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 초대석] 도전 멈추지 않는 ‘에어포트 킹’

미국 공항 매장 16개 운영 ‘JDDA 그룹’ 유재송 회장 인터뷰

50년전 농업 연수생으로 도미…한인 최대 청소회사 키워내

높은 장벽 뚫고 공항 비즈니스 진출…연매출 6000만달러대

수많은 기부 불구 ‘그림자’ 자처…”사람이 드러나서는 안돼”

자신의 텍사스 휴스턴 조지부시 국제공항 팬더 익스프레스 매장 앞에선 유재송 회장.

 

벼농사와 고추 재배로 유명한 전북 정읍군 감곡면에서 태어난 청년은 ‘대도시’인 전주로 유학해 명문 전주북중과 전주고를 졸업했다. 고교 졸업 후 명지대 행정학과에 입학한 뒤 명문대학에 진학한 친구들이 부럽기도 했지만 그에게는 더 높은 꿈이 있었다. 바로 미국에 이민해 성공하는 것이었다.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데 겁이 없던 청년에게 한국은 너무나 좁은 땅이었다.

3년간의 육군 복무를 마치고 대학을 졸업한 1974년 25세의 청년 유재송은 한 신문에 손톱만한 크기로 소개된 ‘정부 지원 미국 농업연수생 모집’ 공고를 보고 눈이 번쩍 띄었다. 농촌에서 자랐으면서도 농사일은 해본 적도 없는 처지였지만 이 기회를 놓치면 미국에 갈 수 없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농사 경험이 없어 낙방할 위기에 처했지만 신문사 기자로 일하는 감곡면 고향 선배의 도움으로 간신히 미국 미주리대학교 연수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었다. 50년전에나 가능한 일이었고, 선배 김원기 기자는 26년 후 국회의장을 지내게 된다.

청년은 고 육영수 여사의 저격사건이 일어난 8월 15일 한인은 찾아볼 수도 없는 캔자스주 애빌렌(Abilene)에 도착했다. 연수를 받으며 영어를 익히고 있던 그에게 한 백인 부부가 식품점에서 말을 걸었다. “우리 집에 한국에서 온 딸들이 있는데 와서 아이스크림을 먹지 않겠느냐”는 것. ‘한국에서 온 딸들’이라는 말이 의아했지만 사람이 그리웠기에 의심할 겨를도 없이 따라나섰다. 차를 얻어 타고 도착한 부부의 집에서 그는 큰 충격을 받았다. 10대 딸과 아들이 있는 부부가 어린 한국 소녀 2명을 입양해 키우고 있었기 때문. “가족은 같은 핏줄”이라는 한국식 사고방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고, 게다가 머나먼 한국에서 전혀 모르는 어린아이를 2명이나 입양한 것이 놀랍기만 했다.

부부의 권유로 이들이 다니는 감리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한 청년은 교회에서 주는 음식과 부부의 집에서 갖는 친교가 좋아 주일을 지키게 됐다. 하지만 전쟁을 겪은 나라의 아이를 입양하라는 마음을 주셨다는 ‘하나님’에 대한 궁금증이 더 컸을 수도 있었다. 매주 주일 예배마다 부르던 ‘His Name is Wonderful’이라는 찬송이 어느날 갑자기 청년 유재송의 마음을 움켜잡았고 1975년 3월 세례를 받게 됐다. 48년 후 기자와 만나 당시 감동을 설명하는 70대 유재송 회장의 눈에도 같은 눈물이 맺혀 있었다.

연수를 마치고 텍사스 샌안토니오로 이주한 27세의 청년은 지역 한인교회 교인들의 소개로 아내 유옥주씨를 만나 결혼에 골인한다. 아버지가 미국에서 공부를 더 하라고 보내준 돈으로 신혼 살림을 마련했다. 이후 “얼굴이 예뻐서” 결혼한 아내와 함께 휴스턴으로 이주해 시급 3.25달러의 최저임금을 받고 그로서리에서 물건을 진열하는 이른바 ‘스탁(stock)’일을 시작했다. 현실에 안주하기 싫어하는 청년은 파트타임으로 청소일을 배우기 시작했고, 점원으로 일하던 ‘세븐 일레븐’ 편의점의 지역 매니저를 찾아가 “점원 임금으로는 못 살겠으니 슈퍼바이저로 일하게 해달라”고 당돌하게 요구했다.

요구를 한번에 일축했던 지역 매니저는 2주 후에 다시 연락해 그에게 우범지역의 슈퍼바이저를 맡겼다. 직전 슈퍼바이저가 강도들에게 납치당해 사표를 썼기 때문이었다. 매일 매장 10곳을 돌며 매상을 수금하고 이를 은행에 입금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항상 범죄의 표적이 됐다. 하지만 태권도와 유도를 하는 청년은 가게 앞에서 기다리던 수상한 사람들에게 오히려 돈이 든 가방을 휘두르며 “가져갈 테면 가져가 봐라”고 여유를 부렸다. 이런 배짱과 용기는 청년 유재송을 사업가 유재송으로 변신시키는 원동력이 됐다.

유재송 회장이 수표 액자를 보여주고 있다.

◇ 월 55만달러 짜리 청소비 수표

지난 17일 방문한 유재송 회장의 휴스턴 JDDA그룹 사무실에는 커다란 수표 모형 액자가 걸려 있었다. 1995년 1월 30일 웨스팅하우스사가 발행한 55만4534.06달러 수표다. 유 회장은 “조지아주 인근 사바나강 연안에 위치한 웨스팅하우스 원자력 발전소 첫달 청소비로 받은 것”이라고 소개했다. 월 55만달러의 청소용역을 유 회장이 운영하던 휴스턴 빌딩 서비스(HBS)가 따낸 것이다.

해당 발전소에 대한 용역 계약은 10년간 이어졌고 이 계약만으로 HBS는 5000만달러 이상을 벌어들였다. 1980년 설립돼 월 1만달러 계약도 채우지 못했던 회사가 15년 만에 미국 최대규모의 계약을 수주했으니 업계에서는 큰 화제가 됐다. 유 회장은 “꼼꼼하고 철저한 관리와 원가 절감을 통해 쉘과 엑손, 텍사코, 쉐브론 등 정유 대기업의 계약을 연이어 따냈고 듀퐁, 다우 케미컬, 월마트, 엔론 고층빌딩 등 주류사회 거물기업의 수주도 이어졌다”고 소개했다.

특히 최고의 기술과 보안이 요구되는 원자력발전소와 뉴멕시코 핵폐기물 처리장 청소 용역도 맡게 되면서 청소업계에서는 ‘보증수표’ 같은 명성을 얻게 됐다. 유 회장은 “1800명의 직원들이 텍사스와 아칸소, 미시시피, 뉴멕시코, 사우스캐롤라이나, 루이지애나 등 6개주에 걸쳐 종합적인 서비스를 제공했다”고 소개했다.

유 회장은 미주 최대 한인 청소업체 가운데 하나였던 HBS를 2016년 2월 경쟁업체에 매각했다. 공항 식당매장 운영(Airport Concession) 이라는 새로운 사업에 본격적으로 도전하기 위해서였다. HBS 매각후 비영리재단인 JDDA 파운데이션을 설립한 유 회장은 첫 사업으로 소프라노 조수미 초청공연을 추진했다. 유 회장은 “조수미를 초청한다는 목표는 세웠지만 매니저로부터 향후 1년간 스케줄이 꽉 찼다는 대답이 돌아왔다”면서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6개월 내내 전화를 걸어 취소된 공연이 있느냐고 물었다”고 말했다. 유 회장의 끈기 덕분에 2016년 11월 텍사스와 조지아주의 조수미 팬들은 수준높은 공연을 선물받게 된다.

◇ 점원으로 일하던 매장을 청소하던 공항에서 열다

20년전 휴스턴 조지 부시 국제공항 터미널 C의 식당 청소용역을 맡아하던 유 회장에게 공항 식당 매니지먼트 회사 오너가 면담을 요청했다. 그는 유회장에게 “휴스턴 시장, 시의원들과 친분이 있는 것 같은데 2년 밖에 남지 않은 우리 계약 연장을 도와줄 수 있느냐”고 부탁했다. 유 회장은 담당 시의원과 식사 약속을 잡았고 이 자리에서 시의원은 매니지먼트 오너에게 “제이슨(유 회장의 영어 이름)이 부탁했기 때문에 연장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주류 대기업의 청소 용역 수주를 위해 선거 때마다 시장 및 시의원들의 선거운동을 도와준 노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공항 내 식당 20개를 관리하는 이 회사의 오너는 놀랍게도 곧바로 유 회장에게 “내 회사를 인수하라”고 제안했다. 매각 가격은 200만달러지만 10만달러만 가져오면 오너 파이낸스를 해주겠다는 것이다. 당장 계약은 연장했지만 시장이 바뀔 때마다 다시 계약을 연장해야 하는 일에 신물이 났기 때문이었다. 유 회장은 공항 비즈니스의 미래성을 읽고 곧바로 회사를 매입했고 10년간 계약을 연장하며 공항 식당 매니지먼트 사업을 했다. 회사가 하는 일은 공항 내 식당의 렌트를 걷어 시정부에 납부하고 5%의 수수료를 받는 것이었다.

매니지먼트 계약이 끝나가자 유 회장은 식당 매장을 직접 운영하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고 판단해 새로운 매장이 나올 때마다 입찰에 참여했다. 그렇게 해서 하나하나 늘린 매장이 휴스턴 조지부시 국제공항 9곳, 댈러스-포트워스 국제공항 2곳, LA 국제공항 5곳 등 16곳이 됐다. 운영 매장도 칙필레 2곳과 팬더 익스프레스 4곳 등 캐시카우(Cash Cow) 브랜드 위주이며 자신이 점원으로 일하던 세븐 일레븐 매장도 댈러스-포트워스 공항에 입점시켰다.

유 회장은 “공항 비즈니스의 속뚜껑을 열어보면 여전히 백인 위주의 ‘끼리끼리’ 네트워크여서 다른 인종이 참여하는 것이 너무나 어렵다”면서 “한인들은 이러한 장벽을 넘기가 더욱 쉽지 않지만 포기하지 않고 도전했기에 알짜 매장을 늘릴 수 있었다”고 말했다. JDDA 그룹이 운영하는 16개 매장의 연 매출은 무려 6000만달러에 달한다.

◇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그림자 기부왕’

유재송 회장의 이름이 휴스턴 경찰국 건물과 휴스턴 박물관에 새겨져 있다는 사실을 아는 한인은 그리 많지 않다. 아시아계 권익향상을 위해 설립된 아시아 소사이어티에 5만달러를 기부했고 각종 재해가 터지면 가장 먼저 수만달러의 현금과 물품을 전달하고 있다. 지난 2021년 저녁 TV뉴스에서 한 경찰관이 강도의 총에 맞아 희생됐다는 보도를 우연히 본 유 회장은 유가족에게 전달해달라며 1만달러 수표를 휴스턴경찰국장에게 보내기도 했다.

우크라이나 난민돕기, 튀르키에 지진피해자 구호 성금도 한인사회에 가장 많이 냈지만 어느 보도에도 그의 선행은 나타나지 않았다. 1만달러를 기부하면 난리가 나는 한인사회에서 이해하기 힘든 그림이다. 유 회장은 “미국에서도 가장 넓은 땅인 텍사스에 이민해 건강하게 열심히 일하며 자녀들을 키웠고 이후 편안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 모두 하나님의 축복”이라면서 “재물을 냈다는 이유 만으로 사람의 이름이 부각되면 안된다”고 설명했다.

한인 최초로 미국장로교회(PCA) 남텍사스 노회장을 지냈던 유 회장은 오는 26일 48년전 세례를 받았던 캔자스 애빌렌 감리교회를 부인 유옥주 여사와 함께 방문해 예배를 드릴 계획이다. 교회 측에서는 유 회장의 간증 순서를 마련해 평생 지켜온 신앙과 하나님의 축복을 직접 듣는 시간을 갖는다고 전해왔다. 유 회장은 “별로 자랑할 것 없는 인생이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새로운 일에 도전해온 것이 자랑이라면 자랑”이라면서 “아직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완수하기 위한 도전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인터뷰를 맺었다.

이상연 대표기자

유재송 회장의 사무실에 걸린 액자.실베스턴 터너 현 휴스턴 시장과 함께 한 사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