 패러다임 바꿔야

정영호 총영사는 “외교관으로 부임하면서 ‘다른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동포들의 삶을 돌보겠다’고 다짐했다”면서 “목회자로서 경험했던 ‘섬김’을 외교관으로서 관할 지역의 동포사회에서 실천하고 다른 지역에도 전파될 수 있도록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위해 요청이 있는 곳이라면 어느 모임이라도 참석해 애로 사항을 듣고, 문제가 되는 부분은 곧바로 시정하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직업 외교관의 시각이 아니라 철저하게 한인들의 입장에서 동포 서비스에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 정 총영사의 소신이다. ‘재외동포가 곧 대한민국’이라고 믿고 있다는 그는 외교관들이 외교와 동포 서비스를 구분하는 기존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 총영사는 “외교관들도 프레임에 얽매이지 않고 유연하게 동포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할지 고민했으면 한다”면서 “먼저 찾아가고, 적극적으로 생각해서 동포들의 삶을 실질적으로 변화시키고 도움을 주는 일들을 실천하고 싶다”고 말했다.

정영호 총영사는 오는 27일 외교부의 공관장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하는 길에 K팝 기획사 관계자들을 만날 계획이다. 한미동맹 70주년을 맞아 오는 10월 휴스턴시와 함께 한국 문화축제를 열기 위한 준비작업에 나선 것이다. 직접 K팝 공연진을 섭외하고 K푸드와 K태권도, K컬처 등을 아우르는 행사 기획까지 머릿 속에 그려놓았다. 그는 “한인사회를 활성화하는 동시에 한미 공공외교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 행사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 지역 특성 살려 외교 역량 강화해야

정영호 총영사는 관할 지역의 특성을 최대한 살려 한국 외교의 역량을 강화하고 한미 우호를 증진시키는 방안도 다각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한미동맹 70주년을 맞아 휴스턴총영사로서 할 수 있는 일들을 고민했다는 그는 “지난 2월 광주시향 초청의 기념 음악회를 시작으로 텍사스 주의회 청문회에서 연설했고 한미 우주과학기술 국제 세미나, 한국문화축제 등 다양한 행사가 이어진다”고 소개했다.

정 총영사는 지난 14일 텍사스 주하원의 국제관계 및 경제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한국과 텍사스간 경제 협력 현황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이를 발전시키기 위한 방안을 제시했다. 정 총영사는 “텍사스주는 미국 에너지 산업의 중심으로 주요 한국 에너지 기업들이 대부분 진출해 있고 테일러시에는 170억달러 규모의 신규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이 지어지고 있다”면서 “특히 미국 최대 규모의 의학 연구기관인 텍사스 메디컬 센터가 추가 투자를 하면서 바이오 분야의 선두주자로 떠오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총영사가 주하원 청문회에 직접 출석한 것도 이례적인 일이었고 청문회를 마친 뒤에는 연방하원 외교위원장인 마이클 매콜 의언을 만났다”면서 “이 기회를 이용해 양국 반도체 산업 협력방안과 우주과학 기술 연구 개발 교류, 바이오 및 에너지 분야 협력 등에 대해 심도있는 메시지를 전했다”고 말했다. 정 총영사는 “특히 걸프만의 입지 조건을 이용해 한국 조선산업의 유치 필요성을 역설했는데 조만간 가시적인 성과가 나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 총영사는 “처음 공개하는 내용인데 NASA와 보잉사가 위치한 세계 항공우주 기술의 중심인 휴스턴에서 오는 9월 최초로 한미 우주과학기술 국제 세미나를 개최한다”면서 “한국 정부의 예산이 이미 배정됐고 양국 최고 전문가들을 초청해 한미 우주기술 교류의 새 장을 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인과 목회자, 외교관 이력까지 마친 뒤의 비전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정 총영사는 “미주 한인사회를 위해 여생을 바치겠다는 확고한 목표를 갖고 있다”면서 “퇴임 후에는 미국에서 한인 동포와 차세대들의 삶은 변화시키고 한국의 공공외교를 지원하는 일에 헌신하고 싶다”고 답했다.

휴스턴(텍사스)=이상연 대표기자

정영호 총영사와 본보 이상연 대표(왼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