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의 예수’ 카폰 신부, 70년 만에 장례식

피아 구별 없이 박애 실천…캔자스 위치토서 이달 장례미사

조카 “삼촌을 집으로 모셔오게 됐다…꿈이 아니기를” 감격

'한국전의 예수' 에밀 카폰 신부
‘한국전의 예수’ 에밀 카폰 신부 [천주교 서울대교구 제공]

‘한국전쟁의 예수’ 에밀 카폰 신부의 넋을 기리는 공식 장례식이 사후 70년 만에 미국 고향 땅에서 열린다.

카폰 신부 유족은 오는 29일 캔자스주 위치토에서 그의 장례 미사를 열기로 했다고 지역 방송 KAKE가 1일 보도했다.

카폰 신부는 군종신부로 한국전쟁에 참전해 아군과 적군을 가리지 않고 박애를 실천한 인물이다.

이후 유족은 그의 유해를 고향으로 옮겨와 장례를 치르기로 했다. 1951년 북한 포로수용소에서 숨진 지 70년 만이다.

하와이에서 유해를 실은 항공기는 오는 25일 캔자스주에 도착하고 다음날 고향 마을인 필슨으로 운구된다.

이어 유족과 캔자스주 주민, 현지 가톨릭 교인들은 28일 위치토 ‘하트먼 아레나’에서 추모 행사를 개최한 뒤 29일 같은 장소에서 장례 미사를 연다.

카폰 신부 유해는 장례를 마친 뒤 위치토 교구 성당에 안장된다.

에밀 카폰 신부가 한국전 당시 미사를 집전하는 모습.
에밀 카폰 신부가 한국전 당시 미사를 집전하는 모습. [캔자스 위치토 교구 홈페이지 캡처]

조카 레이 카폰은 “매일 아침 일어나 그것이 꿈이 아니길 바라고 있다. 평생에 걸쳐 이야기를 들었던 삼촌을 집으로 모셔온다고 말할 수 있게 됐다”며 감격을 감추지 못했다.

캔자스주 필슨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난 카폰 신부는 1940년 사제 서품을 받고 1950년 7월 군종신부로 한국전에 투입됐다.

전쟁 기간 아군 부상병을 헌신적으로 돌봤고 포탄이 빗발치는 상황에서도 마지막 숨을 내쉬는 병사들을 위해 임종 기도를 올렸다.

중공군이 부상병을 사살하려 하자 목숨을 걸고 총구를 밀어내 전우를 지켜냈고, 교전 중 다친 중공군 장교까지 돌보는 박애 정신을 실천했다.

그는 포로로 잡혀 끌려간 평안북도 벽동 수용소에서도 자신보다 동료 병사들을 돌보는데 헌신했고 폐렴에 걸려 눈을 감았다.

카폰 신부의 삶은 살아남은 병사들의 증언을 통해 알려졌고, 1954년 그의 생애를 담은 ‘종군 신부 카폰 이야기’라는 책이 발간됐다.

1993년 로마 교황청은 카폰 신부를 성인으로 추앙하는 시성 절차의 첫 단계로 그를 ‘하느님의 종’으로 선언했다.

미국 정부는 2013년 4월 그에게 최고 무공 훈장인 ‘명예훈장'(Medal of Honor)을 수여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유엔군 참전의 날’을 맞아 청와대에서 카폰 신부에게 태극무공훈장을 수여했고 이 자리에는 조카 레이 카폰이 참석해 대리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