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노인은 65세 이상’ 기준 언제 시작됐나?

독일, 1889년 세계 첫 연금보험 도입하며 70세를 지급개시 기준으로 삼아
세계적으로도 65세 이상 노인으로 봐…고령화·수명 연장에 ‘기준 높이자’

서울시의 대중교통 요금 인상 방침으로 노인 지하철 무임승차 정책이 논란의 도마 위에 오르면서 노인의 연령 기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국이나 미국에선 통상 65세 이상이면 노인으로 간주돼 국가로부터 소셜 연금이나 메디케어, 지하철 무임승차를 비롯한 각종 혜택을 받게 된다.

이 65세라는 기준의 연원은 어디일까? 이 기준은 아직도 타당하다고 볼 수 있을까?

이와 관련, 한국 성일종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지난 9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나와 “1889년 독일의 비스마르크 (수상) 때부터 65세로 이렇게(노인 연령 기준으로) 정했더라고요”라고 그 기원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노인 연령 조정과 관련해 “여러 안들이 있다”며 “지방정부, 당, 대한노인회, 중앙정부와 함께 토론하는 장을 만들어서 숙의해보겠다”면서 연령 기준 상향조정을 시사했다.

65세라는 노인 연령 기준은 정말 130여년 전부터 내려온 것이 맞을까. 맞다면 이 기준은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할 수 있을까.

노인 지하철 무임승차 (PG)
노인 지하철 무임승차 (PG) [강민지 제작]

◇ 국제적으로 통상 65세 이상을 노인 간주…과거엔 50세 이상으로 보기도

우선 ‘비스마르크 시절 연원설’은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리다.

국민연금공단의 설명자료와 각종 논문에 따르면 노인의 연령 기준이 오토 폰 비스마르크 수상 재위 기간인 1889년 독일에서 세계 최초로 도입된 연금보험에서 비롯된 것은 맞다. 단, 도입 당시 연금의 수급개시 연령은 65세가 아닌 70세였다가 1916년에 이르러 65세로 낮아졌다.

이후 유엔(UN)이 1950년대부터 고령 지표를 산출할 때 이 65세 이상을 기준으로 썼다는 것이 통설이다.

단, 유엔의 여러 문서를 살펴보면 유엔은 60세와 65세란 두 잣대를 노인의 기준으로 뒤섞어 쓰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60세, 또는 65세 이상이라는 노인 기준을 절대적이고 고정된 지표로 여기기는 힘들다. 과거엔 이 연령을 기점으로 질병 발생률이나 사망률이 급속하게 높아진다는 점이 근거가 됐지만 이런 ‘노화의 징후’가 나타나는 시기도 의술의 발달, 위생·영양의 개선 등으로 시대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예컨대 최초 연금제도가 도입됐을 당시 독일의 기대수명(당시 출생자가 향후 생존할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생존연수)은 40세 남짓이었다. 1890년대 독일 국민 대다수가 65세는커녕 50세를 넘기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과거 노인에 대한 관념은 어땠을까.

미국·영국·캐나다·이스라엘 등의 학자들이 공동으로 집필한 ‘노년의 역사’라는 책에 따르면 서구에서 ‘노년'(old age)은 50세부터 100세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연령대를 가리키는 개념이었다. 생존에 필수적인 능력이 사라질 때 ‘늙었다’는 평가를 받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13세기 잉글랜드, 피렌체, 베네치아 등에서는 공직에서의 퇴직 연령이 무려 70세였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독일을 시작으로 세계 각국이 잇따라 연금 제도를 도입했을 때 설정한 연금 수급개시 연령도 제각각이었다.

덴마크가 1892년 극빈층을 대상으로 도입한 연금의 수급 자격은 60세 이상이었고, 뉴질랜드가 1898년에 도입한 연금은 65세 이상, 영국이 1908년 시행한 연금은 70세 이상을 대상으로 했다.

노인
노인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 고령화 진전 따라 ’65세인 기준 올리자’ 논의 활발

시대 변천에 맞춰 65세 이상이라는 노인 연령 기준을 높이자는 논의는 이미 세계적으로 시작됐다.

한국 정부는 2012년 9월 중장기전략보고서 중간보고서를 발표하면서 고령자의 기준을 70세나 75세로 상향 조정할 필요성을 언급했다.

대한노인회는 당초 연령 상향 조정을 반대했으나 2015년 5월 정기이사회에서 찬성으로 입장을 전환했다.

사실 노인의 연령 기준을 조정할 이유가 없지 않다. 바로 인구 고령화다.

통계청에 따르면 한국 65세 이상 노인 인구의 비율은 2000년 7.2%에서 2010년 10.8%, 2020년 15.7%로 급증했고 지난해엔 17.5%를 기록했다. 2050년엔 노인 인구가 전체의 40.1%에 달할 것으로 전망됐다.

세계적으로도 비슷한 추세다.

유엔의 ‘세계인구전망(World Population Prospects) 2019년 수정’ 자료에 따르면 2019년엔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전체 인구의 9%에 그쳤지만 2050년엔 16%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됐다.

해외에서도 일찌감치 노인 연령 기준을 바꿔야 한다는 논의가 있었다.

그 대안 중 하나가 ‘장래연령'(prospective age)이다.

현재 통용되는 나이가 태어난 시점을 기준으로 한 살, 두 살을 세는 연대기적(chronical) 연령이라면 장래연령은 기대여명(특정 연령의 사람이 앞으로 살 것으로 기대되는 연수)을 기준으로 따진 상대적 연령을 계산하는 방법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2021년 기준 65세인 사람의 기대여명은 21.59년이다. 이때 65세였던 사람은 평균적으로 앞으로 21.59년을 더 살 수 있다는 의미다.

1980년에 이와 비슷한 기대여명을 가진 연령은 55세(20.10년)였다. 즉, ‘앞으로 살 기간’을 기준으로 보면 2021년의 65세와 1980년의 55세가 같은 연령이라고 할 수 있다.

외국에서는 이런 셈법을 적용해 기대여명이 15년인 시점을 노인으로 정하자는 방안이 제기된 상태다. 이 기준을 적용하면 우리나라의 노인 연령은 2021년 기준 기대여명이 14.97년인 73세가 된다.

이는 노인들 스스로 생각하는 노인의 기준 나이와 얼추 비슷하다. 서울시가 최근 발표한 ‘2022년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65세 이상 서울시민이 생각하는 노인의 기준 연령은 평균 72.6세로 집계됐다.

노인의 연령 기준을 조정하지 않더라도 연령대를 세분해서 달리 접근하자는 대안도 있다.

예컨대 65∼74세는 연소노인(young-old), 75∼84세는 중고령노인(middle-old), 85세 이상은 고령노인(old-old)으로 분류하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이상이 제주대 교수가 65∼69세를 ‘전기 노인’, 70∼79세를 ‘노인, 80세 이후를 ‘후기 노인’으로 분류하자고 제안한 바 있다.

고령사회 (PG)
고령사회 (PG) [정연주 제작]

◇ 노인 연령 기준, 연금·정년 등과 연동돼 있어 변경 쉽지 않

하지만 노인 연령 기준의 상향 필요성에 공감대가 생기더라도 이를 실행에 옮기기는 쉽지 않다. 기준 조정이 단지 노인에 대한 개념의 변화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노인 연령의 기준을 조정하면 이와 관련해 연금, 정년 등 각종 노인 복지제도가 뒤흔들리게 된다.

세계적으로 통상 연금을 받기 시작하는 연령을 노인 기준 나이로 본다. 연금 수령은 또한 정년과도 연동된다.

한국은 법적 정년(은퇴 연령)과 연금 수급 연령을 각기 다른 법에서 규정하지만, 외국은 정년을 규정한 법이 따로 있지 않은 경우가 많고, 연금을 받는 연령이 곧 정년을 의미한다.

미국은 1986년 우리나라와 유사한 법적 정년을 폐지하고 현재는 사회보장법에서 연금 수급 연령을 명시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정상 은퇴 연령'(normal retirement age)을 ’22세에 일을 시작한다는 가정하에 아무런 불이익 없이 연금을 받을 자격이 되는 연령’으로 정의하고 관련 자료를 집계하고 있다.

노인 연령은 생산연령인구와도 맞물려 있다. OECD는 생산연령인구를 15∼64세로 정의해 노인의 기준인 65세 이전에서 끊는다. 노인은 생산, 즉 경제활동을 그만둔 사람이라는 생각이 암묵적으로 전제된 셈이다.

따라서 노인 연령 기준이 상향 조정되면 자연스럽게 연금 수급개시 연령도 밀리고 이에 따라 정년도 늦춰야 한다는 요구가 제기될 수 있다.

한국 정부가 앞장서서 노인 연령 기준 조정에 나선 것도 결국 이런 연금을 비롯한 노인 복지사업의 재정부담 때문이라는 게 중론이다.

올해 기준 국민연금의 수급개시 연령은 63세다. 2028년엔 64세, 2033년엔 65세로 늦춰진다.

하지만 이렇게 늦춰도 2050년엔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40%를 넘을 것으로 예상돼 현재의 체계로는 연금제도가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그렇다고 연금 수급 연령을 마냥 뒤로 미룰 수도 없다. 노인들의 형편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OECD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노인의 상대적 빈곤율은 2019년 기준 43.2%로,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았다.

상대적 빈곤율은 소득이 중위소득의 50%(빈곤선) 이하인 인구가 차지하는 비율로, 우리나라 노인 5명 중 2명은 상대적으로 가난한 상황이라는 의미다.

다른 회원국 중에선 미국의 노인 빈곤율(23.0%)이 높은 편이었지만 내로라하는 선진국들은 10%대에 그쳤다.

노인 빈곤은 한국인들이 늦은 나이까지 일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OECD에 따르면 한국의 실효 은퇴 연령(average effective age of labour market exit)은 남녀 모두 72.3세로 가장 높았다. 실효 은퇴 연령은 40세 이상 근로자가 경제활동을 아예 그만두는 연령을 말한다. 우리나라 노인들은 정년을 넘기고도 실제론 10년 넘게 돈벌이를 하고 있다는 얘기다.

OECD 평균 실효 은퇴 연령은 남자가 65.4세, 여자는 63.7세다.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평균 7∼9년 더 일하는 셈이다.

이는 경제활동참가율(전체 인구 중 취업자와 실업자를 더한 인구 비율)에서도 재확인된다.

OECD에 따르면 한국의 65세 이상 노인의 경제활동참가율은 2021년 기준 36.3%로,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았다. 노인 3명 중 1명은 일하고 있거나 일자리를 구하고 있는 셈이다.

OECD 평균 노인의 경제활동참가율은 15.5%로 한국의 절반도 안 됐다.